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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정부의 산재 예방... "집중과 포기 필요" "의욕 있지만 실력 부족"http://omn.kr/1oaig

자율안전보건관리가 가능하려면?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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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 노동자 참여제도와 자율 안전점검은 묘하게 겹치면서도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자율 안전점검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가일 텐데요. 한국의 경우 기업들이 자율 안전점검을 규제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율 안전점검이 현장에서 작동되지 않는 것은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우선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진우: 자율 안전점검은 로벤스 보고서에서 제기된 개념이었습니다. 법규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의 관리감독만으론 사업장 안전보건 전반을 커버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법 제도를 보완하는 수단이었죠. 법을 지키기 어려우니 현장에 맡겨달라는 것은 아니죠. 

그런데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에서도 자율규제 개념이 빠져 있어요. 이건 정부도 이를 사족으로 생각했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요. 행정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면, 근로자 참여를 빼놓고는 자율 안전규제를 얘기할 수 없습니다. 현장을 가장 많이 아는 주체 중 하나니까요.

강태선: 저도 100% 동의합니다. 지난번에 OSHA 대표가 내한했을 때, 사업주만이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300만 개가 넘는 사업장이 있어요. 모든 일터를 감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죠. 사업주의 윤리에만 의존할 수도 없고요. 

결국 관리감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사업주에겐 경각심을 주는 게 필요하고, 특히 안전보건 관련 법규를 이행하기 쉽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법 이행에 따른 시행착오가 생길 수 있어요. 이를 지도하는 과정도 수반돼야 합니다. 

억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감독행정력이 중요하고, 근로감독관들도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재량권을 발휘하는 게 결국 전문성이죠. 현장 개선을 위한 관리감독, 지도 등은 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워요. 일정한 프로세스와 인적 역량이 갖춰져야 합니다. 현재 한국의 조건에서 자율규제와 억제 효과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류현철: 근로감독관의 재량권과 관련해서는 전문성과 공정성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전적이든 사후적이든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영세하다는 이유로 작업 중지를 내리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기업의 이해관계를 먼저 고려한 게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감독관에게 바라는 전문성이라는 것이 무엇이 기반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어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사고 예방과 개선을 위한 작업 중지 요구를 하고 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현재 재량권이 언제 어떻게 발휘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태선: 사실상 지금은 재량권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사업주가 노동자를 보호하도록 유도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이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패트롤 운영 관련해서 참고할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조그만 현장들의 경우, 감독관당 1년에 최소한 30~40개를 돕니다. 주로 형식적으로만 감독하는 것에 그쳐요. 똑똑한 사업주, 소위 악성 사업주들은 규제망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말 잘 듣고 실태를 모르는 사업주는 끌려다닌다, 이런 인식이 만연해있죠. 

이번에 집중적으로 패트롤을 운영했잖아요. 현장에서는 '우리도 드디어 감독을 받았다, 정부가 이런 곳에도 오네.' 이런 반응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검받아보니까, 주로 추락 중심으로 하더라 크게 부담 안 되더라, 추락 관련 안전조치를 잘했으면 감독받는 게 어렵지 않더라, 이제 사업주들도 해야겠다, 해볼 만 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업주의 의지가 형성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류현철: 그와 함께 사업주가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기 위해선 제반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는 비용이 들어가잖아요. 결국은 안전조치를 이행할 수 있는 의지만이 아니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소규모 사업장 등에서는 실제로 비용부담이 크죠.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사업주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이 아닐까요?

정진우: 한 가지 정책으로는 부족합니다. 단발성으로 그칠 수 있어요. 한 번 지적하고 개선되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고 '이제부터는 정말 혼낼 거야' 같은 식으론 안전보건체계가 구축되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인프라가 구축되고서 이런 집중정책이 작동되어야 자율 안전보건관리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관리감독 및 사업장의 역량이 축적될 수 있죠. 지속가능한 정책, 장기적 전망을 지녔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전보건 관리 체계·조직 변화 전제돼야

류현철: 현재 안전보건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현재 정책은 몇몇 리더십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죠. 안전보건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 과제일까요?

강태선: 안전보건은 여러 행정이 중첩되는 영역이죠. 타워크레인과 승강기 관련 대응이 좋은 모범사례입니다. 행정안전부와 노동부, 또는 국토부와 노동부가 서로 협조해서 정책을 마련했었죠. 관계부처들에 걸쳐있는 문제들이 많죠. 건설 현장 화재 사고도 마찬가지고요. 한 부처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말고 협력체계를 구축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류현철: 그리고 안전보건 행정의 주요 관계를 사업주와 정부의 관계로 규정한다면, 노동조합 참여가 안전보건 수준을 높이는 데 유효하다는 얘기와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강태선: 안전보건영역은 노사자치에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다고 봅니다. 원칙적으로 노사자치가 가능하려면, 기반이 마련되어야 해요. 최저수준을 지킬 수 있도록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요. 이는 정부와 사업주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만에 하나 노사가 합의해서 위험수당 받고 넘어가는 식이 되어선 안 되잖아요.

정진우: 사업장을 배로 비유하면, 사업주가 선장이라고 할 때, 선원들을 잘 관리해서 순항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때 정부는 배 건조와 운항, 선원 관리 등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하겠죠. 사업주가 산재 예방 활동에 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현장에서 안전보건 활동을 직접 해나갈 수 있도록 독려하고 교육도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감시하는 차원으로만 접근하면 한계가 있습니다.

류현철: 노동자 참여를 좀 더 얘기해보면, 독일의 경우 산재보험 자체에 노동조합이 관여하도록 하고 있고,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서 사업주의 안전보건 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산안법에도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어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산업안전 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 안전감독관의 실질적 운영 문제가 제기되는데, 여기에 주의를 덜 기울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더 활성화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부에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야 할 텐데요. 타임오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는 것도 해결해야 하고요.

정진우: 저는 노동조합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차이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더욱 취약한 곳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들이죠. 그곳에서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유명무실한 게 문제입니다. 노동부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노동조합 요구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죠. 산재 사망사고의 대부분이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데, 안전보건 활동을 마련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습니다. 

독일의 종업원 평의위원회, 영국, 일본의 노동자대표제도와 같은 모델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서 도입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안전보건에 의지가 있는데, 왜 이런 걸 하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안전보건 역량 강화를 위한 과제

최민: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이 기업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이번 현대제철 산재 사망사고 사례처럼 제대로 된 판단과 조치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고요. 행정의 측면에서 현장의 근로감독관이 노사관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게 개선되어야 할까요? 인력과 예산을 더 투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안전보건청 설립이나 조사 권한 확대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강태선: 최근 인력과 예산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요. 지방 근로감독관을 늘려서 현장 인력을 확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본부의 인력 증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장 점검, 사고 대응이 2차적인 전문성이라면, 1차적인 전문성은 어떻게 하면 자율 안전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입니다. 기술적 접근 외에 전략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중요합니다. 본부와 중앙의 정책 그룹을 확충해야 합니다.

정진우: 동의합니다. 그런데 해외와 비교하면 인력이 부족하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확충한다면, 인력의 정예화가 전제돼야 합니다. 채용, 경력관리, 교육 훈련 등 인사 문제와 관련해 개혁이 필요하고요. 시험 준비만 해보고 현장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어떻게 정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겠습니까. 현장경험을 축적하고 정책에 녹여낼 수 있도록 세심한 인사정책이 필요합니다.

강태선: 그걸 위해서는 담당자들에게도 유인이 필요합니다. 안전보건 전문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 조직에 어떤 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개별 담당과에서 하는 일을 총괄하고 성과분석 및 정책 입안을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그런 곳에 안전보건 담당자들을 세울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고 역량 강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해외 사례에 비춰 인력 수준이 상대적으로 비슷하다고 해도, 권한이 어느 정도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충분한 정책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합니다. 안전보건청 같은 대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조직개편은 장기적인 과제 단계적 이행 전략을 수립해가야 합니다.

류현철: 구조적 문제 또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의역 김군, 고 김용균 투쟁 등에서 제기된 '위험의 외주화'가 안전 보건의 핵심 문제라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안전보건 행정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요?

강태선: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사고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고조사에선 기술적 원인부터 구조적 원인까지 폭넓게 다룰 수 있습니다. 단순 처벌이 아닌 재발 방지를 위한 조사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적, 법적으로 위반요소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 개선사항까지 밝히는 거죠. 조사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법에 반영하고 현장에서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갖춰나가야 합니다. 

모든 걸 안전불감증으로 치환하는 건 문제지만, 모든 게 도급 때문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비약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고조사가 반복, 축적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관련 자료를 공개해서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대안들이 제출되어야 합니다. 안전보건공단이나 노동부에서 사고조사에 더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류현철: 건설업 다단계 하도급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경우 예방적 차원에서 기술적 안전보건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 형태, 산업구조를 바꿔나갈 필요가 있잖아요. 이럴 때 왜 정부는 법 제도를 적극적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일까요?

정진우: 정부 부처 간 역할이 구분되어 있고, 문제해결에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대, 불법 파견으로 인한 산재 사고의 경우, 누가 봐도 불법 파견인데 안전보건 관련 부서는 관심이 없고 다른 부서 소관이라고 눈감아 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산업안전보건법에 특고 관련한 조항을 넣을 때도 더 세심하게 고민할 수 있는데, 특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건설 현장 안전감시단도 외주화하는데, 이를 산안법상 안전관리자처럼 허용해주는 것도 문제입니다. 안전관리자는 종합건설사가 직접 고용해야 하는데 말이죠. 전문성과 권한에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일을 구분 짓고 책임을 미루는 것은 노동부와 공단이 직무유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범정부 차원의 긴밀한 업무 연계,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강태선: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노력을 계속 기울여나가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노력에 대해서는 성과 여부를 떠나 칭찬도 하고 날카롭게 비판도 하고요. 함께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라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민: 오랜 시간 대담을 나눴는데요. 현 산재 예방정책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산재 예방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더 많은 고민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박기형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7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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