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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나의 오랜 약점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나는 역사 시간을 싫어했다.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다고 기억한다.

역사 시간에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해온 숙제가 선생님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 보다. 신경질적으로 체크를 하던 중에 내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화가 폭발했는지 손에 들고 있던 얇은 회초리로 무자비하게 나를 때리며 화를 냈다. 나는 그 이후로 역사 시간을 끔찍하게 여겼다.

중, 고등학교 때에도 역사 시간은 지루하기만 했다. 암기에는 자신 있었던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연도를 암기하는 데에는 무척 애를 먹곤 했었다. 그렇다. 학창 시절, '역사'는 나에게 '암기과목'이었다. 당연히 역사 과목 시험 점수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렇게 놓쳐버린 역사 공부는 수능만 끝나면 수학이나 과학처럼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거 몰라도 사는데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학이나 과학은 잘 몰라도 아직까지 딱히 불편한 점이 없지만 역사는 달랐다. 역사에 무지한 나는 지금까지도 종종 곤란하고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며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에도 어김없이 나의 구멍 난 역사 지식에 발이 빠져 헤매기 일쑤고, 세계사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역사도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에 매우 부끄러움을 느낀다. 역사를 모르니 TV나 극장에서 인기를 끄는 사극에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렇듯 '역알못(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답답하고 창피한 일이다.

나도 나름대로 한국사니 세계사니 공부를 해보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해 보았으나, 아무리 쉽게 썼다고 하는 역사서도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아직까지 연도와 사건을 외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쉽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그렇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다가 결국 중도 포기해버린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간혹 어떤 역사적 사건에 관심이 생겨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읽기도 했지만, 배경지식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도무지 그 사건의 앞뒤 맥락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나는 '역사'라는 학문은 초보자가 뛰어들기에는 다소 진입장벽이 있는, 좋아하는 사람들만 즐기는 '그들만의 리그'인가 보다, 하고 거의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역사 공부를 포기하기 직전, 간절히 구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집어 든 책이 바로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이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책을 펼쳤는데, 느닷없이 '짬뽕' 이야기를 한다. 눈이 번쩍 뜨이는 동시에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1~7권>, 굽시니스트 글, 그림, 위즈덤하우스
 <본격 한중일 세계사 1~7권>, 굽시니스트 글, 그림, 위즈덤하우스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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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짬뽕이 한중일 근대사 만화를 시작하는 음식이 되는지 보기 위해, 짬뽕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1899년 나가사키. 당시 나가사키에는 일본으로 공부하러 온 중국인 유학생이 다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나가사키의 화교 천핑순 씨는 그들을 위한 식당과 하숙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유학생들은 늘 배고팠습니다. 마음껏 배를 채우지 못하는 가난한 유학생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한 천핑순 씨는 요리 과정에서 남은 잔반에 주목, 닭 뼈다귀 같은 걸로 육수를 우리고 채소와 해산물 찌끄러기를 볶음. 그렇게 만들어진 짬뽕은 중국인들뿐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천핑순 씨의 식당 사해루는 4대째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에도 나가사키에서 영업 중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짬뽕은 화교 네트워크를 통해 일제강점기인 조선으로 전해지고, 한국인들 입맛에 맞게 개량. 길고 복잡한 여정을 거쳐 오늘날 이 붉은 짬뽕이 된 것입니다. 그 여정의 배경에는 많은 궁금증이 딸려 나옵니다. '19세기 말, 일본에는 어째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잔뜩 있었던 것일까?', '왜 하필 나가사키였을까?', '화교 네트워크는 어떻게 조선까지 뻗어 있었을까?'. 짬뽕 한 그릇에는 이런 질문들과 함께하는 한, 중, 일 근대사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1권 중에서)
 
 짬뽕 한 그릇에 담겨 있는 한, 중, 일 근대사 이야기
 짬뽕 한 그릇에 담겨 있는 한, 중, 일 근대사 이야기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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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자는 '짬뽕'으로 한, 중, 일 세계사의 운을 뗀 후, '그런데 '한, 중, 일'이라는 카테고리가 과연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세 나라의 입장을 들여다본다. 본격적으로 19세기 한, 중, 일 근현대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19세기 전까지의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간략하게 훑어본다.

이어서 면직물의 역사와 이로 인한 서양과 중국 간의 관계, 즉 '아편전쟁'에 이르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지며 본격적으로 한, 중, 일 근현대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의 뛰어난 재치와 입담 덕분에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1권에서 6권까지는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이번에 출간된 7권에 드디어 조선의 '흥선대원군과 병인양요'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느새 낄낄거리며 책장을 술술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한 장이 끝나면 그다음 장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고, 1권이 끝나면 자동으로 2권을 펼쳐 들게 된다. 그렇게 1권에서 7권까지 일곱 권을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유익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일단 너무 재미있다.

그중에서도 2권에 나오는 청나라의 사이비 종교집단 '태평천국'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다. 태평천국 이야기를 나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태평천국 이야기는 당시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관련 스토리텔링이 많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지 않다고 한다.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주연의 영화 <명장>도 태평천국에 맞서 싸운 민병대 장수들의 이야기다.

역사를 공부할 때, 세계사는 너무 멀게 느껴지고 한국사만 따로 떼어서 공부하기에는 이웃나라 중국, 일본과 계속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어 뭔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 공부의 첫 단계로, 한, 중, 일 세 나라가 서로 어떻게 얽히고설키며 관계를 맺게 되는지, 서양의 강국들이 동양에 어떤 식으로 손을 뻗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세트] 본격 한중일 세계사 1~6 세트 - 전6권

굽시니스트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18)


본격 한중일 세계사 7 - 흥선대원군과 병인양요

굽시니스트 (지은이), 위즈덤하우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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