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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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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지?"

며칠 전 2020학년도 수능이 끝난 뒤 한 수험생이 입시 커뮤니티에 올린 자신의 명문대 합격 수기를 두고 불공정하다는 여론이 들끓자 동료교사들이 보인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는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없는 수시 학교생활기록부종합전형(학종) 덕분에 최상위권 의대에 합격했다고 했다. '진짜 내가 올해 최고의 수혜자'라는 글의 제목 탓에 선정성이 부각된 측면도 있다.

그는 수능 가채점 결과 3등급 안팎의 성적으로도 연세대 의예과에 합격했다며 만약 정시로 응시했거나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있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거라고 적었다. 물론 그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시에서 1등급을 벗어난 성적으로 연세대 의예과에 응시하는 건 합격은 고사하고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있었대도 1등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의예과의 경우라면 전국 어느 의대도 2등급 이하의 성적으로는 턱도 없다. 대학의 이름을 불문하고 의대는 무조건 1등급이어야 한다는 건, 수험생들에게는 이미 불문율이다. 하물며, 고작 수능 3등급의 성적으로 의예과에 합격했다는 것은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 특히 수능을 경험한 세대에는 충격적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생기부는 못 믿겠다는 맹목적인 불신

비록 수능은 망쳤다지만,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나타난 그의 학교생활은 나름 성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1.05라는 놀라운 내신 성적에다 생기부 분량도 40장 정도였다니, 학창시절 내내 대학입시를 위해 '올인'했다는 걸 능히 짐작할 수 있다. 40장짜리 생기부야 최상위권이라 '특별 관리'를 받았다고 의심한다 해도, 1점대 내신 성적은 부인할 수 없는 성실성의 척도다.

더욱이 그는 생기부에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을 담아낸 것을 합격한 이유로 꼽을 만큼 대학입시 준비에 만전을 기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학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평가 지표는 교과 성적과 적극적인 비교과 활동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학교생활의 충실도다. 이는 오로지 수능 준비에만 '올인'했다면 생기부에 담아내기 힘든 항목이다.

그런데,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수능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를 들어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건 억지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내신 성적도, 학교 내 비교과 활동도, 아예 생기부에 기재된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다는 맹목적인 불신을 표출한 것이다. 그것은, 거칠게 말해서, 교육과정과 전국의 고등학교 교사들을 죄다 믿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내신 1등급은 조작된 것이고, 수능 3등급이 진짜 자기 성적이라는 주장이 서슴없이 나오는 것이다. 출신 지역과 고등학교를 차별하는 고교등급제 시행에는 극력 반대하면서도, 서울과 지방의 고등학교 학력 수준이 같을 수 없다며 내신 성적을 불신하는 건 모순이다. 수능을 맹신할수록 학교교육은 그만큼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엔 그를 비하하는 글이 잇따랐고 이내 그의 글은 삭제됐다. 당장 일반적으로 의대가 요구하는 수능최저학력기준에도 못 미치는 실력으로 어떻게 어려운 대학 수업을 따라갈지 의문이라는 조롱이 넘친다. 하지만 학벌구조의 최고 정점인 의대가 정한 수능최저학력기준은 수업 이해 능력을 진단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또 하나의 전형 방식일 뿐이다.

의사의 엘리트 의식 부추기는 수능

수능이 문자 그대로 대학수학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지금 우리 사회에 아무도 없다. 1994년 학력고사에서 수능 체제로 바뀔 때만 해도 그렇게 믿는 이들이 더러 있었을 테지만, 그로부터 25년이나 지난 지금 수능이 그 취지에 부합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도 됐다. 솔직히 온존한 학벌구조 속에서 수능은 이전의 학력고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처지다.

무엇보다 수능 성적이 진정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조건인지 심각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지금의 대학입시에선 수능 1등급이라야 의대에 진학하고 졸업 후 의사 면허를 취득하게 될 테니 말이다. 대학입시는 부와 명예, 나아가 권력까지도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한 경쟁일 뿐, 정작 어떤 의사가 되느냐는 교육의 본령과는 무관한 절차였을 뿐이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굳이 수능 1등급일 필요는 없다. 모름지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면 수능이나 내신 성적보다도 인성과 자질이 훨씬 더 중요한 지표로 평가되어야 한다. 다른 학과라면 몰라도, 의사와 교사, 변호사 등을 양성하는 곳이라면 수능에서 한두 문제 더 맞히고 덜 맞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도덕 점수가 높아야 도덕적 인간인 건 아니다.

의사들의 엘리트 의식이 유난히 강한 것도 대학입시 제도 탓이 크다고 본다. 전국 고등학교의 최상위권 아이들만 모인 곳에서 그들이 누리는 온갖 특권에 무감각해지는 건 당연지사다. 어쩌면 내신이든 수능이든 죄다 1등급인 그들에겐 3등급을 받고도 입학한 그 후배가 짐짓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수시충', '지균충'이라는 혐오표현도 기실 명문대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같은 의대 출신 중에도 서열이 나뉜다고 한다. 의대의 서열도 일반 대학의 그것과 동일하다. 이른바 'SKY'를 정점으로, 서울 지역 대학, 지방 국립대 순서고, 맨 뒤에 지방 사립대 의대가 놓인다. 출신 대학은 개업한 병원의 이름에도 그대로 차용되는데, 사람들은 서울대 동문 병원이 연세병원보다 낫고, 연세병원이 전남병원보다 진료를 잘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의대생들조차 공고한 서열화에 찌들어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졸업하면서 대중 앞에서 맹세하게 되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는 투철한 윤리 의식과 인간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담겨 있다. 말미에는 선서의 내용을 어기거나 위증한다면 벌을 달게 받겠다는 내용도 있다. 지금 의대생, 곧 미래의 의사들은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일면식도 없는 마당에, 학종 덕분에 명문대 의대에 합격한 그가 의사로서의 자질과 역량이 있다고 단정할 순 없다. 그가 정시로 합격했다고 한들 마찬가지다. 하나 분명한 것은 심층 면접을 거치게 되는 학종이 그나마 선다형 수능의 고득점자보다 면면을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점이다. 정시 확대가 아닌, 학종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답이라는 이야기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정시 확대와 학종 공정성 확보라는 두 가지 방안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두 주장은 '현실' 대 '이상'이라는 가치의 충돌로 이어졌다. 학종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대안이지만, 학벌이 신분증 구실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정착될 수 없는 허황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구동성 공동체적 신뢰가 허물어진 사회에서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는 평가는 무조건 불공정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선다형 시험을 '객관식'이라고 부르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생기부는 교사 마음대로 쓰고, 심층 면접은 대학 입학사정관 마음대로 점수를 매긴다고 여기는 사회에서 학종은 '이상'일 뿐이라는 거다.

입시공정성이란 허깨비보다 발상의 전환을

허깨비 같은 입시 공정성에 연연하기보다, 차라리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이도 있었다. 그토록 의대에 진학하려는 이들이 많다면, 아무나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의대의 문호를 넓히자는 '과격한' 주장이다. 로스쿨이 정착되면서 변호사들이 많아졌고 법률 서비스를 받기도 용이해졌듯이, 의사 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의료 서비스 혜택이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거다.

의사 수가 늘어나면 경쟁 속에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경우가 빈번할 테고, 누려오던 부와 사회적 지위도 대폭 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의사의 소득이 지금처럼 높지 않다면, 아마도 의대를 지망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아이들 사이에선 일단 의대만 진학하면 영원히 부와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인식이 무슨 공식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긴 제자들 중에도 과학자가 되겠다며 과학기술원이나 이공계열에 진학해놓고, 얼마 못 가 재수해서 의대로 갈아타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요컨대, 정시가 아닌 학종으로 명문대 의대에 갔다고 힐난하기보다 의사의 특권을 문제 삼는 것이 훨씬 더 건설적인 방향이다. 특권과 차별이 횡행하는 현실이라면 공정성 운운하기보다 우선은 불평등을 외쳐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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