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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이라는 나이는 어중간하다.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린 것 같고,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또 약간 면구스럽다. 홍대 클럽 같은 곳은 얼씬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관광나이트를 가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그래서 서른여섯을 '청춘과 성숙 사이에서 한들거리는 시기'라고 내 멋대로 정의 내리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2019년, 서른여섯에 나는 일터를 잃었다. 그리고 글을 약간 썼다. 내년 목표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이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 그래도 무사히 서른여섯 살이 된 것이 어디냐 싶다. 운이 조금만 더 나빴다면 내 나이는 열두 살에서 멈췄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다 천국 문 앞까지 다녀왔던 12살
 자전거 타다 천구 문 앞까지 다녀왔던 12살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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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던 90년대 중반에 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배운 다음날이었다. 자전거를 타면 건널목이나 사각지대에서 일단 멈춰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확 튀어나가 달려오던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그 사고로 두개골에 금이 가고 한쪽 고막이 터졌다. 의식이 돌아온 것은 이틀이 지난 후였다. 놀랍게도 나는 수술을 받지 않았다. 한창 자라는 초등학생이다 보니 두개골도 고막도 자연치유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히 울버린급 회복력이다.

대신 수많은 검사와 촬영과 투약을 반복해야 했다. 처음에는 팔 안쪽에 꽂던 링거도 바늘 자국이 늘면서 손목, 손등, 발등으로 차츰 내려갔다. 발등에 꽂는 링거 바늘보다 더 괴로운 것은 입원 생활이었다.

내 병실 메이트는 보통 손녀를 둔 할머니들이셨다. 티비 채널은 항상 연속극에 고정되어 있었다. 또래가 한 명도 없는 6인실에서 나는 매일 무료함과 싸워야 했다. 입원했던 대학병원은 내가 다니던 시골 학교에서 차로 1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라서 친구들이 찾아오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나는 매일 엄마만 오매불망 기다렸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는 늘 바빴다.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우리 남매가 깨기 전에 일을 하러 나갔다. 저녁이 항상 엄마보다 먼저 왔다. 엄마는 우리를 먹이고 살리기 위해 빛보다 먼저 나가서 어둠보다 늦게 들어왔다. 여가라고는 한 톨도 넣을 수 없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덜컥, 딸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엄마는 내가 입원한 두어 달 동안 매일 병원에 왔다. 시골 읍내에서 대학병원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결혼과 동시에 시골 아낙이 되어버린 엄마에게는 심적 거리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반드시, 아주 짧게라도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는 매일 책을 보고 아줌마들의 말 상대가 되어드리고, 병동을 한 바퀴 돌고 괜히 휠체어를 타보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러다 지루함에 몸이 배배 꼬일 때쯤이면 엄마가 점퍼에 바깥 냄새를 묻히고 나타났다. 나는 신나서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왜 이제 왔어!!" 하며 괜히 투정을 부렸다. 엄마의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파리해지는 것도 모르고.
 
 병실 형광등 아래서 먹었던 첫 피자의 맛
 병실 형광등 아래서 먹었던 첫 피자의 맛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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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처음 먹어본 기억도 이즈음이다. 병원에 누워있는 딸이 애처로워 엄마는 큰 맘먹고 병원 근처를 뒤져 '피자'라고 하는 음식을 사 왔다. 엄마도 나도 먹어본 적 없는 신문물이었다. 90년대 중반의 그 시절, 우리는 촌에 살며 피자빵은 먹어봤어도 피자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박스를 열자 노릇노릇한 피자치즈 위에 피망과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흩뿌려져 있었다. 화룡점정은 커다란 원 정중앙에 딱 하나 올라간 핫핑크 색 통조림 체리였다. 아직까지도 왜 피자 토핑으로 체리를 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에 처음 맛본 피자는 따뜻하고 차지고 폭신폭신했다. 음식이 식을까 병실까지 소중히 품고 온 엄마의 마음처럼.

"그때 엄마가 피자 사 왔었잖아. 내 인생 첫 피자. 통조림 체리가 올라가 있었는데."
"별걸 다 기억 헌다. 너는."
"아니 너무 맛있어서 잊을 수가 없네."
"그때 니가 참 어렸지... 어렸는데 그 사고를 당허고..."
"잠깐만. 엄마 그때 몇 살이었지?"
"가만있자... 서른여섯이었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때 엄마의 나이가 고작 서른여섯, 지금의 내 나이였던 것이다. 서른여섯의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한 뒤 일터로 향했다. 내내 구부정하게 일을 하다가 어두워져야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 잠시 내가 입원한 병원에 왔다가, 다시 그 거리를 돌아 집에 간 것이다. 집에는 잠든 어린 아들과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하루치의 집안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캡틴마블도 도망칠 것 같은 일과표다.

서른여섯의 나는 서른여섯의 엄마에게 할 말이 '어떻게' 밖에 없다. 그때 어떻게 매일 병원에 왔어. 어떻게 동생을 챙겼어. 어떻게 그렇게 살았어. 어떻게. 엄마는 '아이고 모르겠다'고 손사래를 칠 뿐 더는 말이 없다.

나는 상상해본다. 그 어둑한 시간을 이 악물고 버티는 서른여섯의 한 여자를. 하루는 딸의 금 간 두개골이 조금씩 붙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에 견디고, 다른 하루는 입을 헤 벌리고 잠든 어린 아들의 속눈썹 그늘을 바라보며 버텼을 것이다.

서른여섯은 어떤 나이인가. 누군가는 새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새내기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기업의 대표가 된다. 누군가는 아픈 딸을 위해 초인이 되고, 또 어떤 누군가는 부모의 서른여섯을 대신 적는다. 체리 토핑 피자와 함께 나타났던, 가난한 나의 캡틴마블을 기억하기 위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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