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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충북 청주시에서 김세림(당시 3세)양이 자신이 다니는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여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후, 일명 '세림이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2015년 1월부터 시행됐다.

세림이법에 따라 어린이 통학버스는 정지 표지판, 승하차 표시등, 광각후사경, 안전발판 등의 필수 안전장치를 설치한 후 노란색으로 도색하여 경찰서장에게 이를 신고해야 운행이 가능하다. 어린이가 통학버스에 승하차할 때는 정지표지판이 도로를 향해 펼쳐지며, 적색 표시등이 점멸된다. 
 
세림이법에 따라 설치된 안전장치이다. 이 둘 중 하나라도 작동 되면 어린이 통학버스가 정차한 차선과 그 옆 차선의 차량은 일시 정지해야 한다.
▲ 어린이 통학버스의 정지 표지판과 적색 표시등 세림이법에 따라 설치된 안전장치이다. 이 둘 중 하나라도 작동 되면 어린이 통학버스가 정차한 차선과 그 옆 차선의 차량은 일시 정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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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하나라도 작동됐을 경우에는, 어린이 통학버스가 정차한 차선과 그 옆 차선을 주행 중이던 운전자는 반드시 일시 정지하여 안전을 확인한 후, 서행해서 통학버스를 통과해야 한다. 이는 도로교통법 제51조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며, 위반할 경우 승용차 기준 범칙금 9만 원과 벌점 30점이 부과된다.

이는 어린이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어린이가 도로로 뛰어나오거나 차량에 타고 내리는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 규정이다.

어린이 통학버스의 적색 점멸등과 정지표지판에도 쌩쌩
 
도로를 향해 정지 표지판이 펼쳐졌지만, 주변 운전자들은 일시 정지하지 않고 통학버스 옆을 통과하고 있다.
▲ 도로를 향해 정지 표지판이 펼쳐진 어린이 통학버스 도로를 향해 정지 표지판이 펼쳐졌지만, 주변 운전자들은 일시 정지하지 않고 통학버스 옆을 통과하고 있다.
ⓒ 정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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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정차한 어린이 통학버스의 적색 표시등이 점멸되거나 정지 표지판이 펼쳐졌을 때 일시 정지하는 운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깜빡이는 적색 표시등을 보고도 멈추기는커녕 서행조차도 하지 않고 주행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약 어린이가 도로로 뛰어나오거나 무단 횡단을 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왕복 2차로 도로에서는 어린이가 승하차 중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통학버스를 앞지르기 위해 중앙선을 넘는 운전자들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어린이가 승하차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가용 운전자뿐만이 아니라, 어린이 통학버스 운전자들도 법규를 위반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린이 통학버스의 적색등이 깜빡이고 정지표지판이 도로를 향해 펼쳐졌지만, 주변의 다른 어린이 통학버스가 이를 무시하고 주행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어린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어린이 통학버스의 운전자들도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었다.

베테랑도 모르는 어린이 승하차 시 일시정지 의무 규정

어린이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주변 차량이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규정은 최근에 생겨난 규정이 아니다. 지난 1997년부터 어린이 통학버스가 정차하여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주변 차량이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했고, 2015년 세림이법에 따라 어린이가 승하차 중임을 주변 운전자들에게 알리는 적색 표시등과 정지 표지판이 설치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아는 운전자는 거의 없다. 많은 운전자는 어린이 통학버스에 설치된 적색 표시등이나 정지 표지판의 존재 자체도 인지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린이 통학버스의 적색등이 깜빡이거나 정지표지판이 도로를 향해 펼쳐졌을 때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법 규정이 거의 홍보되지 않은 탓이다. 
 
어린이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주변 차량이 일시정지 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하지만, 모든 운전자가 이러한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다.
▲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이 함께 만든 교통안전수칙 책자 어린이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주변 차량이 일시정지 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하지만, 모든 운전자가 이러한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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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교통안전 교육 책자 등에는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만, 교통 교육을 받는 사람도 이를 유심히 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어린이 교통안전에 큰 관심을 가지고 법 규정을 스스로 찾아보는 운전자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캐나다와 미국, 스쿨버스는 움직이는 신호등

캐나다와 미국은 도로 위에서 어린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스쿨버스와 관련된 매우 엄격한 법을 제정하고 위반자를 처벌하고 있다. 스쿨버스 정지법(school bus stop law)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스쿨버스 측면에 달린 'STOP' 표지판이 펼쳐지면 모든 차선의 차량은 정지한 후 어린이 승하차가 완료되어 표지판이 접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린이가 도로로 뛰어나오거나 무단횡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대 방향에서 오는 차량도 예외 없이 정지해야 한다. 
 
스쿨버스의 정지 표지판이 도로를 향해 펼쳐지고 적색 표시등이 점멸되자 뒤따라오던 모든 운전자들이 정지했다. 정지 표지판을 무시하고 스쿨버스를 통과하는 운전자는 거의 없으며 스쿨버스 추월 또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 정지 표지판이 펼쳐진 미국 스쿨버스 스쿨버스의 정지 표지판이 도로를 향해 펼쳐지고 적색 표시등이 점멸되자 뒤따라오던 모든 운전자들이 정지했다. 정지 표지판을 무시하고 스쿨버스를 통과하는 운전자는 거의 없으며 스쿨버스 추월 또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 Brian Snelson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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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표지판이 펼쳐지는 순간, 마치 빨간 신호등이 켜진 것처럼 도로 위 모든 운전자가 정지하여 어린이가 스쿨버스에 타고 내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진다. 국내에서 어린이 통학버스의 정지표지판이 펼쳐지고 적색 표시등이 깜빡여도 수많은 운전자가 속도조차 줄이지 않고 주행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를 위반할 경우 주에 따라서 수천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거나 운전면허가 정지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스쿨버스의 'STOP' 표지판을 무시하고 주행하는 운전자를 단속하기 위해 스쿨버스 측면에 단속용 카메라를 설치하여 상시 단속하는 주(state)도 늘어나고 있다.

운전자에게 다소 번거롭고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것보다 어린이의 생명 안전이 우선이기에 스쿨버스에서 어린이가 타고 내리는 동안에는 모든 차량이 멈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의 안전을 지키려는 조치이기 때문에 과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어린이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모습이다.

어린이 안전보다 우선인 가치는 없다

어린이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멈춰야 한다는 법을 알게 된 운전자들도 "현실적으로 어떻게 일일이 다 멈추겠느냐", "바쁜 사람들은 멈추는 것이 힘들다" 등 여러 핑계를 대며 일시 정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운전자에게 아무리 바쁜 일정이 있어도, 매번 일시 정지하는 것이 번거롭더라도, 그 무엇도 미래를 이끌어나갈 어린이의 안전보다 우선될 수 없다.

어린이 통학버스에서 어린이가 승하차할 때 주변 운전자가 일시 정지 후 안전확인을 하고 서행해서 통과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30초 남짓이다. 약 30초의 시간으로, 어린이 사망사고를 막아서 어린이에게 30년이 넘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
 
Drive like your kids live here.
당신의 아이가 이곳에 사는 것처럼 운전하세요.

이 문구는 미국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표지판의 문구이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법규를 어기는 운전자들에게 자신의 아이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주고, 자신의 아이와 같은 소중한 어린이들이 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어린이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설치된 표지판이다.

이 문구를 되새기며, 모든 운전자들은 어린이 통학버스에서 도로로 뛰어나올 수 있는 아이가 내 아이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운전대를 잡는 나 자신도 어린이였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어린이 안전보다 우선인 가치는 없다.

태그:#어린이통학버스, #도로교통법 제51조, #통학버스일시정지, #스쿨버스, #어린이승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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