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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서울 약수동 도로 한복판에서 한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남성은 여성의 허벅지를 돌려찼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자 기어이 발목을 걷어차 쓰러트렸다. 벽에 밀어붙이고는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무릎으로 복부를 강타했다. 여성은 맥없이 내동댕이쳐졌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 하나둘 몰려와 말리자 이 남자, 1t 트럭을 몰아 돌진했다. 여성은 급히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2017년 7월 18일 오전 1시 30분께 발생한 일이다. 때린 남성은 여성의 남자친구, 둘은 연인관계였다.

폭행 장면이 고스란히 CCTV에 찍혔다. 언론에 보도됐고 공분이 일었다. '데이트 폭력'이 검색어 상위에 오를 만큼 주목을 끌었다. '신당동 데이트 폭력'으로 알려진, 그 사건이다.

딸 가진 아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분노했다. (관련 기사 : 표창원이 지목한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의 특징)

그리고 한 달여 후, 그간 준비해온 '데이트 폭력 방지법(데이트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행위의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과 '데이트 폭력 처벌법(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데이트 폭력 방지법은 1년 후, 2018년 9월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된 후 진전이 없다. 쟁점 법안에 처리가 밀렸다. 국회는 수시로 정쟁으로 멈췄다. 20대 국회를 3개월 남겨두고, 법안은 그대로 국회 계류 상태다.

21대 국회 불출마를 선언한 표 의원에게 '데이트 폭력 방지법'은 아픈 손가락이다. 20대에 통과시키지 못해 너무나 아쉬운 법안이다. 표 의원은 11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데이트 폭력 방지법과 이에 뒤따른 제도가 완비됐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 무고한 생명이 너무도 많다"라고 했다.

그는 "신당동 사건 당시에 여론 관심을 끌었고 언론 보도도 이어졌지만, 그때뿐이었다"라며 "국회에서는 그 여론을 받아 안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총선 전 데이트 폭력 이슈 뜨거워야 21대 국회서 법 통과될 수 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9년 10월 <오마이뉴스> 인터뷰 당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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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방지법이 통과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표 의원은 "우리 정치의 한계"를 근본 원인으로 들었다.

"우리 정치는 약자의 절박한 목소리가 흡수되기 어려운 구조다. 강자와 다수만을 바라본다. 정쟁이 치열하다 보니 권력을 뺏느냐 뺏기냐에 따라 정치에 종사하는 집단의 삶과 이해가 엇갈린다. 그러니 더욱 정쟁에 매몰되고 그걸 기준으로 법도 갈린다. 흔히 중점 법안은 경제, 안보, 복지 등 다수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다. 정치적으로 서로 입장이 갈리기 마련이며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 폭력 방지법이나 어린이 안전 관련 법은 유불리에 영향 미칠 법이 아니다 보니 간과된다. 국회가 상시로 돌아간다면 법안이 논의되고 수정해서 통과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상임위와 법안소위가 열리는 일수가 극히 적다. 어쩌다 열리면 중점 법안부터 내밀고 상대는 반대하고 줄다리기 하면서 타협 내지 담합에 의해 일부 법만 통과된다."


이러한 정치 구도 때문에 통과되지 않은 거라면, 다가올 21대 국회에서도 통과는 어려운 일 아닐까? 표 의원은 '그래도'를 얘기하고 있었다. "일찍, 잘 준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여성 단체, 여성 유권자, 언론 및 이 문제의 중요성을 아는 법학자 등이 잘 모여서 목소리 낸다면 충분히 21대 총선 공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입법 분위기가 좋은 21대 국회 출범 초기에 미리 준비해서 발의하면 된다. 이미 나온 반대 목소리들을 수렴하거나 대응 논리를 개발해 입법을 시도한다면,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표 의원은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도 데이트 폭력 방지법 제정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게 여야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희망적"이라며 "정당 간 차이를 많이 해소한 현 상태에서 21대 국회가 논의를 이어가 준다면, 20대 국회의 노력들이 '시드 머니(종잣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7월 발생한 '신당동 데이트 폭력 사건' CCTV 화면이다. 당시 YTN의 보도 장면 갈무리.
 2017년 7월 발생한 "신당동 데이트 폭력 사건" CCTV 화면이다. 당시 YTN의 보도 장면 갈무리.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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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종잣돈이 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세부 사항에 대한 활발한 논의다.

"가정 폭력에 대한 처벌법이 생길 때도 왜 가정 폭력은 별도법으로 처리하냐에 대한 설명이 요구됐고, 논의가 이뤄졌고, 해결점을 찾았다. 데이트 폭력 방지법도 이런 절차를 밟아야 한다. 데이트 폭력이 뭔지, 이성간 만남이긴 한데 데이트가 아닌 경우는 어떻게 할지, 일본은 가정 폭력 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을 포함했는데 왜 우리나라는 따로 법을 제정하려 하는지 등 논의할 지점이 남아 있다. 법조계, 여성계, 학계에서는 치열하게 논쟁하고 결론을 내려서 국회를 압박해야 한다. 국회는 뭘 하냐, 직무유기라고 따져야 한다. 총선을 앞둔 '지금' 이 문제로 뜨거워야 한다. 적어도 여성계, 페미니스트 법학계, 법조계에서는 커다란 쟁점 중 하나여야 한다. 직접적으로 생명과 관련된 문제 아닌가."

실제, 많은 여성들이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하고 있다. 경찰청 공식 통계로 2016년부터 2018년, 3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사망한 여성의 수는 51명에 달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근절 TF 처리현황을 수기 취합하여 관리한 숫자라고 한다.

표 의원은 "확신컨대, 공식 통계보다 데이트 폭력 사망자가 더 많을 거"라고 했다. "수사가 기소를 위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살인임이 명백할 경우 '왜 살해됐냐'는 간과되기 쉽고 이 경우 '데이트 폭력'으로 구분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 의원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정의조차 법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발생한 행위에 대한 전수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평화적 관계였다가 갑자기 악마가 깃들어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다, (살인 전에)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명확한 실태 파악을 위해서라도 '데이트 폭력 방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벌보다 중요한 것은 가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9년 10월 <오마이뉴스> 인터뷰 당시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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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의원이 '데이트 폭력 방지법' 통과를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가해자를 벌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데이트 폭력 살인 사건에 '이별 범죄'가 많은 것은, 가해자가 굉장히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어서일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이별을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 당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상대가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비난하면 견디지 못한다. 이는 아동기부터 생긴 트라우마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부모와의 분리불안이 잘 해소되지 않아 이별을 배우지 못하고, 관계 맺기 부분이 망가진 상태인 거다. 이런 특징을 반영한 별도의 법이 필요한 이유다. 단순히 형법상 폭행·협박으로 분류해서 구성 요건만 충족되면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이후에)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연인 사이에서의 폭력은 관계에 따른 지속성이 뒤따른다. 또한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폭력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어렵다. "상습·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폭력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건 자명"하다는 것이 표 의원의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 표 의원은 '관계 집착 폭력'을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해 폭력행위만 확인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했다. 또 일반 폭력보다 2/3 이상 가중 처벌 조항을 넣었고, 가해자에 대한 상담 및 치료 명령도 내릴 수 있게 했다.

"법이 제정돼 데이트 폭력 관련 전문가와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가해자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가해자를 도와주고 교육해 개선시킬 지지기반이 생기는 거다. 그렇게 했음에도 해결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폭력이 또 이뤄졌다면 가중 처벌을 통해 응징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 시켜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런 특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은 가해자에 대해 어떤 사회적인 제재 장치, 개선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

'신당동 데이트 폭력 사건' 가해자는 2017년 11월 29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는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이후 상황은 보도된 바 없다. 특별한 가중 요소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다면 2020년 2월 12일 현재, 그는 이미 자유의 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감염됐다고 걸린 사람 책임이다? 그건 국가가 할 태도가 아니다. 바이러스를 차단하고 추적하고 격리하고 더 이상의 감염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데이트 폭력 사건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국가가 개입해서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 왜 데이트 폭력에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치를 취하지 않나. 그저 운에 맡기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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