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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은 군 생활 2년 동안 함께 지내던 룸메이트였는데, 그는 한국 국적의 모친과 미국 국적의 부친의 피가 섞인 혼혈이었다. 처음 M을 만났을 때 그의 피부색과 눈동자가 다른 흑인 병사들과 확연히 다른 것을 보며 그가 온전한 아메리칸은 아니라고 짐작했는데, 같이 지낼수록 전형적인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두루 보여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두 명이 한 방을 같이 사용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간이 세면대를 지나 침대 두 개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오른쪽 침대를, M은 왼쪽 침대를 썼다. 우리는 매일 아침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집합해야 했기에 대개 밤 열 두 시를 넘기지 않고 잠에 들었는데, 어느 날부터 M이 잠들기 전 혼자 이어폰을 끼고 소리 내어 웃다가 잠드는 일이 많아졌다.

재미있는 것이라도 듣는가 싶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점점 겉으로 배어 나오는 웃음에 동참하고 싶어져 어느 날 M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요새 뭘 듣는 거야. M은 그 즈음 출시된 온라인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 게임과 관련된 팟캐스트를 듣는 거라고 했다. 팟캐스트? 그게 뭐지 싶었다. 아직은 그 단어가 생소했던, 2006년의 밤이었다.

팟캐스트. 어쩌면 이미 그 유행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이제는 너무나도 보편화된 이 미디어는 2006년에는 분명 생소한 개념이었다. 2000년대 들어 애플에서 새롭게 제시한 개념인데 애플의 음악 재생기기인 iPod과 방송을 뜻하는 Broadcast를 합성한 말이라 했다. 전문 방송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기획해서 녹음하고, 녹음한 것을 알맞게 편집해서 인터넷에 업로드 하면 누구나 그 녹음을 들을 수 있는 온라인 미디어였다.

쉽게 생각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시, 무한대로 들을 수 있는 라디오였다. 내가 듣고 싶은 라디오 방송이 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제 때 들을 수 없을 때, 내가 편한 시간에 접속만 하면 듣고 싶었던 방송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혁명적이었다. 나는 M의 도움을 받아 팟캐스트를 듣는 법을 배웠고, 밤마다 잠에 들기 전 몇 가지 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이제 막 팟캐스트가 시작하던 시기라 들을 만한 방송이 몇 개 없었지만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고요한 밤, 잠들기 전 이어폰 너머로 흘러 나오는 방송을 듣는 것이 좋았다. 저쪽 침대에선 M이 이어폰을 끼고 웃고 있고, 이쪽에선 내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유년기에 라디오 채널을 끼고 살았던, 라디오 키즈였던 나는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개념에 금방 빠져들었다.

라디오키즈
 
 드라마 공부를 하다가 라디오 작가 쪽은 처음 한다는 그녀의 말에 귀가 번쩍했다. 마흔 넘어서 뒤늦게 방송작가 계에 입문해 좌충우돌했던 경험이 세포마다 살아나서 환영하는 느낌이었다.
 라디오키즈였던 나는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인 팟캐스트에 금방 빠져들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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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키즈'라고 적고 잠시 턱을 괴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처럼 똑같이 책상에 앉아 펜을 들어 글씨를 쓰던 적이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자습서를 펴서 문제를 풀었던 시절이니 한 이십 년은 거슬러 올라야 할까.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대학 입학 직전까지 이어졌던 공부, 문제, 학원, 암기, 시험의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집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았던 이유는 책상 한 편에 놓인 스테레오 오디오 때문이었다. 카세트 테이프, 씨디, 라디오가 모두 지원되는 모델이었는데, 라디오를 듣다가 카세트 테이프로 방송을 녹음하는 것이 매일의 일과였다.

기억난다. 이휘재 씨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박철 씨가 진행하던 <두시탈출>,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 이런 라디오는 요일마다 달라지는 코너를 외우고 있을 정도로 많이 들었고 정을 주었고 각별히 기억했다.

또 기억난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귀로 들으며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이상하게 라디오가 공부를 방해하지 않았다. 라디오 속 당신들의 목소리는 그것대로, 나의 공부는 또 그것대로 같은 시간 속에 각자의 방식대로 흘러갔다. 중요한 건 항상 라디오를 들었다는 거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떠올려 본다. 라디오 키즈, 맞다.

라디오에 빠져들었던 학창 시절처럼 팟캐스트의 세계에도 겉잡을 수 없이 손쉽고 빠르게 스며 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며 팟캐스트 방송이 다양해졌고 그만큼 찾아 들을 것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팟캐스트는 더 이상 '다시 들을 수 있는 라디오' 수준이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한 번 방송된 것을 편집하여 다시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팟캐스트로 시작해서 자리잡은 이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방송의 진행, 소재에 관한 자유도 또한 높아졌고 나는 이들 방송을 잡식하기 시작했다. 정치, 시사, 역사, 만화, 게임, 음악... 이러한 팟캐스트의 열광 속에서 <나는 꼼수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또 최근 <유시민의 알릴레오> 같은 방송이 탄생했고 그들의 성장과 함께 나의 팟캐스트 여행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끝내 나는 팟캐스트 키즈는 되지 못했다. 다시 한 번 턱을 괴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팟캐스트를 들은 것이 꽤 오래 전 일이었다. 너희들의 키즈라 불리는 것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왜일까. 왜 여전히 라디오 키즈라는 것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그 이후 세대의 미디어에는 끝내 정착하지 못한 걸까. 이유는 단 하나, 당신들의 음성에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그것 때문이었다.

어제였다. 명절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며 라디오를 켰다. 주파수 93.1 메가헤르츠. 방송은 KBS 클래식FM의 <노래의 날개 위에>. 스피커로 흘러 나오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선율이 꽉 막힌 올림픽대로 위로 흘러 다녔다. 이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만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방송을 지금 이 순간 이후에도 다시 찾아 들을 수 있는 것임을 분명 안다. 그러나 지금 이 라디오와 음악이 전해주는 긴장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 이 음악을 듣는 이 시간만큼은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토록 당신들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는 것 아닌가, 나는 그것을 떠올리고는 라디오 볼륨을 좀 더 높였다. 뒷좌석의 아내와 아이는 피곤함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는 다시 들을 수 없다는 것,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더 간절한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거였다. 잠시 조우했다가 스치고 헤어지기에 더 강렬했던 거다. 바다 위를 떠 다니는 유빙처럼.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 신철규 시인의 <유빙>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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