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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나를 떠보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날이 있다. 내가 히치하이킹 하는 할머니를 만난 것도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평상시대로 행동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사람이니까.

내가 담당하고 있는 6학년 1반이 2학기 연극 단원을 처음 배우는 늦가을날이었다. 국어 교과서에는 연극의 기본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배낭을 멘 노인>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었다. 초라하고 쓸쓸한 한 노인이 항상 자기 몸보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다녔는데, 죽고 나서 보니 배낭 안에 든 것은 수많은 돌덩이였고, 배낭을 벗고 나서야 몸이 하늘로 떠오르더라는 이야기.

작품을 감상한 후 아이들과 짧은 역할극을 했다. 소품으로 노인의 배낭을 만들었는데, 돌덩이 대신 교과서와 물통 따위를 욱여넣었다. 배낭을 멘 아이의 허리가 휘었다. 학업에 짓눌리고 뒤틀린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퍼포먼스를 해도 될 정도였고, 몇 명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제법 그럴싸한 즉흥극을 했다.

연극 수업이 끝난 후에도 노인의 배낭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몫의 돌덩이를 짊어지고 있었다. 한편 나는 나의 돌덩이만 신경 쓰고, 나보다 더 무거운 돌덩이를 진 이웃을 외면하고 살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퇴근길에 나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보건소로 차를 몰았다. 4년 간 항상 같은 길만 이용했다. 도계에서 동해시로 곧장 가는 38번 국도. 그런데 갑자기 마을 어귀에서 본 독감 예방주사 현수막이 떠올랐고, 강렬한 충동이 일어 차를 돌린 것이다. 처음 가는 도계 보건소에서 8000원을 내고 3가 독감 주사를 맞았다. 무언가에게 등을 떠밀린 기분이었다. 다시 시동을 걸고 보건소 주차장을 나섰다.

차는 얼마 가지 않아 삼거리 신호등에서 정지 신호를 받아 멈췄다. 원래 다니던 길로 갔다면 신호 없이 바로 우회전을 했겠지만, 보건소에 들른 탓에 직진 신호를 기다려야만 했다. 신호등에 초록 불이 들어오던 찰나, 옆에서 누가 차를 막아 세웠다.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노인이 서 있었다.

깜짝 놀라 창문을 내렸다. 어떤 할머니가 "아저씨요, 내 조까이만 좀 태워주소." 하는 게 아닌가. 내 뒤에 차가 두 대 정도 더 서 있었는데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뻔히 보고 있었는지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나는 일단 비상등을 켜고 할머니한테 타라고 말씀드렸다. 뒤에 있던 차들이 중앙선을 가로질러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동작이 굼뜬 할머니는 굉장한 크기의 배낭을 멘 채로 차에 올랐다. 배낭을 아래로 내리거나 무릎 위에 올리는 법도 없이 등에 멘 상태로 조수석에 앉았다. 그 사이 초록불은 다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신리까지 가달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신리까지 가달라고 하셨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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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문을 닫고 다음 초록색 신호를 기다리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사람에게서 쓰레기 냄새가 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악취가 갓 뿌린 방향제처럼 퍼졌다.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팟캐스트 방송을 끄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할머니는 신기까지 가자고 하셨다. 신기는 환선굴과 대금굴이 있는 동네인데, 구도로와 연결되어 있어서 내 퇴근길이 15분가량 연장될 터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벌써 할머니를 태웠고 차는 이미 내달리고 있는데.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낡은 배낭 안에서는 빈 유리병과 캔으로 추측되는 물건들이 끊임없이 달그락거렸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때 문득 2007년 8월 터키의 카파도키아 괴뢰메 황무지 도로 옆에 서 있던 나를 떠올렸다.

렌트한 오토바이 기름이 다 떨어져 최고 기온 39도의 태양 아래서 두 시간째 히치하이킹 손가락을 올리는 거지 같은 동양인. 팔을 들어 올릴 기력마저 아지랑이처럼 사라져 갈 때 소형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삼십대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대뜸 얼굴을 보더니 "꼬레?"라고 물었고 한국 사람이 맞다고 하자 얼른 타라고 했다.

동생이 인천에 있는 공장에서 2년 간 일을 했다는 운전수는 손바닥이 찢어져 가며 오토바이를 짐칸에 실어 언덕 꼭대기에 있는 주유소에 내려주었다. 내가 너무 고마워서 두 손으로 돈을 내밀었지만, 그 사람은 타맘(오케이)이라고 쿨하게 말하고 떠났다.

반면 내가 태운 할머니는 신기 가는 길에 버스비 2000원을 요구했다. 그녀는 신기에서 집까지 또 버스를 타야 한다고 3번이나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내가 태워 주겠다고 하였으나 길이 복잡하니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세워 달라고 고집을 세웠다.

처음에는 다소 뻔뻔하게 느껴졌다. 보따리까지 내어 놓으라는 건가 뭔가. 그래서 현금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였다가, 신기에 도착해서는 마음이 약해져 2000원을 건네주었다.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내리는데 배낭에서 침출수 같은 정체불명의 액체가 자꾸 떨어졌다.
 
 할머니 손이 닿은 대시보드에 진득한 얼룩이 남았다.
 할머니 손이 닿은 대시보드에 진득한 얼룩이 남았다.
ⓒ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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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런 사람이 어디있노. 복 받을 겁니다."

할머니가 내린 후에도 시트는 젖어 있었고 악취도 가시지 않았다. 할머니가 손을 짚었던 차량 대시보드에는 진득한 얼룩이 남았다.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나는 2007년에 나를 도와준 터키인처럼 오토바이 금속판에 손바닥이 찍혀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내 사례금을 거절한 터키 남자는 짧은 영어로 떠듬떠듬 말했다. 여행지에서 받은 도움은 또 다른 여행자를 도와주면 되는 거라고. 

나는 계속 괴뢰메에서 만난 터키인의 말을 잊지 못했는데, 이제야 빚을 조금 갚는 기분이 들었다. 테세큐르 에데림(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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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입니다. 교육, 그림책, 육아, 일상 주제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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