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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서독 정보기관의 암호장비 업체 운영을 폭로하는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미국과 서독 정보기관의 암호장비 업체 운영을 폭로하는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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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부터 반세기 넘게 전 세계 정부를 상대로 암호장비를 팔아온 스위스 회사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유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현지시각) 독일의 ZDF 방송과 함께 CIA 기밀문서를 입수해 미국과 서독이 당시 세계 최고의 암호장비 업체였던 스위스의 '크립토AG'라는 회사를 운영했었다고 폭로했다.

WP에 따르면 CIA와 서독 정보기관 BND는 크립토AG를 통해 암호장비를 판매해왔다. 전 세계 120개국 정부가 고객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문서로 확인된 국가만 한국을 포함해 62개국에 달한다.

고객 명단에는 미국과 대립하던 이란, 당시 핵 위협을 벌이던 인도와 파키스탄, 심지어 유엔과 바티칸도 올라있었다.

CIA와 BND는 암호장비의 프로그램과 알고리즘 등을 미리 조작한 뒤 이를 통해 오가는 각국의 기밀 정보를 손쉽게 빼갔다. 또한 장비 판매를 통해 엄청난 수익도 올린 셈이다. 미국과 서독은 회사를 운영하며 사소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협력 관계를 꾸준히 이어갔다.

또한 영국, 스위스, 스웨덴, 이스라엘 등 최소 4개국이 크립토AG의 실체를 알고 있었거나 이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이란에 판매한 장비를 통해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과 관련해 이란 지도부를 감시했으며, 포틀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보를 빼내 영국에 넘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목표였던 구소련과 중국은 크립토AG의 실체를 의심하고 절대 장비를 구매하지 않았다. 다만 크립톤AG 장비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이들과 주고받은 연락을 추적해 상당한 정보를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세기의 첩보 쿠데타"... 서독 발빼자 미국이 독자 운영

WP는 크립톤AG를 CIA 역사상 가장 대담한 작전이라고 평가했으며, CIA도 내부 보고서에서 이를 '세기의 첩보 쿠데타(intelligence coup of the century)' 불렀다고 전했다.

1990년대 초 BND는 크립토AG의 실체가 드러날 위험이 너무 커졌다고 판단하며 먼저 발을 뺐다. 회사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잦아졌고, 당시 서독과 동독이 통일하면서 첩보에 대한 중요성이 다소 줄어든 것도 배경이 됐다.

CIA는 서독이 보유하던 지분까지 사들여 계속 운영하다가 2018년이 되어서야 청산했다. 온라인 암호기술이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암호장비의 중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WP는 크립톤AG와 관련한 문건을 전부 읽었으나, 문건 제공자의 요구에 따라 일부 발췌본만 공개했다. 또한 많은 관계자들이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전했다.

또한 CIA와 BND가 이번 보도와 관련한 논평 요청을 거부했으나, 문건의 진위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위스 정부는 크립토AG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공식적인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일의 정보 전문가 에리히 슈미트-엔봄은 스위스가 크립토AG의 실체를 몰랐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태그:#미국 , #서독, #암호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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