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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아파치 레인지에서 열린 주한미군 2사단·한미연합사단의 최고 전사 선발대회에서 미군 장병이 부상자 모형을 끌고 오르막을 달리는 테스트를 받고 있다.
 지난 2018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 아파치 레인지에서 열린 주한미군 2사단·한미연합사단의 최고 전사 선발대회에서 미군 장병이 부상자 모형을 끌고 오르막을 달리는 테스트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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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임오군란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온 이래 한반도에는 일본군, 소련군, 미군 등 주변 4강 군대가 번갈아가며 모두 주둔했다. 130년 가까운 기간이니 한반도의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미군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철수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현재까지 주둔하고 있다. 어찌 보면 외군군대 주둔의 역사만으로도 한반도문제의 복잡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외국군대의 한반도 주둔 목적은 동일하지 않다. 이 가운데 미군은 해방 직후 점령군으로 들어왔다가 한국전쟁 이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동맹군 자격으로 남한에 머무르고 있다. 주둔 목적과 주둔군 성격이 급격히 변화된 사례에 해당한다. 한미상호방위 조약은 미군의 주둔 목적과 주둔 연한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군의 주둔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게 해 놓았다.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는 남한 내 미군의 기지설치 요구를 한국정부가 허락하고 미국이 이를 수락한다는 식으로 기이하게 규정함으로써 주한미군의 주둔연한을 사실상 무기한 허용한 셈이다.

해방 이후부터 정부수립 후 일 년의 철수 기간만 제외하고 80년 가까이 주둔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경험적으로도 미군이 영구주둔하고 것과 마찬가지다. 미군이 항상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미 간에는 큰 갈등이 없었던 것처럼 비쳐지지만 내부적으로는 미군철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주한미군 철수가 한미관계 130년사에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미군 철수 문제가 지속적으로 부각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미군이 애초에 한반도에 주둔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는 데서 비롯한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종전계획에 따라 점령군 자격으로 남한에 진주했지만 '계속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임무를 마치고 '나가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미군은 왜 남한에 주둔하지 않고 곧장 철수하려 했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연구는 주한미군이 일본이나 독일주둔 미군과 달리 끊임없이 철수론이나 감군론 대상이 된 게 이들 나라에 비해서 한반도의 전략적 이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간주한다(이춘근, 1996:51~52).

이 견해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피상적 이해가 기초한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라 해도 의회가 정한 국방예산 안에서 미군의 해외주둔 여부를 결정해야하기 때문에 군사전략적 고려에 의해 주둔지역 순위를 우선적으로 정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미군의 해외 주둔지 선정은 단순히 군사적 고려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군사전략은 포괄적 의미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하위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단순히 군사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미군이 모두 주둔하는 것은 아니며, 미군이 주둔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나라의 대외적 가치, 보다 쉽게 표현하면 정치적 가치가 반드시 떨어진다고 간주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미군이 일본에 주둔한 이유는 군사적 고려가 압도적이었다. 이에 비해 독일에 주둔한 것은 군사적 고려만큼이나 정치적 고려 역시 크게 작용했다. 한반도의 경우, 미군이 해방 직후 남한에 들어온 이유는 군사적 가치가 대단히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계획에 의거하여 점령군으로 주둔했다. 한마디로, 자국의 대외적 판단에 따라 정해진 정책적 목표에 따라 주둔한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한반도의 정치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음에도 미군이 철수한 이유는, 봉쇄정책에 따라 일본을 군사적 기지국가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확고해진 상황에서 주일미군만으로도 한반도에서의 전쟁 억지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애치슨 선언'으로 잘 알려진 "위기의 아시아Crisis in Asia"라는 애치슨 국무장관 연설을 읽어보면 미국의 이러한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미 육군 제24군단 소속의 7만 2000명 병력이 해방과 함께 남한에 주둔한 이래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의 미군 철수와 감군조치가 있었다. 제1차 철수는 1948년 9월부터 1949년 6월까지 495명의 군사고문단을 제외한 전면적 철수였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미국은 일방적으로 비밀리에 주한미군의 철수작업을 진행했다.

미국은 1949년 3월 22일 NSC 8/2를 통해 주한미군의 철수를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5월 17일에야 수주일 내에 완전철군 할 것임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에 따라 당시 3만 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은 3차례에 걸쳐 본격적인 철군을 단행하여 1948년 말 1만 6000명으로 감축, 1949년 1월 7500명으로 재감축, 그리고 6월 30일에 철수를 완료했다(이원덕, 1990:229).

주한미군 철수 사례 가운데 한미 간 가장 논란이 컸던 철수 조치는 닉슨 행정부 시기의 세 번째, 그리고 카터 행정부 시기의 네 번째 철수에 해당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한 이유에 있어 닉슨 행정부와 카터 행정부 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미군철수를 한미동맹의 해체 내지 미국의 대 한반도 안보 공약 포기로만 해석했다는 점이다(마상윤·박원곤, 2010).

닉슨이나 카터가 구상한 미군철수가 과연 한반도에 중대한 안보위기를 초래할 정도였는가? 한미동맹의 문제를 단지 군사동맹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게 올바른 접근일까? 한반도 안보의 문제를 이제 군사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정치경제, 생태환경 및 인간복지라는 포괄적 맥락에서 재정의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해서 일정한 패턴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미군철수가 발표되면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남한 측에 상당한 반대급부가 뒤따랐다. 닉슨행정부 시기 단행된 1971년도 미군철수의 경우,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조건으로 한국군 현대화를 위해 향후 5년간 15억 달러의 군사원조 제공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미 간에 합의한 '한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에는 (1) 탱크 500대에서 800대로 증강, (2) 나이키, 어네스트 존 등 지대공 및 지대지 미사일 200기 인도, (3) 보병용 M-1 소총을 M-16 소총으로 전면갱신하고 M-16의 한국 내 자급공장 건설과 생산 승인, (4) F-86 전투기 130기를 F-5A 전투기로 전면 개선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이상철, 2004:241).

카터 행정부 시기에는 지상군 완전철수 계획에 따라 8억 달러 규모의 미 2사단 군사장비의 무상이전과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자랑하던 F-4 전투기 1개 대대를 증강시킨 공군과 해군의 계속 주둔, 정보, 통신, 병참 관련부대와 병력 유지, 미국 무기판매에 있어 한국에게 우선권 부여 등을 포함한 총 6개 항의 보완조치에 합의했다.

1970년대에 추진된 두 차례의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정부와 아무런 협의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사후 통보로 단행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에 비해 남한에서 민주화가 진행된 1987년 이후에는 미 의회의 입법과정을 통해 철수계획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 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인다. 민주화와 탈냉전기인 1990년대 초반에 주한미군의 다섯 번째 철수계획이 '넌-워너 수정안'을 통해 마련되었다.

'넌-워너 수정안'은 미 국방부에 주한미군철수 계획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그에 따라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한 <동아시아 전략구상>은 5년에서 최대 10년 내의 3단계 감축안에 의한 미군철수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억제목적의 소규모 미군만 잔류시키고 한미연합사 해체까지 검토했다(U.S. Department of Defense, 1990). 실제로 <동아시아 전략구상>에 따라 4만 4000명이던 주한미군은 1992년 말까지 6987명 철수하여 3만 7413명까지 감소했다.

그런데 '넌-워너 수정안'에 따른 미군철수계획에 있어서도 한국정부와의 형식적 협의절차만 있었을 뿐, 일방적으로 미군철수를 단행했다. 나아가 이때부터 방위비 분담 문제를 일방적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이전 네 차례 철수계획 때 보였던 미국의 행동 패턴과 아무 차이가 없었다.

위 사실을 종합해 봤을 때, 첫째,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 정부의 전결사항이다. 둘째, 이제는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반대급부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셋째, 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한국정부의 책임이 더 커졌을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의 주둔비용 역시 상당부분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정부는 주한미군 문제를 군사안보적 관점에서 대해왔지만 사실은 대단히 정치적 문제였음을 이해할 수 있다.

정부수립에 이은 미군 철수를 포함해서 1970년대 미군 철수시기에도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열려진 공간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최형익 2019). 오히려 미국이 한반도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할 때마다 남한에는 억압적인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했다는 역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주한미군 문제는 단순한 안보이슈가 아닌 한국의 민주화 의제와 직결되는 사항이다.

그간 한국사회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것 자체로 무슨 금기사항인 양 여겨져 왔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그동안 일종의 성역과 같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정은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넌-워너 수정안'에서 알 수 있듯이 부시 행정부 때, 10년 이내의 완전 철수로 가닥을 잡았었다. 그러다가 북핵 이슈가 돌출하면서 철수계획 역시 자동 중단됐다.

결국,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미국 내 경제사정과 북핵문제의 진전 여부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논란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확실한 것은, 미군이 철수한다 해도 과거처럼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해서 상당 액수의 반대급부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는커녕 미군 주둔비용 대부분을 오히려 남한 측에 전가하려 들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태도 역시 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위 두 가지 사항은 트럼프 행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넌-워너 수정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한미군과 관련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의 초당적 합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반도 안보와 관련한 주한미군, 특히 지상군의 역할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 핵이 완성단계에 도달하고 대륙 간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을 갖춘 상태에서 미 지상군의 전쟁 억지력은 과거의 그것과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2018년과 2019년 두 해에 걸쳐 미국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과 그에 따른 전략자산 전개를 중단했다. 북한 역시 핵실험 및 탄도탄 발사시험을 중단한 상태다.

지난 2년 사이에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전후 처음으로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군비축소 문제에 대해 남북미 상호신뢰 속에서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우호적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바람직한 주한미군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남한은 주한미군이 아니더라도 비율 면에서 세계 최고의 군사력 증강국에 속한다. 국방비 규모가 연 390억 불에 달하며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군비를 증강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군비증강이란 말인가? 한반도 평화시대에 주한미군의 역할과 함께, 남북한의 군비축소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참고문헌
마상윤·박원곤. 2010. "데탕트기의 불편한 동맹: 박정희-닉슨·카터정부 시기".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분과 편. 『역사학의 시선으로 읽는 한국전쟁』. 휴머니스트.
이상철. 2004. 『안보와 자주성의 딜레마』. 연경문화사.
이원덕. 1990. "한국전쟁 직전의 주한미군 철수." 하영선 편. 『한국전쟁의 새로운 접근: 전통주의와 수정주의를 넘어서』. 나남.
이춘근. 1996. "미국의 신동아시아 전략과 주한미군." 강성학 외. 『주한미군과 한미안보협력』. 세종연구소.
최형익. 2019. "닉슨독트린,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의 창." <오마이뉴스> 2019.10.2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79918
한용섭 편. 2004. 『자주냐 동맹이냐: 21세기 한국 안보외교의 진로』. 오름.
Acheson, D. G. 1950. "Crisis in Asia; An Examination of United States Policy." Department of State Bulletin 22.551(23 January).
Hopkins, M. F. 2012. "Dean Acheson and the Place of Korea in America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1945-1950." 『미국학』 35권 2호.
U.S. Department of Defense. 1990. 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 Century. Washington D.C.: US G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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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교수. 정치이론, 한국정치, 국제관계, 한미관계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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