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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말하고 꿈꾸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대, 우리에게는 더 많은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야망 있는 여자들을 위한 비밀사교클럽'은 사회 곳곳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마음껏 야망을 품고 살아가는 30대 이상 여성들을 인터뷰합니다.[편집자말]
(* 정지연 대표 인터뷰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일하는 정지연 대표
 일하는 정지연 대표
ⓒ 스트리트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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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발행인으로서 꾸준히 잡지를 만들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진 않을까. 출판계는 비교적 여성이 많은 편이라고 하지만, 어디에서든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을 찾는 건 힘든 현실이니 말이다. 이제 막 이삼십 대를 보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와의 차이점도 궁금했다.

- '야비클럽' 인터뷰 시리즈는 '일하는 여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그동안 여성으로 일해오는 건 어땠나.
"대학 4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삼성물산이 여성 500명 채용 공고를 대대적으로 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다. 온 학교가 다 들썩였다. 당시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시험 삼아 지원해봤다. 서류 통과해서 1차 면접에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세상에. 몇 배수를 뽑아 놓은 건지 면접장 안에 비슷비슷한 정장을 입은 여자들이 꽉 차 있었다. 종종 그때 그 풍경을 생각한다. 어쩌면 나도 그중 하나였을 수 있었던, 그 500명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하고. 가끔 인터넷에 '삼성물산 여성 500명' 이렇게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최근 그들 가운데 임원이 된 여성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구나. 진정 살아남아서 임원이 된 사람이 있구나 싶어 반갑고 뭉클했다.

역시 졸업반 때 이야기다. 모 그룹 홍보실 직원 채용 면접에 나간 적이 있다. 4개 대학 학보사에서 4명을 추천받은 자리로, 식사 자리를 겸한 임원급 면접이었다. 압박면접이 시작됐다. 당시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이 이슈였는데, 이와 유사한 성추행 사건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해결하겠냐는 것이 질문이었다. 처음엔 다들 당사자와 잘 해결해보겠다고 답변하며 넘어갔다. 임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당사자와 해결이 안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계속 압박해왔다.

그 순간 짜증이 났다. 고작 이 면접이 뭐라고 나의 신념을 여기서 버려야 하나. 당사자와 노력을 하고 바로 윗상사를 통해 문제제기를 해도 안 된다면 여성사우회 같은 단체에 얘기해서 문제 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또 한 명도 나와 결국 유사한 답변을 했고, 그러나 끝까지 개인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붙었다. 여성으로서 일하는 것은 이처럼 시작 단계부터 쉽지 않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랄까?"

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 30대로서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간 40·50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절실하다. 그런데 여성 롤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일하는 40·50대 여성의 모습을 사회가 지워왔으니 당연히 안 보일 거다. 일하는 여성이다가 점차 아내나 어머니로 사라져 버리는 여성들의 이야기, 유리 천장에 부딪혀 좌절하고 종국엔 사라져버린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쌓아온 각각의 경험, 개별의 스토리들도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기록되는 건 성공한 몇몇 여성들의 이야기밖에 없다. 그중에는 물론 훌륭하게 성취를 이룬 인물들도 있지만, 남성중심사회에서 남성중심의 논리를 몸에 익히고 '명예남성'이 되어 그 성취를 얻은 인물들도 꽤 많다. 혹은 정말 드문 몇몇 슈퍼우먼들의 성공담일 뿐이거나.

롤모델까지 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직장인으로서 일정 정도 훌륭한 성취를 이루고 종국엔 떠밀리듯 회사를 나가거나, 스스로 회사를 박차고 나가 결국 프리랜서로 일하는 n명의 여성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들이 각각 커리어의 기로에서 내린 선택, 그 개별의 성취와 실패의 기록 역시, 남아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줄 텐데 말이다."

- 40·50대에 커리어를 잃지 않고 살아남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준다면 무엇이 있을까.
"독서클럽 트레바리에서 로컬 콘텐츠를 주제로 클럽장을 하고 있다. 거기서 한 멤버는 작은 실험을 하고 있었다. 4명의 친구들이 다 직장을 놓지 않으면서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돈을 조금씩 내서 A라는 친구가 낸 가게의 투자자가 되고, 거기서 수익이 조금 나면 B라는 친구의 업장에 투자를 하는 식이었다. 생활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사이드잡을 크게 잡지 않는다는 게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대표님은 그렇게 할 생각 없나. 조직에 들어가서 사이드잡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어떤가.
"불러 준다면 마지막으로 한번 도약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러나 과연 될까? 어머니가 얼마 전에 그러시더라. 넌 큰 조직 들어가면 못 견디니까,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어쩌면 어머니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웃음). 큰 조직에서 오는 큰 책임과 큰 스트레스를 잘 감당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작은 조직을 만들어서 작은 책임감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온 셈 아닐까.

회사에 있는 동안 작은 테스트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창업해보면 많이 외롭고 힘들다. 멘탈이 튼튼할 때 시작해야 한다. 퇴사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궁핍할 때 덜컥 저지르면 안 된다는 말씀도 덧붙인다."

결국 우리 모두 여행자이니까
 
 정지연 대표
 정지연 대표
ⓒ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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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있는 40·50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여성'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세대'로서 공감하는 것이 적어 아쉬웠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일까.
"밀레니얼 세대는 달라진 업무 환경만큼이나 일이나 삶을 보는 관점이 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내 또래와 얘기해보면 '요즘은 신입들도 다 팀장처럼 일하려 한다'고 하더라. 그만큼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이 가진 콘텐츠를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내 것을 해야 한다는 욕구가 큰 것 같다. 이런 다른 가치관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와 이전 세대의 소통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밀레니얼들도 우리와 일해야 하고, 우리도 밀레니얼들을 고용하거나 협업자로 삼아 일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할지 궁금해서 밀레니얼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멤버십 서비스도 기웃거려 보았고, 또 1인 여성 기업가들을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도 찾아봤지만, 거긴 강남 베이스이기도 했고, 또 너무 성공한 분들의 멤버십 같았다(웃음).

밀레니얼들은 우리를 그냥 윗세대, 꼰대라고 통칭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이쪽도 (나는 중간계라 부르고 싶은데), 이 중간계의 선배들도 고민이나 삶의 방식이나 일을 생각하는 관점에서 층위가 무척 다양하다.

특히 50대는 생애전환기 고민 역시 크다. 직접적으로 노후가 불안으로 엄습해온다. 이런 모든 걸 따져 보면 결국은 세대로 나뉠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이나 소통하는 방식, 가치관 등에서 결이 맞는 여성들끼리 세대를 넘은 공감대를 만들 수 있도록 더 작게 쪼개고 섬세하게 접근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홍대 외 지역에 사는 독자도 많다. <스트리트 H> 외에 다른 지역 잡지도 소개해줄 수 있겠나?
"대전에는 <월간토마토>, 수원에는 <수원사이다>, 서촌에는 <서촌라이프> 등이 있다. <다시, 부산>도 신흥 주자이다. 조금 결이 다른 지역잡지지만, <전라도닷컴>도 훌륭한 콘텐츠를 보유한 잡지다."

사막은 모래 바람이 불 때마다 지형이 너무 심하게 변해 지도가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대신 하늘을 본단다. 별자리를 더듬어 가야 할 길을 안다고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서 누군가에게 해법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롤모델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도 이 시대를 먼저 살아보지 않았기에 명확한 지도를 가지고 있는 이가 없는 건 당연하다. 다만 우리는 먼저 하늘을 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기억에 바래 조금 흐려졌을지라도 원망할 필요는 없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여행자일 뿐이니까.

정지연 대표는 나의 고민에 꽤 많은 힌트를 주었다. 과자 부스러기를 줍는 헨젤과 그레텔의 마음으로 인터뷰를 했다. 독자들도 좋은 힌트를 주웠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홍대를 사랑하는 그녀의 <스트리트 H>가 몇십 년이고 살아남아 세계의 레전드가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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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