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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내놓기가 조심스럽다. 개인적 느낌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두렵다기보다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이들의 삶에 대해 주관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이다.

'82년생 김지영'이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성별에 따른 남녀차별을 묘사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화두를 놓고 불편한 자들과 동의하는 자들의 대립이 '82년생 김지영'이 2019년 대한민국에 내놓은 시대의 담론이다.

[담론①] 여전한 가부장적 문화

영화 속에서 "여자는 조신하게 있다가 시집가면 그만이다", "집안에 사내아이가 넷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친할머니의 모습은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막내 남동생에게만 사탕이 물려있고, 식사 준비를 돕는 것은 딸들의 몫이다. 회의를 준비하는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회의 후 커피잔을 정리하는 것은 여사원들 뿐이다.

설거지를 도와주려는 대현에게 '신식 남편'이라며 은근히 눈치를 주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여전히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되는 존재'로 대변되는 남성 중심주의, 가부장적 문화의 잔재이다. 소위 바뀐 시대를 살고 있지만, 관습과 전통,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부장제는 우리 주변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인식하지 못하고, 묵인하고 있을 뿐.

[담론②] 여성 개인의 능력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스템
 
 영화 < 82년생 김지영 > 스틸 컷
 영화 < 82년생 김지영 >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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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 출신 엄마, 연기를 전공한 엄마 그리고 국문학을 전공한 김지영. 이들은 모두 주부이다. 전공을 살릴 만한 곳은 아이 구구단 가르칠 때, 동화책을 읽어줄 때이다. 엄마들은 한탄한다. 이러려고 열심히 공부했나.

복직을 희망하는 김지영에게 닥친 현실은 냉혹하다. 당장 아이를 맡길 곳은 없고, 시어머니의 반대 또한 심하다. 경제적 고민도 있다. 남편 대현이 육아휴직도 고려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시스템이 문제이다. 출산을 한 여성이 복직을 희망할 때, 능력이 충분하다면 마땅히 존중받고 발휘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불어 육아휴직, 동등한 임금 보장 등과 같은 명목 뿐인 사회적 제도 또한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기획팀을 희망했지만 낙오한 지영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남성 위주로 선발했다는 기획팀장의 말을 듣는다. 현실이다. 개인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출산과 육아라는 벽을 마주해야 하는, 지영의 모습은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능력있는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

[담론③]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

공공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카메라, 성폭행을 당할 뻔한 딸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아빠의 모습은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몰카가 설치된 것을 확인하고도 본인의 사진을 확인하는 것을 주저하고, 성범죄를 당할 뻔하고도 "웃어주지 마라", "옷을 단정히 입어라"라며 면박을 받아야 한다.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사회이다. "너가 조심했어야지, 조신했어야지"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의 주체를 돌린다. 이러한 사회의 인식 속에서 피해자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움츠러든다. 숨기고 밝히지 못한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범죄는 반복되고, 악순환은 거듭된다. < 82년생 김지영 >은 이렇게 피해자가 고통받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담론④] 우리 주위의 미숙, 가족에게 희생한 엄마의 삶

초등학교 때는 큰오빠보다 공부를 잘했지만, 오빠들 공부시키기 위해 교사라는 꿈을 포기하고 청계천에서 옷을 만들어야 했던 미숙. '그때 여자들은 다 그랬어'로 표현되는 미숙의 삶은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아들이 우선적으로 잘되어야 하고, 여자는 그 뒷바라지를 해야한다는 사고가 지배했던 전근대적 시대의 전형이다.

자신은 그렇지 못했더라도 딸 지영만큼은 눈치보지 않고 나대길 원했던 미숙은,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아픈 지영의 모습 앞에서 무너진다.

미숙의 어머니가 되어 너를 볼 때 아팠다고 말하는 김지영의 말은, '그땐 그랬어'의 그때를 살았던 우리의 엄마, 이모, 그리고 누나들에게 전하는 위로이다. 자신보다는 자식을 위해 자기를 희생했던 삶에 대한 처절한 공감이다.

< 82년생 김지영 >은 원작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부터, 영화화가 확정되고, 개봉하고 나서까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에 맞서 '00년생 000'과 같이 남성도 똑같이 힘들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군대에서 120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병이 '고작 10명의 식사 준비하는 것이 힘드냐'라는 리뷰를 본 적이 있다. 남성 또한 차별받고 있으니 알아달라는 것이다.

'나도 힘드니까. 유난 떨지마'라며 비난하는 것은, < 82년생 김지영 >이란 작품을 단순히 남녀차별을 토로하는 것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나오는 유치한 논리이다. 앞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남녀차별을 넘어서 사회적 인식과 제도, 관습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어떻게 시대에 발맞춰야 하는지 생각해보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래서 < 82년생 김지영 >을 읽어야 하고, 봐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잘 살기 위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그렇게 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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