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 해군 다녀 온 동생의 속사정 나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 남희한

관련사진보기

"배는 3번 타고 커피는 한 3000잔 탄 것 같아요."

배 많이 타봤겠다는 얘기에 해군을 나온 친한 동생의 대답이다. 가히 군 생활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센스 있는 녀석 같으니라고.

해군이지만 수영은 못해요

해군에서 군 복무했다는 것만으로 막연하게 배를 떠올리고 수영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 동생은 배보다 커피를 더 탔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콜라병이었다. 사지가 길어 뇌의 명령이 손발에 닿는 데 시간차가 있다는 불평을 하며 이제야 수영을 배우고 있다.

누군가는 해군 정도 나왔으면 수영은 할 줄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얘기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모르고 하는 얘기다. 우리는 속사정을 너무 모른다. 그럼에도 막연하게 예측하고 넘겨짚는다.

우스갯소리로 군대에서 간이 족구장을 만들 때, 수학과 출신이 길이를 가늠하고, 미술 전공이 선을 긋고, 네트는 건축공학도가 세운다고 했다.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그랬다. 소름 돋았다. 뭔가 믿음이 가면서도 합리적인 듯 한데, 또 이게 뭔가 싶었다. 한 때 축구 선수였다는 신병이 실수라도 하면 난리가 난다. 축구했다면서 왜 그러냐고. 분명 족구를 하고 있는데도 기대치가 남다르다.

컴퓨터 전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운전병에서 전산병이 된 나만 봐도 그렇다. 도리까이(타이어 돌려 끼기)를 위해 웃통을 벗다 말고 컴퓨터 앞에 앉혀졌고 컴퓨터 전공이 손이 느리다고 타박받으며 누구나 시키면 할 수 있는 전산작업으로 군 생활을 했다. 선입견 덕을 본 1인이 탄생했다.

컴퓨터공학도도 블루스크린이 두렵습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다들 컴퓨터를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모른다. 컴퓨터 조립 방법이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프로그래밍을 주로 공부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도 블루스크린이 뜨면 당황하고 공포스럽긴 마찬가지다. 그저 자주 다루다 보니 그런 상황을 조금 더 겪었을 뿐이다.

그래도 자주 겪으니 노하우가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하는 거라곤, 그저 몇 만 원 더 들여 조립된 PC를 주문하고 메모리를 빼서 지우개로 닦거나 떨리는 손으로 전원을 껐다 켜는 것이 다다. 그것도 대부분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내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넘겨짚는다. 그거 했다고? 그러면 그거 했겠네? 그거 했으면서 왜 몰라? 윽! 가슴이 아프다. 그런 질문이 반복될수록 '정말 알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불안감마저 든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소진하고 스트레스를 축적한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하나 보다'를 가늠하며 불필요한 시간을 들인다. 좋게 보면 공부지만 결국 나를 위해선 무쓸모였다.

한 번 해본 것에 대한 기대가 지나칠 때가 있다. 한 번 본건 기억해야 하고, 한 번 해본 건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일도 없다. 그래서 많은 말다툼 속엔 "내가 알기로는"과 "내가 해봤는데"와 "내 기억엔" 같은 나로 한정되는 불확실한 말이 꼭 들어가는 걸 테다.

"해봤잖아" 경험상 이 말에는 그것도 모르냐, 알면서 왜 그러냐, 그래도 나 보단 낫지 않겠냐 등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 진짜 속 사정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커피를 3000잔 탄 콜라병 야매 바리스타에게, 해군 출신이니 물에 빠진 사람 도와주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 다 살고 있지만 잘 모르잖아요

해군에서 무엇을 더 많이 탔는지 사려 깊게 묻진 못해도, 왜 수영을 못하느냐고 따져 물을 필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커피를 더 많이 타고 수영을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욘 더더욱 없지 싶다. 우리, 인생 다 살고 있지만 잘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돼요?" 살고 있으면서도 몰라서 묻고, "이렇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답도 한다. 그런 우리들이 살고 있다. 그게 인생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정해진 것도 없는.

지나치게 틀에 갇히지 않도록 섣부른 판단을 유보해 보면 어떨까 싶다. 스스로 혹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선입견이라는 틀은 늪과 닮아서 멋모르고 디뎠다간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군대에서의 기억을 잃고 해군 동생과의 대화에서 무심코 나왔던 말들은 내가 끼어 있는 틀이 얼마나 단단한지 잘 보여준다. 벗어나고 싶은데 참 쉽지 않다.

"그럼, 커피는 잘 타겠네?"

내가 한 또 다른 넘겨짚음이다. 아. 선입견의 퍼레이드. 틀에 꽉 끼어 있는 나를 어쩌면 좋을까? 나를 같이 던져 버려야 하나? (한숨)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그림에세이, #나도 이번 생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오해, #내려놓기, #선입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