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기 없는 세상.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땅에 파묻힌 1만 마리의 돼지들을 보며 상상해봤습니다. 사람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돼 전염병이라도 돌면 살처분 당하는 돼지들. 사람은 꼭 고기를 먹어야 하는 걸까요? 더 나은 대안은 없을까요? 1년 전부터 육식을 하지 않은 채식주의자 류 기자와 잡식주의자 조 기자가 만나 ‘가짜 돼지고기’를 먹으며 그 대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편집자말]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 류승연

관련사진보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빨간 고기와 칼집 난 프랑크 소시지, 평범한 햄 샌드위치의 비주얼까지. 얼핏 보면 정말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 3종 세트로 착각할 만도 했다. 하지만 이들 요리의 주재료는 진짜 고기가 아니라 콩이나 밀이다. 

기자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세 종류의 '돼지고기 대체육'을 주문했다. 베지푸드사의 베지 슬라이스 매운맛(250g 5200원)과 베지프랑크(200g 4500원), 비건팜사의 글루텐프리 콩햄 건강한맛(480g 1만900원)이었다. 

성분표를 보면 베지 슬라이스는 '밀'이 주원료다. 밀글루텐에 고추장과 물엿, 땅콩, 호두 등 숯불고기 양념을 섞었다. 베지프랑크와 콩햄은 '콩'으로 만들었다. 베지프랑크는 70%의 대두분리단백(대두)에 밀글루텐, 밀 전분 등을 섞어 만들었고, 콩햄은 글루텐 없이 80%의 대두분리단백(대두)에 옥수수 전분, 전분가공품 등으로 만들었다.

지난 24일 도착한 상품들을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구웠고, 금방 한 상을 차렸다. 

진짜와 가짜, 오감의 차이

류 기자 "이렇게 모아두니 그럴 듯하네요. 무엇보다 겉모습이 확실히 고기예요. 물론 냄새까지 고기는 아니지만요."

조 기자 "귀는 즐거웠어요. 프라이팬을 달군 뒤 고기 올릴 때 나는 '차르르'하는 그 소리랑 정말 비슷했거든요. 베지프랑크는 칼집을 내고 구웠는데 돼지고기로 만든 프랑크 소시지랑 모양이 거의 똑같았어요. 그런데 콩이나 밀이어서 그런지 별다른 향이 안 나서 아쉬웠어요. 고기에는 특유의 향이 있잖아요. 심지어 콩, 밀 냄새도 안 나더라고요. 조리하는 즐거움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류 기자 "그러면 콩햄을 먼저 먹어볼게요. 먹어보니 맛도 고기는 아니네요. 감히 고기를 흉내 냈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맛인 것 같아요. 씹을 때마다 끊기는 느낌이라 질긴 식감의 고기와는 차이가 있고요. 그런데도 맛있네요. 고소한 맛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가짜 고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롭게 개발된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요."

조 기자 "콩햄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명 '분홍소시지'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런데 맛은 전혀 다르네요. 조리법을 다르게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굽기만 했을 땐 가공된 콩 맛만 나요. 분홍소시지를 기대하고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슬라이스는 대형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추장불고기랑 생김새도 똑같고, 맛도 거의 같아요. 충격적이네요. 솔직히 '가짜 돼지고기'들을 시식하기로 했을 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슬라이스는 양념이 돼 있어서 그런지 콩 맛도 나지 않고 맛있어요."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 류승연

관련사진보기


류 기자 "확실히 슬라이스는 더 고기와 가까운 맛이네요. 육식했을 때 먹었던 숯불고기, 그 양념이에요. 고기의 말캉말캉한 식감도 꽤 잘 만들어낸 것 같아요. 냄새도 같고요. 문제는 너무 고기와 닮아서 거부감이 든다는 거예요. 동물을 어떻게 사육하고 도축하는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 채식을 시작했거든요. 고기를 아예 먹지 않기로 다짐한 거죠. 그런데 이 제품은 진짜랑 너무 비슷해서 씹을 때마다 마음이 켕겨요."

조 기자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식감이 정말 육고기와 비슷하잖아요. 콩햄은 씹을 때 뚝뚝 끊어지는데, 슬라이스는 어떻게 이렇게 쫄깃할 수 있을까요? 성분표를 보니 콩이 아니라 밀로 만들어진 제품이네요. 아마도 밀의 글루텐 때문에 이런 식감이 나오는 것 같아요."

류 기자 "마지막 베지 프랑크를 먹어볼게요. 고기 냄새는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냄새가 아예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식감은 닮았네요. 이전에는 프랑크 소시지를 좋아했는데, 고기로 꽉 채워진 소시지를 이로 터트렸을 때 밀려드는 쾌감 때문이었거든요. 비슷한 식감이 느껴져요. 하지만 맛은 다르네요. 소시지에서 수분과 기름기를 남기지 않고 모두 빨아들였을 때의 퍽퍽한 느낌이랄까. 분명한 건 찾아먹을 것 같진 않은 맛이라는 거예요."

조 기자 "저도 베지 프랑크를 다시 사 먹진 않을 것 같아요. 콩햄 만큼이나 가공된 콩 맛이 많이 나거든요. 차라리 두부나 낫토를 먹는 게 훨씬 낫겠어요. 아무래도 육고기에는 비계가 있고, 소시지를 만들 때 그 부분이 같이 들어가지 않을까 해요. 그래서 굽기만 해도 기름기가 소시지 속에 배어 있는 것 아닐까요."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 류승연

관련사진보기


류 기자 "저는 콩햄은 사먹을 마음이 있어요. 새로운 음식을 발견했다는 기분으로요. 또는 고기를 씹는 식감이 그리울 때요. 1년간 채식을 해왔지만, '소울 푸드'였던 부대찌개는 가끔씩 먹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부대찌개를 만들 때 주인공인 햄이 빠지면 안 되잖아요. 식감을 비슷하게 흉내라도 낸 이 햄이라도 넣어 먹고 싶어요."

조 기자 "확실히 저랑 입맛이 다르네요. 저는 슬라이스가 가장 맛있었어요. 비계 맛은 없었지만, 상추에 싸서 먹으면 고추장불고기와 차이를 거의 못 느낄 정도였어요. 건강을 생각해서 고기를 좀 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씩 꺼내 먹으면 좋지 않을까 해요.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에요."

류 기자 "저도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어요. 다만 사먹는다 해도 자주 사 먹진 못할 것 같아요. 가격이 꽤 비싸더라고요. 예를 들어, 이번에 주문한 콩햄은 480g에 10900원인데 '진짜 햄'은 인터넷상에서 450g 7000~8000원에 판매되고 있었어요. 가짜 고기, 이른바 대체육 시장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가격일 듯하네요."

개발 중인 대체육, 진짜 육(肉) 대신할까

우리나라에서 '채식 시장'이 관심 받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당시 오픈마켓 옥션은 채식라면의 2016년 매출이 전년보다 469% 늘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매년 덩치도 커졌다. 오픈마켓 11번가에 따르면, 지난해 콩고기 매출은 전년보다 1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식물성 조미료와 채식라면의 매출도 각각 8%와 11% 뛰었다. 이에 따라 동원 F&B와 롯데 푸드 등 대기업들도 채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진짜 고기 대신 대체육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은 기대보다 늘지 않고 있다. 채식라면도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일반라면의 대체재가 되기는 역부족이다. 

조 기자 "슬라이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가격을 봤는데 만만치가 않네요. 250g에 5200원이라니, 인터넷으로 구입한 것치고는 비싸게 느껴져요. 검색해보니 진짜 돼지로 만든 건 500g에 5000원대예요. 채식불고기가 2배가량 비싼 셈이네요. 건강을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아주 비싼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고민은 돼요."

류 기자 "가격도 가격인데, 저는 우리나라 채식 시장이 발달하지 못하고 있는 건 타겟층이 애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저 같은 채식주의자조차 고기와 비슷한, 가짜 고기 제품보다는 맛있는 채식 메뉴를 먹고 싶거든요. 얼마 전 인도를 다녀왔었어요. 꽤 많은 인도 사람들이 소를 먹지 않는 힌두교이거나 돼지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라, 인구 대비 채식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아요. 그만큼 채식 메뉴 개발도 많이 돼 있죠. 인도에서 먹었던 야채 피자와 채즙이 흘러넘치는 만두를 잊을 수가 없네요."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지난 24일 기자들이 직접 대체육, "가짜 돼지고기"를 시식해봤다
ⓒ 류승연

관련사진보기

 
조 기자 "육식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지금의 대체육은 여러 면에서 '진짜 고기'로 느껴지지 않아요. 좀 더 진짜 같은 대체육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고기를 좋아하지만 동물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저는 소, 돼지, 닭에게 미안하지만 특유의 쫄깃하고 풍부한 맛을 포기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고기의 맛과 향을 그대로 가진 대체육이 개발되고, 가격이 고기만큼 떨어진다면 그걸 먹을 것 같아요. 죄책감에서 벗어나면서도 그 맛을 즐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류 기자 "애초에 고기와 똑같은 맛, 똑같은 가격의 대체품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과연 대체품을 선택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어요.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이유 때문에요. 또 동물들에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의 죽음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채식 시장이 발전하려면, 대중들에게 채식 음식을 선택해야 할 새로운 이유를 알려야 할 것 같아요. '건강을 위해서'라든가, 고기를 많이 먹으면 걸리는 병들에서는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식으로요. 그러면 채식 인구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조 기자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기를 먹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점은 채식을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이에요. 회식 단골메뉴는 삼겹살에 소주이고, 친구를 만나도 양꼬치, 닭갈비 같은 걸 주로 먹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난 채식을 하니까 채식메뉴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골고루 먹어야 좋다', '웬 유난이냐' 등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요. 이 관문 아닌 관문을 통과해야 채식인으로 거듭날텐데, 저에겐 고역일 것 같아요."

류 기자 "저 역시 식이습관을 매번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채식주의자들이 들어야 할 단골 질문 몇 가지가 있는데요,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냐'거나 '식물도 살아 있는 건데 불쌍하지 않냐'는 거였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육식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채식을 선택한 제 입맛이 독특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해요. 하지만 그런 제 입맛을 변호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무도 치킨 먹는 사람에게 '왜 육식을 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그냥 취향존중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태그:#대체육, #돼지고기, #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ASF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