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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택 565채가 불에 탔고, 1132명이 졸지에 이재민이 됐다. 7월 13일은 산불이 일어나고 꼭 100일째 되는 날. 숫자에 드러나지 않는 천진초등학교 대피소 사람들 이야기를 담아봤다.[편집자말]
고성 곳곳엔 아직도 철거되지 않고 불에 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집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집 안에 들어가면 온통 새까맣게 그을린 벽과 기둥, 가전제품들에서 여전히 심한 탄내가 난다. 꼬부라진 스프링만 남기고 형체도 없이 타버린 침대나 열로 인해 심하게 녹아 내린 유리창, 하얀 부스러기가 돼버린 두꺼운 족보, 비현실적으로 흐물흐물 무너진 지붕들을 보면서도 나는 '집이 모두 불에 탔다'는 이재민들의 말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씨(73, 여)의 하모니카를 보기 전까지는.

하모니카
  
 고성 산불 이재민 서(73, 여)씨가 잿더미가 된 자신의 용촌리 집터에서 불에 탄 하모니카를 꺼내 보이고 있다.
 고성 산불 이재민 서(73, 여)씨가 잿더미가 된 자신의 용촌리 집터에서 불에 탄 하모니카를 꺼내 보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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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천진초 이재민인 서씨와 용촌리에 있는 그의 집터에 간 날이었다. 서씨와 함께 집안을 살펴보는데 시커먼 잿더미 속에서 맨손으로 뭔가를 휘적거리던 그가 직사각형 모양의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까맣게 타고 녹은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건 타버린 하모니카였다.

"저번에 왔을 땐 못 찾았는데 드디어 찾았네. 휴... 속까지 완전히 다 타 버렸구나... 젊었을 때 한번 내가 조카한테 돈을 빌려줬어. 근데 그걸 못 돌려받게 생긴 거야. 그때부터 잠도 안 오고 생전 없던 불면증까지 걸리더라고. 마음 고생을 너무 했는데 그때 중학생이던 딸이 학교에서 하모니카를 배우더라고? 그날도 잠이 안 오니까 내가 딸 하모니카를 한번 불어봤어.

그랬더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야. 매일 밤마다 딸 하모니카를 불었지.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았는데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거 웬만한 건 다 불 수 있는 정도였다니까, 하하하. 내가 하도 불어대니까 나중에 딸이 엄마 쓰라고 이 하모니카를 사주더라고. 지꺼(자기 것)보다 더 좋은 걸로. 30년도 더 된 일이지. 근데 이거 다 타버려서 어째..."


그제서야 나는 비로소 '집이 불에 다 탔다'는 이재민들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모두 탔다. 세월도, 추억도.

함경도 흥남 출신으로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가 된 서씨는 대피소에서 나를 볼 때마다 부식으로 받은 자유시간이나 초코파이, 두유 등을 꼭 챙겨줬다. 처음 몇 번은 사양했지만 당 떨어질 때 먹으면 도움이 된다면서 가방에 우겨 넣는 서씨의 손을 계속 뿌리칠 수는 없었다. 고성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날에도 서씨는 내게 어김없이 자유시간을 쥐어줬다.

시작
  
 지난 6월 26일 다시 찾은 고성 화재 현장의 모습. 천진초 이재민들은 이제 대피소가 아닌 7평 짜리 컨테이너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 한승호
 지난 6월 26일 다시 찾은 고성 화재 현장의 모습. 불에 모두 탄 서씨의 집는 아직 철거되지 않았다.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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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다시 고성을 찾았다. 마지막 임시 대피소였던 천진초 대피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정부가 약속했던 7평짜리 컨테이너 집이 천진초 이재민들에게 지급되면서 6월 17일부로 대피소가 해체된 것이다. 천진초 이재민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졌다.

서씨의 컨테이너는 용촌리 집터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서씨는 집터가 좁아 컨테이너를 놓을 수 없었고, 마을 공동부지에 컨테이너 집을 신청했다. 용촌리 공동부지엔 서씨네 컨테이너와 똑같이 생긴 30여 개의 컨테이너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서씨는 대피소가 없어지던 6월 17일 컨테이너로 거처를 옮긴 후 지금까지 일주일이 넘도록 물이 안 나왔다고 했다. 컨테이너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싱크대엔 채 닦이지 않은 그릇과 냄비가 가득 쌓여 있었고 일회용 숟가락과 종이컵, 플라스틱 라면 용기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엉망이었다. 기다리던 컨테이너에 입주했지만 서씨는 아직 이곳이 내 집 같지가 않다고 했다.

"물이 안 나와서 설거지도 못하고... 화장실이 제일 문제지. 처음엔 이웃집 화장실에 다니다가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눈치가 보여서 더는 못 가겠더라고. 그렇다고 마을회관 화장실 쓰는 것도 불편하고. 지금은 그냥 저기 이웃네 밭 옆에 있는 노상 화장실을 써. 물이 나왔으면 내가 밥이라도 해줬을 텐데... 나? 나는 그냥 햇반 돌려 먹고 인스턴트 쌀국수 해먹고 있었지. 오늘 공사 끝나면 물 나온다 그랬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다행히 그날 오후 서씨 컨테이너에도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천진초 이재민들 중 그때까지 컨테이너에 수도가 안 나오던 건 서씨네가 유일했다. 
 
 지난 6월 26일 다시 찾은 고성 화재 현장의 모습. 천진초 이재민들은 이제 대피소가 아닌 7평 짜리 컨테이너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지난 6월 26일 다시 찾은 고성, 천진초 이재민들은 이제 대피소가 아닌 7평 짜리 컨테이너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 한승호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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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초 이재민들은 이제 모두 각자의 컨테이너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다들 잘 있대. 저기 저 앞쪽 줄에 꼬부랑 할머니랑 변씨도 잘 있고. 그... 그 누구야... 그래 그 곱슬머리 아저씨도 컨테이너 잘 들어갔고. 다들 이제 다시 다 잘 살아야지. 걱정? 걱정해서 뭐 할건데?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이거 봐. 내가 박스 받아 놓은 거 위에다 스티로폼 사서 깔아가지고 이렇게 침대도 만들었잖아, 흐흐. 변변치 않아도 그래도 어쩌겠어. 그래도 대피소보단 낫잖아, 하하하. 다음에 꼭 다시 와. 그땐 꼭 밥해줄 테니까. 응응"

내복차림 그대로 마중을 나온 서씨가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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