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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파동'이 남긴 과제, 공정사회

19.10.16 22:0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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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4일 사의를 표명하며 두 달 넘게 지속된 여야의 '조국 공방'은 일단락 됐지만 그로부터 촉발된 사회적 과제가 새로이 쌓였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공정사회 실현'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정의를 앞세웠던 강남좌파에게 표출된 N포 세대의 분노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사의를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기자
 
물론 조 전 장관에 항의하는 목소리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검찰개혁을 우선과제로 삼는 외침도 이어졌다. 목소리는 이윽고 서초동과 광화문 두 패로 갈라져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탁 트인 공간에서는 '조국 임명 철회'가, 조 전 장관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인근에서는 '조국 수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서초동 집회의 경우 조 전 장관을 잃으면 문재인 대통령까지 잃을 수 있고, 검찰개혁은 다시 무산될 것이란 위기의식의 반영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를 두고 "국론분열이 아닌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 행위"라 평했지만, 개천절과 한글날 등 공휴일과 주말마다 서울 일대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부르짖는 혼란이 거듭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국 파동'을 계기로 한국 사회는 공정사회 실현, 검찰개혁, 갈등 완화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그러나 여야는 공정사회나 갈등 완화라는 과제보다는 일단 검찰개혁 여부를 우선과제로 삼았다. 조 전 장관 사퇴 발표 두 시간 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은 문재인 정권 집권 연장 시나리오일 뿐이다. 다음 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질세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15일 연석회의에서 "검찰개혁을 검찰 장악 시나리오라며 공수처법을 다음 국회로 넘기라는 것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극단적 오만"이라 반박했다.
 
두 거대 정당 어디에서도 이번 '국론 분열'의 시발점이 된 공정사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 청년세대의 분노 : 위선과 가식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30대에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이렇게 말한 것으로 대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했다는 말도 있고, 프랑스의 어떤 정치인이 한 발언이라는 말도 있다. 사회주의는 대표적인 좌파·진보사상 중 하나다. 소비에트 연합이 내부적으로 서서히 무너져 가던 1970~1980년대 무렵 이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만큼 젊은 세대들이 사회공정과 정의를 중요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기자가 기억하기로 조 전 장관이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이전에도 조 전 장관은 사노맹 사건에 연루되는 등 사회활동을 이어왔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얼굴과 이름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광우병 사태와 4대강 사태를 거치며 대표적인 '강남 좌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수 진영에서 '폴리페서(politics+professor·정치교수)'라는 비판까지 받아가며 그가 줄곧 내세웠던 것이 공정과 정의로운 사회였던 만큼, 최근 두 달여 간의 파동이 청년들에게 준 상실감은 컸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특히 '믿었던 사람'에 대한 기대가 어긋날 경우 실망을 넘어 배신의 감정까지 자극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에 이어졌던 광화문 집회가 정치적 개입 없이 조 전 장관의 딸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 및 입시·장학금 특혜 등에 반발한 학생들의 자발적 집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이러한 상실감과 배신감에 대해 "몰랐다"는 해명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오히려 위선과 가식으로 비칠 여지마저 있다.
 
■ 86세대의 보수화
 
군사 쿠데타, 광주학살, 정적 숙청, 보도지침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사의 암울기에 권력에 맞서 싸웠던 운동권 세대의 모습은 당시 청년들에게는 '영웅'으로 비춰졌지만 지금의 청년들에게까지 마냥 영웅은 아니다. 소위 말하는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가 오늘날의 실질적 민주화를 일궈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 반발하는 반공세대들도 있지만, 유신체제와 신군부에 항거하며 '87년 체제'를 이끌어낸 데에는 이들의 노력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86세대가 한때 자신들이 가졌던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미투(ME TOO) 운동이 불거졌던 2017~2018년의 경우, 여권 측에서는 사회 부조리를 타파하겠다며 발 벗고 나섰지만 오히려 돌아온 것은 안희정(83학번·64년생) 전 충남지사, 정봉주(80학번·60년생) 전 의원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미투 폭로였다. 여기에 비(非) 86세대 여권 인사까지 연루되며 청년층의 분노는 한층 더 커졌다. "네이버는 평정됐다"던 진성호 전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 등 그동안 보수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여론조작도 '드루킹 사건'은 진보진영조차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줬다. 이재명(82학번·64년생) 경기지사에 대한 각종 의혹들은 덤이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불신에 대한 대안으로 촛불을 등에 업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 불거진 안 전 지사와 김경수(85학번·67년생) 경남지사, 이 지사 등에 대한 의혹은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이런 가운데 강남좌파 대표 주자로 치부되던 조 전 장관 일가에 제기되던 의혹들을 목도한 청년층이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의 분노는 믿었던 이들의 배신을 향하고 있었다. 다소의 흠을 감안하더라도 '국정농단 무리 보다야 낫겠지'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결국 작금의 사태는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현재의 '87년 체제'를 이룩해낸 86세대가 정작 그들이 강조하던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 앞에서 본인들도 자유롭지 못한 채 보수화된 현실에 경종을 울린 셈이 됐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의미에서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공식은 오히려 굳건해진다. 좌파 지식인들이 권력의 핵심층에 올라서며 보수화됐을 뿐이다.
 
■ 與野는 다시 정쟁 속으로…소외되는 '공정성 담론'
 
그러나 조 전 장관이 사퇴한 지금에도 거대양당은 2차전을 준비 할 뿐이다. 검찰개혁 및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3+3회의나 2차 정치협상회의에 대한 말은 나오지만 소외된 청년층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청년들의 자발적 모임'임을 강조하며 '조국 사퇴'를 외치던 한국당은 조 전 장관이 사퇴하자마자 '검찰개혁 저지'로 구호를 바꿨다. 여기에 맞춰 민주당은 선(先) 검찰개혁을,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은 여야4당 합의 이행(선(先) 선거법)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여야의 단순하면서도 거대한 담론 앞에서 청년층이 바라는 공정과 정의라는 담론은 힘을 얻지 못하는 듯하다. 어느새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여야의 온 신경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으로서는 2년이나 더 남은 문 대통령의 임기 동안 최대한 레임덕을 늦추며 정책추진에 동력을 보태야 하고, 박근혜 딜레마에 빠졌던 한국당은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로 상당한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당권파)도 '제3정당' 실현을 위해서는 이번 기회를 살려야 한다. 정의당은 이미 거대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왜 '정치학'에서 정당의 존재 이유를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권력의 획득', '의석 확보'라 정의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국 사태로 청년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공정사회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음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왔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그런 그들의 분노를 버려둔 채 다시 새로운 정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현 여야의 모습대로라면 내년 총선에서 누가 과반의석을 거머쥐든 청년들의 목소리를 기억이나 해줄지조차 의문이다. 김종서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기획총장은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청년정책 공개간담회에서 "안타까운 점은 이 사태를 진영 논리로 해석해 국론분열의 상황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씌워 본질을 흐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시민들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상태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선거를 이렇게 혹평했다. 희망이 무너지면 의지가 무뎌지고, 심리적 마지노선까지 무너지면 외적으로 나타난다. 이 때의 행동은 회광반조(回光返照)와 같은 적극적 행동일 수도, 염세적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미 민주당 이철희(82학번·64년생) 의원은 조 전 장관 사퇴 다음날 "어느새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 또한 86세대다. 같은 86세대에서도 '변하지 않는 정치 현실'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 때 시대를 이끌었고, 명실상부한 기성세대로서 현실을 이끄는 주역인 86세대가 청년들에게 대답할 차례다. 동시에 자신들이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정계에 입문하며 바꾸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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