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당근하다'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만큼 중고거래 앱을 통한 중고 거래가 심상치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온 현상이라고도 하는데요. 심지어 연예인들 집을 방문해서 중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송도 주목받고 있죠. 중고거래를 통해 새로 알게 되고 성찰하게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언젠가부터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씩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비웠다는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정리로 생긴 수익을 기부하거나 아이 통장으로 저금해준다고도 했다.

나도 마침 집안 구석구석 쌓인 물건들이 눈에 거슬리던 차였다. '미니멀 라이프' 관련 카페에도 들어가보고 책도 몇 권 읽었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방식'이라는 개념이 와 닿았다.

육아를 하게 되자 하루 24시간이 바빴다. 퇴근하고 아이 먹이고 챙기며 틈틈이 닦고 치워도 깔끔함과 거리가 먼 집. 할 일에 밀려 정리정돈이 되지 않던 심적 상태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초보 엄마의 불안감, 육아와 일에 치여 나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답답함에 휩싸였다.

이 감정은 불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로 이어졌다. 만족감은 물건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렸다. 산 물건이 자리만 차지해 오히려 불편한 상황이 반복됐다. 모든 것을 싹 정리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이 단순하고 편안한 생활을 동경했다.

주말이면 비울 물건들을 추렸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를 느꼈다. 한편으론 강박적으로 비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움의 방향을 바꿔봤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동기를 깨닫고 나자 구매 욕구를 다스리고 줄이는 것으로 비움을 대신했다.

옷장 하나로 이렇게 훈훈해지다니
 
 '스타가 자신의 물건을 직접 동네 주민과 거래하며 집 안에 잠들어 있는 물건들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는 <유랑마켓> 방송 화면 캡처.
 "스타가 자신의 물건을 직접 동네 주민과 거래하며 집 안에 잠들어 있는 물건들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는 <유랑마켓> 방송 화면 캡처.
ⓒ JTBC

관련사진보기

 
그러던 중, 세입자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내 집이 생겨 이사를 가게 됐다. 짐을 하나씩 정리했다. 이사 갈 집에는 붙박이장이 방마다 달려 있어 쓰던 옷장이 필요가 없었다. 다음에 들어올 분이 혹시나 필요할까 싶어 집주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비워 달라고 했다. 대형쓰레기 처리하는 곳에 연락해서 처분하려다, 혹시나 싶어 모바일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렸다.  

옷장을 내리고 운반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해서 거래가 성사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거래가 성사된 분은 대화를 할 때부터 깔끔한 매너를 보여주셨는데, 예정된 날에도 시간을 딱 맞춰 오셨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해서 직접 뵙지는 못하고, 친정엄마를 통해 거래를 마쳤다. 퇴직과 함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을 하시는 분이라고 전해들었다. 시골집에 두면 너무 예쁘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좋은 물건을 나누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남기고 가셨다.

엘리베이터에 실리지 않아 사다리차를 부르고 용달차로 옷장을 실어가야 하는 수고를 하셨음에도 따스한 말씀으로 거래를 마무리해주셔서 감동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중고 거래가 물물교환 너머 사람 간의 소통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거래 이후, 중고로 쓰던 물건을 팔면서 '이 물건을 사 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무엇 때문에 이 물건을 살까?' 궁금해졌다. 차마 대놓고 물어볼 순 없었는데, 이런 마음을 꿰뚫은 듯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중고마켓에서 판매한 옷장 퇴직 후 귀농하신다는 분께 판매한 옷장. 거래 매너도 좋으셨지만 무엇보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판매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주셔서 중고거래가 이익을 떠나 사람 간의 소통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 중고마켓에서 판매한 옷장 퇴직 후 귀농하신다는 분께 판매한 옷장. 거래 매너도 좋으셨지만 무엇보다 좋은 물건을 싸게 판매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남겨주셔서 중고거래가 이익을 떠나 사람 간의 소통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 박은정

관련사진보기


한 남성분은 원룸에 혼자 사는데 무드등으로 둘 거라며 무료로 나눔한 종이갓 스탠드를 가지고 가셨다. 핸디 청소기를 가져가신 분은 아들이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모터가 필요해서 구매를 하신다고 하셨다. 가게를 창업하는데 필요해서 인테리어 소품을 사 가신 분도 계셨다.

이사 들어올 때 조합원 지급 품목으로 받은 새 TV는 인터넷 최저가에서 한참을 내린 가격으로 올려두었는데도 판매가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가격을 10만 원 내려 게시물을 다시 끌어올렸다.

제일 처음 연락이 온 분에게 판매했는데, 갑자기 TV가 고장이 나서 인터넷으로 다른 상품을 산 상황이었다고 했다. 내 판매글을 보고 부랴부랴 주문 취소를 하셨다고 한다. 순간 '너무 싸게 판 것은 아닐까?' 약간의 후회도 들었지만, 필요한 곳에서 제 용도를 다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심적, 경제적 이익을 얻으니 윈윈(WinWin)인 셈이다.

또 하나 놀라고 감사한 것은 대부분의 거래자가 별 불만 없이 거래를 위해 우리 동네까지 와줬다는 점이다. 아이가 어려서 이동이 불편하다 보니 직거래를 하면서 우리 동네로 장소를 한정했는데, 흔쾌히 방문해서 물건을 받아가셨다.

물론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고 가격을 조율하는 일이 번거롭고, 낯선 사람과 처음 마주할 때 쑥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거래를 마치고 돌아갈 때 '고맙다'는 한마디를 나누면, 꽤 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고거래를 하며 인생을 배웠다

물론 거래를 하면서 훈훈한 경우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저렴하게 올린 가격인데도 거기서 더 깎아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 구매했는데도 시간이 지나 이런저런 이유로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구매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외출도 못하고 한참 기다렸는데 연락두절이 되거나, '마음이 바뀌었는데 깜빡하고 말을 못했다'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았다.

여러 번 중고거래를 하면서,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고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이익에 연연해 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거래 후 가져간 물건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친절하게 사진으로 남겨주는 사람도 있다. 

중고거래는 단순히 내게 필요 없어진 물건을 '정리'하고 '비우는'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과 물건을 매개로 연락하며 적든 많든 금전 거래가 오갔다. 이 과정에서 나는 인생과 사람을 배우며 나를 돌아보게 됐다.

거래가 성사되면 늘 감사한 마음으로 거래평을 작성한다. 인터넷 상품 구매가 일상화되었지만 상품평을 거의 써 본 적 없다. 중고 거래 후에는 꼭 평을 남긴다. 대부분 수 분 내에 상대로부터도 따스한 거래평이 도착한다. 이 맛에 중고거래를 하게 된다.

더이상 필요 없는 물건을 거래하며 정리를 했다는 충족감을 느끼고, 무언가를 그냥 버렸다는 죄책감을 덜어낸다. 작은 수익에 뿌듯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누군가와 느슨하게나마 이어졌다는 감각이 따스하게 차오른다.

거래 전까지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누군가가 나의 한 시절을 담은 물건을 가져간다. 그 물건은 나의 역사를 담은 채 내 곁을 떠난다. 그 물건이 부디 그들의 삶에 의미 있게 쓰이길 바라며, 떠나는 뒷모습을 향해 조용히 되뇌인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블로그 및 브런치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https://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