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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코로나바이러스로 가장 타격을 입은 산업 분야가 있다면 아마 여행업계일 것이다. 사스, 메르스 때도 타격이 컸겠지만, 아마 코로나바이러스는 여행업계에 단기적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큰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된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과거와 같이 여행을 부담 없이 즐기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가 얼마나 더 진행되고 피해가 얼마나 큰가에 따라 향후의 여행 관광산업의 패턴이 바뀔지도 모른다.

모 출판사 책을 읽어보니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Nathan Wolfe)가 2000년대의 판데믹의 주요 원인으로 여행을 지목하고 있다. 아예 그는 민간항공기의 운항이 전염병이 확산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주장한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끝난 후에도 여행을 가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다. 물론 네이선 울프가 앞으로 다른 판데믹을 예방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지는 않지만 새삼 왜 요즘 사람들이 왜 여행에 열광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여행의 붐이 일어난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80년대에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작되면서 우리에게도 해외여행이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지만, 최근에 해외여행은 우리 국민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 TV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행 관련 예능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여행작가라는 직업군도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같은 지명도가 있는 철학자가 쓴 여행 관련 서적도 눈에 띈다.

그러나 모 여행사의 카피 문구"인 여행은 자유다"처럼 여행이 인류에게 "행복"이나 "자유", "휴식" 같은 긍정적인 의미만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영어 단어 "트래블(travel)"은 "형벌"이라는 뜻의 라틴어 "트리팔리움(tripalium)"에서 그 어원을 가지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명승지를 유람하는 것은 선비들의 낙이었을 테지만 근대화 이전 인류에게 여행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장 필자의 유년 시절만 하더라도 좀 떨어진 마을에 사는 친지를 방문하는 것조차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발품을 팔아야 친지가 사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즘에야 가끔 시골에 내려가니 시골이 낯설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당시야 필자가 사는 집도 시골이나 친지가 사는 두메산골에 눈길이 가기보다는 고된 여정이 힘들었을 뿐이었다.

원래 유럽 중세에 붐이 일었던 성지순례도 고행길이었다. 근대 이전에 인류에게 여행이 부담스러웠던 것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 외에도 오늘날의 호텔과 같은 편의 시설도 잘 정비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착지는 물론 가는 도중에 타지인에게 위해를 당할 상당히 높은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보면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당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나그네의 키가 작으면 늘리고 키가 크면 침대에 맞추어 나그네의 몸을 잘라내었다고 한다. 오늘날도 해외여행을 하면 간혹 호텔업 종사자나 여행업자들의 자그마한 전횡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근대 이전에 이런 위험은 훨씬 큰 것이었기에 여행이 오늘날만큼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이 오늘날 여행사들의 선전 문구처럼 "자유"와 "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교통수단의 발달뿐 아니라 잘 준비된 여행업, 그리고 세계 각국 여행객의 권리에 대한 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삼 요소가 다 갖추어진다고 하여도 여행자가 돈도 시간도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이 둘이 있다 한들 여행하고 싶은 욕망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날처럼 교통수단과 여행산업이 발달하고 전 세계 각국 정부가 여행객을 유치하려고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시간과 돈만 된다면 누가 여행을 마다하겠는가마는 필자가 매년 휴가철만 되면 느끼는 여행 욕구에는 다른 이면이 있다. 필자와 같은 많은 직장인이 "수고한 당신, 떠나라"라든지 "여행은 자유다"라는 문구가 여행업 종사자들의 카피 문구임을 알면서도 여행에 끌리는 이유는 그 카피 문구가 마음 깊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여행이 왜 자유일까?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 일 년에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기간은 아마도 15일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 년에 15일을 뺀 나머지 기간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인가? 앞에서 언급한 영어 "트래블"의 라틴어 어원인 "트리팔리움"은 특이하게도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 유럽국가,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일하다"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고 있다.

로마에서 "트리팔리움"은 멍에처럼 소 같은 동물을 묶어놓는 도구인데 사람을 묶어놓는 형벌도구로도 쓰였다. 이것이 영어를 제외한 라틴어 영향을 받은 언어에서 "일하다"의 어원이 되고 있다. 즉 로마 시대에 일한다는 개념은 "묶여있다"라는 뜻이니 일을 안 하고 자리를 비우는 기간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 자리 비움)라는 말의 어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바캉스가 해외여행으로 이어지는 데는 꽤 기간이 걸렸다. 기본적으로 돈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해외여행은 발달한 교통수단과 여행 관광산업 때문에 우리에게 행복도 주고 때로는 삶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준다.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여행관광업으로 국가 경제에 도움을 얻고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찮은 미생물인 바이러스가 우리의 여행의 꿈에 제동을 걸고 있다.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를 예고한 네이선 울프나,  여행을 통한 바이러스의 전파로 생태계의 파괴를 걱정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나 우리보고 여행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는다.

필자는 인류가 바이러스에 굴복해 여행을 삼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TV와 온갖 대중매체가 여행전도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에는 반대하고 싶다.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상일에는 그 반대 이면이 있다. 현대의 안락한 여행에는 분명히 대가가 있다. 개인적으로 비용을 치르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이유 중의 하나가 일 년 내내 묶여있다가 15일간만 해방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사회체제를 다소 바꿀 필요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외대 중남미 연구소에 실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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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국립대 중남미 지역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상기 대학 스페인어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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