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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부모님이 노령으로 접어들면서 노인 문제는 구체적인 관심과 고민이 되었다. 나아가 내 자신의 노후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노년은 '책과 함께' 하는 그런 삶이다. 나이 들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시간을 어찌할 것인가. 시시때때로 파고들 세월의 덧없음과 몸의 불편함, 그로 인한 상념과 고통은 또 어찌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책이라면 위로 받거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처럼 '죽는 날까지 책을 읽으며'의 바람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 노인 문제 혹은 노후에 관심 두기 시작하면서 보다 구체적인 바람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평생 농부의 아내로 집과 들만 보고 살아온 엄마의 노후가 다시 바라봐지기 시작했다.

시골집 엄마의 노후
 
 책보 속 책. 수준을 다른 숨은그림찾기 책. 가운데 책은 지난 가을 20대 딸과 재미붙여 했던 시리즈이기도 하다. 큰 글씨 책이 없다는 서점 직원의 말에 우선 떠올랐던 것은 한국단편소설집. 그러나 대부분 글씨들이 작고 엄마가 어쩌면 이해못할 단어나 표현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큰 글씨 책만큼 글씨가 크진 않지만 일반 단행본들보다 큰 데다가 중학교 교과서 소설인만큼 내용과 표현도 어느 정도 쉽고 순하지 않을까? 그래서 선택했다. 읽어주면 좋아하신다.
 책보 속 책. 수준을 다른 숨은그림찾기 책. 가운데 책은 지난 가을 20대 딸과 재미붙여 했던 시리즈이기도 하다. 큰 글씨 책이 없다는 서점 직원의 말에 우선 떠올랐던 것은 한국단편소설집. 그러나 대부분 글씨들이 작고 엄마가 어쩌면 이해못할 단어나 표현이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큰 글씨 책만큼 글씨가 크진 않지만 일반 단행본들보다 큰 데다가 중학교 교과서 소설인만큼 내용과 표현도 어느 정도 쉽고 순하지 않을까? 그래서 선택했다. 읽어주면 좋아하신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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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아버지는 구십을 넘던 몇 년 전까지 책을 읽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껜 그간 책을 자주 선물했다. 지역의 다양한 직책을 맡아 일하시는가 하면, 이런저런 친목모임도 많아 바쁜 아버지였다. 하지만 엄마는 기껏해야 하루 몇 시간 마을회관에서 어울려 노는 것이 유일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지 전화해 보면 집에서 TV를 볼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혼자 남은 엄마의 노후가 더 걱정됐다. '엄마가 좀 더 젊었을 때 재미 붙여 읽을 책 한 권 하나 왜 선물하지 못했을까?' 그동안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단 생각에 후회됐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됐다. 내용은 같지만, 책 크기나 글씨가 30%가량 큰, 노년층을 위해 출간되는 '큰 글씨' 책이 있다는 것을(대략, 학생들이 보편적으로 쓰는 노트 크기다. 글씨는 16폰트 정도로 30% 가량 비싸다).

큰 글씨 책의 존재를 알기 전인 지난해 여름부터 노인 인구가 크게 늘고 있는 만큼 글씨 크기는 물론 나이 든 분들을 주요 독자로 하는 내용의 책도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큰 글씨 책이 실제로 출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작은 설렘까지 일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막상 고르려니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그림이어야 하고, 너무 복잡하거나 너무 단순해선 안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직접 가서 보고 골라야 하는데 시간이 쉽게 나지 않았다. 게다가 막상 엄마가 좋아하실 만하다고 고른 책이 내 진심과 다르게 엄마를 무시하는 결과를 만들면 어쩌나 망설이기도 했다. 

큰 글씨 책도 직접 보고 사야 한다 생각했다. 글씨 크기는 물론 내용도 살펴보고 사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늘 뭔가를 읽으셨던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어쩌다 간혹 불경이나 고전소설을 읽는 정도였고, 그것도 기억에 그리 많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책과 낯가림이 어느 정도 있을 엄마가 무엇보다 재미를 붙여 읽을 만한 내용이어야 했다. 

엄마의 생신을 며칠 앞둔 2월 중순 어느날 동네서점이라지만 규모가 꽤 큰, 그래서 지난 십여 년 동안 단골로 드나들었던 동네서점에 갔다. 글씨 크기와 책 크기 등, 큰 글씨 책 자체가 궁금해서 간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큰 글씨 책이 아예 없었다.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비치하지 않았다"는 직원의 대답에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할 수 없이 다른 책을 사다 드렸다. 그런데 큰 글씨 책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처럼 되었다. 1999년 겨울, 영어공부를 시작한 아버지와 함께 한자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한때 공부에 열정을 보이기도 했던 엄마시니, 이제라도 신경 쓴다면 얼마든지 책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딸인 내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책을 권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대형서점에서 '큰 글씨' 책을 찾아라
 
 올해 2월 엄마께 처음 선물한 책보. 책과 함께 숨은그림찾기에 필요할 여러 색의 펜과 보관할 봉투까지 챙겨드렸다.
 올해 2월 엄마께 처음 선물한 책보. 책과 함께 숨은그림찾기에 필요할 여러 색의 펜과 보관할 봉투까지 챙겨드렸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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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그동안 종종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서점에서 큰 글씨 책을 검색하곤 했다. 얼마 전 알게 됐다. 잡지 <좋은 생각>과 신영복 <처음처럼>, 법륜 스님 <행복>이 큰 글씨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반가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구입해 선물할 순 없었다. 평생을 농부의 아내로 이렇다 할 문화와 담 쌓다시피 살아오신 엄마가 책으로 느낄 간극도 배려해야 했다. 나름 가치 있고 좋은 책들이지만 우리 엄마와는 거리가 멀어 되려 책 읽는 게 고통이 될지 모른다는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또 한 권의 큰 글씨 책을 알게 됐다. <재미있는 사찰 이야기>(산지니 펴냄)가 그것. 온라인 서점에 소개된 목차를 훑으며 내용이 너무 어렵지만 않다면 사드리면 좋겠다 싶었다. 평생 절에 다니시니 흥미를 느끼실 것 같다.

실물로 직접 살펴볼 겸 모처럼 주어진 3일간의 휴가 첫날인 지난 6월 말 서울 시내 대형서점으로 갔다.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다면 내가 모르고 있는 책도 있을 것.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오프라인 서점인 만큼 큰 글씨 책도 많을 것. 그렇다면 선택 폭도 넓을 것. 고령화 사회인만큼 어쩌면 큰 글씨 책을 모아 놓은 코너도 있지 않을까?' 이와 같은 기대도 하면서.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도 동네서점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큰 글씨 책이 보이지 않아 서점에 설치된 검색대에서 '큰 글씨'로 검색했더니 700여 권이 검색되었다. 그런데 그중 대부분은 일부 종교 책. 게다가 검색 결과 화면 몇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재고 없음'으로 나왔다. 따로 모아 놓은 코너도 물론 없다. 그러니 일반적인 내용의 큰 글씨 책이 있어도 제목을 모르면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관련해서 덧붙이면, 6월 30일 기준 현재(직원과 통화) 교보문고에는 <좋은 생각>과 <처음처럼>만, 그것도 각 코너에 섞여 있다고 한다. 동네서점이라지만 규모가 꽤 큰 은평구의 두 서점인 불광문고와 연신내문고도 아쉽기는 마찬가지. 불광문고에는 <좋은 생각>, <행복>, <처음처럼>이, 연신내 문고에는 <좋은 생각>만 있다.

이들 서점에 큰 글씨 책을 모아 놓지 않은 이유나 없는 이유를 물었더니 모두 지난 2월에 찾았던 서점의 대답처럼 "책은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 비치하지 않았다"이다.

서점 입장도 이해는 된다. 그런데 몇 달 전의 나처럼 책에 관심이 많아도 큰 글씨 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게다가 노인 인구가 늘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감안, 서점이 먼저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진열하는 것으로 큰 글씨 책의 존재를 보다 많이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책 문화에 누구보다 역할 비중이 큰 서점이 말이다.

연로하신 엄마도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많았으면
 
 두 번째 책보 속 숨은그림 찾기 두 권 중 한 권. "지난 번에 사준 거 다시 보면 되지. 돈 어깝게 뭐하러 다시 샀냐?" 하면서도 "반지 여깄네! 숟가락도 있다..." 눈을 떼지 못하고 찾으며 좋아하신다.
 두 번째 책보 속 숨은그림 찾기 두 권 중 한 권. "지난 번에 사준 거 다시 보면 되지. 돈 어깝게 뭐하러 다시 샀냐?" 하면서도 "반지 여깄네! 숟가락도 있다..." 눈을 떼지 못하고 찾으며 좋아하신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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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엄마는 3월부터 고향 집에 혼자 계신다. 그런 엄마와 상의해 5월 초 고향집에 CCTV를 설치했다. 막연하게 상상하거나 지레짐작만 해오던 엄마의 일상을 작은 화면으로나마 살필 수 있음에 한동안 설렜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동안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자책과 죄송함은 더 커졌다. 엄마의 시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이지 않고, 무료하고 잔인하게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CCTV 화면 속 엄마는 여전히 많은 시간들을 누워서 TV를 보신다. 그대로 잠들 때도 많다. 그래도 가끔 얼마 전에 사드린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아마도 그동안 사다 드린 숨은그림찾기나 색칠공부를 하신다. 그런 엄마를 보며 사다 드린 소설집도 언젠가는 펼쳐 읽으시겠지 생각하곤 한다. 그때를 위해 엄마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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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