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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시: 보X+메르시의 합성어로, 여성들이 게임 이해도 없이 치유형 서포터만 고집해서 아군 팀워크에 피해를 준다는 남성 유저의 시각으로 만들어 낸 멸칭.

혜지: 일명 '겜잘 남친한테 업혀가는 겜못 여친'과 '서포터만 고집하는 유저 유형'이 한국 여성 이름인 '혜지'로 구체화된 멸칭


"로리님, 게임 많이 안 해보셨죠?ㅋㅋㅋㅋ 그럴 거 같은데ㅋㅋ 제가 ㅇㅇ띠라서 ^^ 국내 온라인은 거의 다해봤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내 성별과 나이, 게임 마우스력(?)을 모르는 상태에서 한 남성 유저가 나에게 다짜고짜 건넨 말이다. 상대방의 나이나 성별, 게임 경력과 능숙한 정도를 유추하는 말은 아무리 친한 사이에도 조심스러워야 하지만, 여성 게이머들에게는 저런 단정과 무례가 낯설지 않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게임을 오래 했어도, 대다수 여성은 "나 몇 살이고 무슨 띠고 게임 엄청 오래 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반대의 사례는 너무나 흔하다.
 
이것이 게임 세계의 방식이다. 남성 게이머는 무엇이든 더 잘하고 능숙하며 게임을 철저히 분석하는 존재다. 그에 반해, 여성 게이머는 매번 죽고 우는 소리를 하거나 사고를 치는 쪽이다. 그래서 온갖 멸칭이 '당연하게' 붙는다. 여성 게이머는 게임에서도 일명 '김여사'로 취급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한테 장비나 이런 저런 아이템을 만들어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한 사람은 '게임 못하는 어린 여성'이 아니라 그 남성 유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드의 공동 창고에서 값 나가는 아이템을 들고 튄 사람도 그 남성 유저였다. 그래서 레벨이나 실력과 상관없이 결국 언젠가 한번은 "님 여자죠?", "님 게임 못하죠?", "님 게임 많이 안 해봤죠?" 소리를 듣게 되는 여성 게이머들은 조금씩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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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알라딘 286 같은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 컴퓨터라는 물건과 게임이라는 콘텐츠가 피아노처럼 값비싼 어린이날 선물이자 중산층 진입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요술나무>부터 <페르시아 왕자>, <스트리트오브파이터>, <프린세스 메이커 2>에 이르기까지 '여자아이가 좋아하는 게임'과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의 분류는 뚜렷했다.

남자아이는 칼 싸움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는 인형놀이를 좋아할 거라는 잘못된 성 고정관념이 생전 처음 보는 시대 상황과 게임이라는 상품에 그대로 적용된 아주 나쁜 사례였다.

그런 고정관념을 환영하는 자들은 여전히 여성 유저는 직접 공격을 하지 않고 치유사나 서포터 직업만 할 거라고, 공격 직업이더라도 조작이 쉽게 설계된 캐릭터나 아주 예쁘장한 캐릭터만 고를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러면 또 어때?
 
또, 칼과 방패를 들고 맨 앞에서 길을 만드는 탱커나 더 복잡한 컨트롤을 요하는(과연?) 전문 공격 직업은 남성 거라고, 여성은 그런 플레이를 기피할 거라고 생각한다. 대전 승패 기록 등급이 높으면 남성이지만, 여성 유저의 등급이 높으면 무조건 대리(아이디를 대여/공유해 다른 사람 힘으로 레벨을 올림)나 버스(레벨이 높은 사람과 같은 편을 짜서 쉽게 레벨을 올림)라고 생각한다.
     
유독 여성에 대한 멸시와 혐오가 난무하는 <오버워치>나 <리그오브레전드>에서는 "헐, 보X였음? 남잔 줄 ㄷㄷ"같은 말이 칭찬으로 통한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챔피언 소라카, 소나, 잔나, <오버워치>의 메르시 같은 캐릭터도 여성 유저가 선호한다는 이미지를 얻어 함께 비하된다.
 
이런 환경에서 여성 유저는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남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일단 아이디를 중성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종종 쓰인다(여성스러운 닉네임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부모 세대인 것처럼 보이려고 '지옥혈검', 'ㅇㅇ이아빠' 같은 닉네임을 쓰는 사람도 봤다. 특정 직업은 무조건 여자라고 가정하고 욕을 하니까, 일부러 하고 싶은 직업을 피하는 여성 유저도 많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도 성별을 잘 밝히지 않는다. 밝혀지면 "혜지 왔네"부터 "와, 여자분인데도 게임 잘 하시네요"까지 다양한 모욕을 들어야 하니까.
     
오버워치 같은 게임은 서로 그때 그때 상황을 보면서 위치와 상황을 공유해야 편하지만, 마이크를 끄고 '듣톡(말 없이 듣기만 하는 음성 메신저 사용 방식)'만 하는 경우도 많다. 대전 게임에 들어가서는 다른 유저의 채팅을 다 음소거하기도 한다.
 
얼마 있지도 않았던 인류애를 다 잃은 채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사고 PC에서 게임기로 넘어왔더니, 길드 오픈 채팅에서 "여가부 장관 지0하네요. 남자들만 불쌍하네요. 오늘부터 여캐 보면 다 총으로 헤드샷 쏘고 다녀야겠네요" 같은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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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하면서까지 게임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답은 하나다.
     
"재미있는걸? 이렇게 재미있는데 내가 왜 안 해야 해?"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마데이라'와 '툼북투'라는 지명은 나에게 아주 친숙하다. <대항해시대2>를 하면서 유리구슬과 금 무역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을 하면서 뉴욕 도시를 하늘다람쥐처럼 활공할 때는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세상의 끝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한 <라스트오브어스> 속 두 주인공의 안부는 아직도 궁금하다. 마치 미하엘 엔데의 소설 '끝없는 이야기'의 주인공 바스티안이 빠져들어간 책이 21세기에 와서 게임으로 모습을 바꾼 것 같다. 좋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감동하는 것처럼 잘 만든 게임 스토리도 사람을 매료시킨다.
 
이쯤 되면 일명 '막사(막사냥)', '닥사(닥치고 사냥)'에 몰두하는 게 한국 온라인 게임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진다. 닥치고 레벨업 노가다만 한다고 그게 나쁜 게임인 것도 아니다. 온몸에 좋은 아이템을 칭칭 두르고 '무쌍(우르르 몰려드는 몬스터를 해일처럼 쓸어버리는 전투)'을 찍으면 얼마나 스트레스가 풀리는데?
 
하지만 게임 내 질서와 사람에 대한 존중 없는 한국 온라인 게임 문화는 여성 유저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더해져 여왕벌로, 보르시로, 혜지로 해마다 강화된다. 여자가 남자보다 게임을 잘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성 군 의무복무를 반대하는 비율이 남성에서 더 높은 이유와 같다.

'남친한테 대리시키는 겜못 여친', '맘대로 게임기를 내다파는 아내', '남성 유저를 이용해서 쩔(도움) 받는 여왕벌' 같은 실체 없는 대상화를 계속해야, 게임이 남자가 더 잘 하는/잘 해야 하는 카테고리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처럼, 과학처럼, 운전처럼, 여성은 게임을 더 못하는 게 당연하고, 못해야 한다. 여성 유저는 없어야 하고, 있어도 적어야 한다. 그래야 혐오하고 멸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떡하지? 여성 유저는 항상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건데. 우리는, 적어도 나는 이 재미있는 놀 거리를 절대로 너희들 손에 넘겨줄 생각이 없는데.

[글/ 로리(회원) @allegrory  페미니스트, 승냥이, 노동자, 범생타입 쾌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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