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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희옥 통일부 기자실장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로 평양에 간 허희옥 통일부 기자실장의 모습
ⓒ 허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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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남북 정상회담의 순간은 아직도 찡한 장면이에요. 2000년 서울 롯데호텔에 프레스센터가 차려졌고 내외신 기자가 모두 모여 있었죠.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한 순간이었어요. 저도 울고 기자들도 다 울었어요. '어머 어머' 소리 지르는 분도 있었고 내외신 기자들이 모두 울었어요."

꼬박 33년, 남북관계의 질곡을 함께 한 사람이 있다. 통일부 허희옥 기자실장이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그의 공로를 인정해 중앙행정기관 정책소통 워크숍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2003년 국무총리 표창, 2012년 장관급 표창 등 총 9차례의 표창 후 받은 또 하나의 수상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두근거렸던 순간은 표창을 받았을 때가 아니다. 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남북 첫 정상회담'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평양시민이 환영하며 인사한 첫 대한민국의 대통령. 대형 스크린 한가득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이 비쳤을 때의 떨림이다.

리선권, "일 잘하는 선생"
 
  허희옥 통일부 기자실장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 당시 허희옥 실장이 기자들과 현장에서 취재 조율을 하고 있는 모습
ⓒ 허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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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통일부에 들어온 허 실장은 정책실장실과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에서 10여 년 일했다. 이후 1998년 기자실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로 발령받았다. 그렇게 21년 동안 남북관계를 취재하는 기자들과 함께했다.

보통 정부 부처의 기자실에 근무하는 기자실장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일정을 알리는 등의 일을 한다. 부처의 특성에 맞게 기자에게 취재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기에 통일부 기자실장은 북측과도 취재 조율을 해야 한다.

남북과 관련된 회담이나 행사는 한정된 취재인력만 허용한다. 이 때문에 출입 기자가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취재한다. 이른바 풀 기자단이다. 풀 취재단을 짜는 것도 그 명단을 북측에 통보하는 것도, 북측 취재현장에서 행사 일정을 알리고 사진·영상 등의 촬영을 조율하는 것도 허 실장의 몫이다.

남측에서 열리는 행사라면 소통이 어렵지 않지만, 북측에서 하는 행사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 10월 평양에서 열린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도 그랬다. 당시 고려호텔에 프레스센터가 마련됐다.

기자들은 각자 취재한 내용을 취합해 USB로 옮겨 이를 허 실장의 메신저로 보냈다. 허 실장은 이를 서울에 있는 기자들에게 공유했다. 당시 북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그를 "일 잘하는 기자실장 선생"이라 칭했다.

"20여 년 전에는 팩스와 복사기만 이용했어요, 지금은 메신저로 공유하며 실시간 상황을 알려요. 시대가 변한 거죠. 89년도 8개의 언론사가 출입했는데, 지금 총 52개사가 등록되어 있거든요. 남북의 변화만큼 모든 게 빠르게 변하고 있죠."

기자실의 터줏대감인 허 실장은 총 150여 차례 남북행사를 치렀다. 그 사이 출입기자였던 이가 통일부 장관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하고, 금강산관광의 시대가 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그 문이 닫히기도 했다.
 
  허희옥 통일부 기자실장
  10·4선언 11주년 기념행사 당시 평양 시민들이 허희옥 기자실장 및 관계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허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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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시범 출항할 때, 제가 그 배를 타고 갔거든요. 여성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저, 딱 둘뿐이었어요. 뱃멀미가 심해 고생을 했는데, 금강산에 도착하자마자 얼마나 좋던지. 그 기억만큼 박왕자씨 피격사건이 발생했을 때 충격이 컸죠. 이후 개성공단도 폐쇄되고. 좋은 기억만큼 속상한 기억도 많아요."

7년여 남은 공직생활. 허 실장의 바람은 좀 더 자주,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북을 오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산가족이 더 이상의 설움 없이 편히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남북관계의 출렁임보다 안정적인 평화가 이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남북관계가 더 빨리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쉽게 바뀌지 않고 탄탄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요. 우리도 역시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 시간 동안 한두 가지 사건으로만 북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백번을 넘게 남북관계 행사를 챙긴 사람으로서 북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자는 거예요. 사람 관계도 그렇잖아요. 편견이 관계를 망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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