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몇 년 전 한 소설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얼마나 재밌게 읽었는지 책을 읽으면서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의 페이지 수를 세어보고 뒷부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 할 정도였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주인공의 괴상한 이야기를, 당대 유럽 사회에 대한 묘사와 버무려서 만든 책이었다.

그 책의 이름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였다. 책의 제목이 향수인 만큼 소설 전체에 향과 후각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읽는 나를 긴장하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강한 냄새는 일시적이지만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향수라는 책은 나에게 일시적이지만 잊기 어려운 강렬한 기억을 남겼다.

알고 보니, 그렇게 재밌게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영향을 준 책이 있었다. 후각을 바라보는 인간을 분석하고, 사회의 모습을 기록한 책이었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악취와향기
 악취와향기
ⓒ 알랭코르뱅

관련사진보기

  
'악취와 향기'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이 후각을 중심으로 근대 사회의 역사를 바라본 책이다. 이 책은 시간적으로는 18, 19세기의 근대를 다루고, 장소적으로는 주로 프랑스를 다룬다. 프랑스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외국과의 차이점을 논하는 부분은 있으나 그 외 지역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책 제목인 악취와 향기에 걸맞게,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악취를 다룬 부분과 향기를 다룬 부분으로 나뉜다. 그리고 악취와 향기의 범위 내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접근한다.

책이 다루는 악취는 대부분 분변이나 오물에 관한 것이다. 놀랍게도, 책에 따르면 18, 19세기 무렵에는 물질이 부패하면서 발생한 독기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독기론'이 주장되었다고 한다. 파스퇴르의 연구 이전의 이야기다. 때문에 이 시기에 냄새를 통해 공기 안의 독기를 파악할 필요성이 크게 강조되었다. 이런 필요는 후각에 대한 관심을 낳았고 의사들을 움직이게 했다.
 
 후각이 일시적으로 두드러지게 지위가 향상된 것은, 그 감각이 머지않아 파스퇴르 이전 시기의 신화를 낳게 되는 '새로운 불안'을 다른 감각들보다 더 확실하게 떠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각은 유기적 생명체의 짧은 생명을 파헤칠 방법을 알고 있었고, 사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37P
 
책이 다루는 시기에는 아직 공장의 매연이 사람을 위협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인간의 변, 동물의 사체 등의 오물이 주된 문제로 지목되었다. 이런 오물들은 도시 내에서 각자가 스스로 치울 것이 요구되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르주아들도 그저 바깥에 버릴 뿐이었다.

저자는 이런 시대를 살아간 의사와 위생학자들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후각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병원, 감옥, 선박 등의 악취가 심한 곳을 규율하고 악취를 내뿜는 물질을 치울 것을 주장했다. 감옥의 마룻바닥, 병원의 벽과 천장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다만 이 당시에는 악취로 인한 열병과 밀폐된 곳에 사람이 많아 생긴 질식이 엄격히 구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한편 이런 운동에 대해서 기존의 사람들은 무관심으로 대응하거나 적극 반발했다고 한다. 정부의 시책은 권유 수준에 머무르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여 실효성이 없었다. 게다가 비료가 필요한 이들은 비료의 재료가 사라지는 것에 부정적이었고, 하수도 직결식 수세장치의 도입에도 저항이 잇따랐다.

또한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분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 자체도 쉽지 않았는데, 당대에는 배설물의 악취를 사방에 퍼뜨리는 방법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주장, 페스트를 퇴치하는데 분뇨구덩이의 악취가 도움이 된다는 주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악취를 제거하려는 계획은 어려움에 부딪혔다.

한편, 향기를 다룬 부분은 사교계, 부르주아 사이에서 쓰인 향수의 변천에 대해 다룬 것이 많다. 저자는 향수가 혼란한 프랑스의 정치 현실에서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상징하는데 쓰였다는 사실을 밝힌다. '삼손의 포마드'는 애국자다운 신념을, 셔츠에 바른 '백합 향수'와 '여왕수'는 숙청에 대한 찬양을 드러냈다는 식이다.

한편 저자는 향수가 가지고 있는 동물성 향, 강하고 짙은 향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고 본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여성의 미덕들 가운데 '수줍음'이 절대적으로 강조되었고, 짙은 향수가 혐오된 것이 도덕, 시각, 미학과 관련된 상징체계의 일부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자연스럽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여자-꽃'이라는 상징주의가 점차 확산되었는데, 여기에는 충동을 억압하려는 강한 의지가 작용하고 있었다. 은은한 향기는 청결한 몸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고, 몸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289P
 
책은 악취와 향기를 날실로, 이에 대한 공감과 유혹, 반감과 혐오를 씨실로 삼아서 프랑스 부르주아와 의사들, 노동자들의 사회를 보여준다. 그리고 규범이 자리를 잡고 특정한 냄새와 삶의 태도가 배척되는 과정을 조망한다. 화학, 의학, 사회에 대한 이론과 그 변천이 한 책에 모두 담겨 있다.

후각은 쉽게 잊히는, 직관적이며 사회적 영향을 덜 받는 감각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후각 역시 사회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후각의 한계도 사회적인 영향에 의해 재설정된다는 사실을 말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만큼이나 알찬 책이다.

악취와 향기 - 후각으로 본 근대 사회의 역사

알랭 코르뱅 (지은이), 주나미 (옮긴이), 오롯(2019)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