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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배우다]는 한림대학교 2018년 2학기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업을 통해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실제 언론보도 및 뉴스를 확인하고 비교하며 고민한 나름의 결과를 담았습니다.[편집자말]
나의 주전공은 사회학이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개념은 '사회화'라는 것이다. 사회화란 사회에 속한 개인이 그 사회에 맞게 규범, 가치, 지식 등을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복수전공인 언론을 공부하면서 배운 개념은 '의제설정이론'이다. 이 이론은 매스미디어가 하나의 주제를 반복 보도하면 그 주제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슈로 인식된다는 이론이다. 그렇다면 언론매체가 의제를 설정하고 미디어를 통해 의제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면 결국 언론이 재사회화의 중요한 도구로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특정 언론사를 구독하는 구독자들은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재사회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전공 수업인 '커뮤니케이션개론'을 수강했다. 수업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모델과 미디어 효과 이론을 바탕으로 미디어의 역할과 기능을 고민하고 실생활 사례 확인을 통해 미디어의 파급력과 그 한계점을 배웠다. 이 수업을 통해서 '남북합동 공연'에 대한 언론의 정파성을 분석하여 스스로 질문과 응답을 통해 나만의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부터는 그 과정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봄은 오고 있나?

지난 2018년 4월 평양에서 남북 합동 콘서트가 열렸다. 콘서트의 이름은 '봄이 온다'로, 계절적으로 '봄이 온다'는 의미와 남과 북에도 '봄이 온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국내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언론사마다 집중하는 포인트는 조금씩 달랐다. 내가 주목한 언론사는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이다. 두 언론사는 평양 공연과 관련된 크고 작은 이슈들에 대해 각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점들이 있었다. 이는 각 언론사의 관점이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평양 공연 보도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평양 공연 보도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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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구분 없이 '평양 공연' 이라는 동일한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했을 때 <중앙일보>는 총 2270건의 기사가 검색되었고 <경향신문>은 총 942건의 기사가 검색되어 <중앙일보>가 <경향신문>보다 약 2.4배 정도의 기사를 작성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언론사마다 시기를 구분해 월별 보도의 양과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분석해보았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평양공연에 대한 감정?

남북합동 콘서트가 진행되기 한 달 전인 3월에 <중앙일보>는 82건의 기사를 내보냈고 <경향신문>은 32건의 기사를 내보냈다. 아래의 표는 같은 달의 <중앙일보>의 기사와 <경향신문>의 헤드라인을 비교한 것이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헤드라인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헤드라인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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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헤드라인을 살펴보면 긴장된, 당황, 날라리, 난색 등의 단어를 사용하였다. <중앙일보>의 독자가 헤드라인만 읽었을 때 남북합동 콘서트의 준비 상황이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경향신문>의 헤드라인은 이해, 긴장완화, 공감, 기쁨, 평화 등의 단어들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경향신문>의 독자는 헤드라인을 읽었을 때 남북합동 콘서트가 평화적인 통일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라는 기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중앙일보>는 부정적인 단어를 담은 기사의 양이 <경향신문>보다 2.5배 많았고 <경향신문>의 경우 <중앙일보>보다 기사의 양은 적었지만 대부분 공연에 대한 긍정적인 단어를 담은 기사들이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추론해보자면 공연이 확정되기 전 달이 2월에 문재인 정부에서 주 52시간 노동제 추진에 대한 각 언론사의 부정적, 긍정적 입장이 남북합동 콘서트 기사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 vs 남한 취재진에 사과하는 김영철

4월에 <중앙일보>는 168건의 평양 공연 관련 기사를 작성했고 <경향신문>은 79건의 기사를 작성하였다. 공연이 진행되던 4월 달에는 두 언론사의 정파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있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일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 취재제한을 사과하면서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라고 말해 논란이 된 사건이다.
 
평양 공연 관련 기사 中 정파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헤드라인
 평양 공연 관련 기사 中 정파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헤드라인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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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되어 <중앙일보>는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언급한 것에 대해 집중하여 헤드라인을 뽑았다. 반면에 <경향신문>은 북한의 사과에 초점을 맞추어 기사를 작성했고, 북측이 천안함 사건을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헤드라인으로 뽑지 않고 기사 마지막 부분에 한 줄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이를 보면 <중앙일보>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중앙일보>는 4월 달에 천안함 관련, 98개의 기사를 내보낸 반면 <경향신문>은 천안함 관련 0개의 기사를 내보냈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가 천안함 폭침 사건은 남측의 조작극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일축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4일 보도한 것에 대해 <중앙일보>는 5일 기사를 내보냈지만 <경향신문>에서는 관련 보도를 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천안함’ 키워드를 검색,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지 보도된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천안함’ 키워드를 검색,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지 보도된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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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천안함’ 키워드를 검색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지 보도된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천안함’ 키워드를 검색 2018년 4월 1일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지 보도된 기사를 대상으로 분석.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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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처럼 <중앙일보>는 천안함 사건에 대해 특집 페이지까지 개설하여 연도별 기사를 정리해 놓은 반면 <경향신문>에서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검색결과가 없었다. 남북한 교류 콘서트가 있던 4월에 천안함 폭침 사건을 대하는 두 언론사의 태도에는 차이가 있다.

불가능과 가능성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헤드라인 차이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헤드라인 차이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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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앙일보>는 기사 헤드라인을 통해 북한의 이중성을 강조했다. '남북합동 콘서트가 진행 중이지만 뒤로는 음모죄로 처벌하고,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고 비판하고, 미국의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쇼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경향신문>은 기사 헤드라인을 통해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봄이 온다'의 두 번째 버전인 '가을이 왔다'를 언급했다는 것이 강조되어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서울에 올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두 기사를 비교했을 때 <중앙일보>의 경우 공산주의 체제 안에 한국의 체제가 들어갔을 때 얼마나 이질적이고 섞이기 힘든 것인지를 기사를 통해 보여준다. 하지만 <경향신문>의 경우 북한의 지도자가 서울로 올 수 있음을 말하며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방점을 어디에?

남북평화협력기원 공연에 대한 이슈성이 많이 떨어졌을 7월에는 두 언론사를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사가 있었다. 지난 4월에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나훈아가 오기를 바랐는데 스케줄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한 일이었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헤드라인 & 리드 차이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헤드라인 & 리드 차이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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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을 리드로 작성하고 중요하지 않는 부분은 뒤에 작성하는 '역피라미드' 형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위의 기사에서 <경향신문>의 리드를 보아 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김정은에 대한 호감이었다.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리드로 작성되었던 부분이 <중앙일보>에서는 하단에 배치되어 "이 밖에도 '김 위원장도 자유스럽고 호탕하고 대화에 거침없고, 호기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라고 짧게 덧붙이는 말로 작성하였다. <중앙일보>에서는 김정은의 호감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중앙일보>에서의 리드를 보았을 때 <중앙일보>에서 위의 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김정은이 나훈아의 참석을 원했지만 나훈아를 데려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은 완전히 동일한 이 주제에 대해 논조를 매우 다르게 했다. <중앙일보>의 헤드라인만 읽으면 '김정은이 나훈아가 참석하지 못해 정색을 했구나', '김정은이 참석하지 못한 나훈아에 대한 불만이 있었구나', '왜 중요한 행사에 나훈아를 데려가지 못했나,' 등의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반면에 <경향신문>의 헤드라인은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이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호칭 차이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호칭 차이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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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는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이 리설주와 김여정을 표현한 방식을 비교한 것이다. 북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중앙일보>를 볼 경우 '이 여사'가 누군지 '김부부장'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경향신문>의 표현에서 직접적으로 김정은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부인'과 '여동생'이라는 부분에서 김정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위의 내용을 읽을 때 리설주 여사와 김여정 부부방과 더불어 김정은에 대한 호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강조 차이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강조 차이
ⓒ 백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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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터뷰에 대한 두 기사를 비교했을 때 <중앙일보>는 평양공연이 부족했다는 것과, 준비해간 것이 없었다는 부분을 강조했고 <경향신문>은 우리가 북한을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중앙일보> 기사의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강도 삼지연군의 건설현장을 시찰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했다. 사진은 건설현장을 둘러보는 김정은의 모습. 2018.7.10 [노동신문]' 으로 기사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사진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모습으로 권위적임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경향신문>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7회 여기자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으로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진을 사용했고 도종환 장관이 웃고 있는 사진을 사용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있었던 시간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은?

'평양 공연'이라는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했을 때 <중앙일보>는 남북한의 교류에 대해 우호적이기보다는 북한이 또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과, 남북한의 과거 등 독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이 들게 하는 기사를 주로 작성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남북한의 교류로 인한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기사를 주로 작성했다. 두 언론사를 비교해본 결과 <중앙일보>는 보수적인 집단에서 주로 읽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언론사이고 <경향신문>은 진보적인 집단에서 주로 읽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언론사임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독자들은?

언론사들은 각자의 뉴스미디어 조직에 맞게 게이트키핑을 하고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의제로 설정할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은 서로 다른 의제를 설정했다. <중앙일보>는 갑작스런 평화모드에 속지 말아야하며 북한의 속내를 잘 살펴봐야하고 긴장해야한다는 의견을 중심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경향신문>은 남북 평화를 지지하며 평화 통일에 한 발 다가감을 기뻐해야 한다는 의견을 중심으로 의제를 설정했다.

앞서 이야기했던 '언론사의 의제설정은 구독자의 재사회화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만약 <중앙일보>, <경향신문> 둘 중 하나의 언론사만 구독하는 구독자라면 자신이 구독하고 있는 언론사의 의제에 따라 재사회화를 할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즉 <중앙일보>만을 구독하는 구독자는 통일, 북한, 김정은, 평화 등에 대한 키워드에 대한 가치와 지식을 언론사와 같이 할 것이며 이는 <경향신문>만을 구독하는 구독자 또한 같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한다고 말한다. 나도 언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는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언론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한다는 말의 속뜻이 '언론은 중립을 지키기 힘들다'라는 것을 언론을 배우면서 깨달았다.

언론이 모든 주제에 대해 중립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자들은 이를 깨닫고 한 가지 주제에 한 가지 언론사의 기사만 볼 것이 아닌, 하나의 주제에 다양한 언론을 접하면서 언론사별로 무엇이 다른지, 무엇을 강조하는지, 나의 입장과 뜻을 같이 하는 언론사는 무엇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비교하며 구독해야 한다. 언론사가 독자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독자들이 언론사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그:#언론을 배우다, #평양 공연, #언론 보도, #언론 비평, #보도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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