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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합헌과 위헌을 촉구하는 회원들이 방청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선고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모자보건법에서 일부 예외 요건을 설정하고 있다. 국민청원 개설 이후 낙태죄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겨 조국 민정수석이 이에 대해 답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전에 비하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위헌으로 결정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 상황이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합헌이 넷, 위헌이 넷이었다. 위헌 정족수가 6명이었기 때문에 2명이 모자라 합헌이었다. 이를 두고 재판관이 9명이 아닌 8명인 상태에서 위헌 의견과 합헌 의견의 수가 같았기 때문에 추후에는 재판관 임명에 따라 위헌으로 결정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이 있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1973년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을 작성한 해리 블랙먼 대법관은 '낙태 판사'로 크게 유명해졌다. 어쩌면 한국에도 블랙먼과 같이 기억될 재판관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블랙먼판사가되다
 블랙먼판사가되다
ⓒ 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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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먼 판사가 되다'는 낙태 판사로 유명한 해리 블랙먼 대법관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이 책은 낙태를 두고 197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논쟁과 대법원의 치열한 법리 다툼, 한 법조인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한 온건 보수주의자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1970년, 공화당 닉슨 대통령은 두 명의 대법관 후보를 지명했으나 결과는 좌절이었다. 결국 세 번째 후보로 해리 블랙먼을 지명했다. 해리 블랙먼은 지명 당시에는 온건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여기에 더해 놀라운 점은 당시 연방대법원장이었던 버거가 해리 블랙먼의 어린 시절 친구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는 버거 대법원장과 같은 보수적인 의견을 낸 사안에서 혹독한 비판을 당해야 했다. '두 마리의 훈련 받은 푸들'처럼 함께 고생하는, 엄격한 닉슨주의자보다 더 심한 인간이라는 비난이었다. 같은 의견을 낸 판사가 여럿이어도 쌍둥이같다며 지적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블랙먼은 이미 임명 당시에도 나이가 많았음에도 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 조금씩 진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게 된다. 결정적인 계기는 '로 대 웨이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은 4개 주에서 면허증이 있는 의사에 의해 특정 기간 내 시술된 낙태에 대한 형사 처분을 폐지했고, 13개주는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했다. 그러나 32개주는 많은 상황에서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 대 웨이드' 사건이 발생했다.
 
'로 대 웨이드' 사건은 텍사스 주 법에 대한 도전이었다. 텍사스 주 법은 19세기 후반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는 운동'이 전국을 휩쓸면서 대부분의 주에서 제정한 법안의 전형적인 예였다. 지금 법원에 상정되어 있는 법은 1911년에 약간의 수정을 거친 것으로 "산모의 생명을 구할 목적을 제외한 의사의 낙태시술을 범죄로 규정하고, 2~5년의 징역형을 규정했다. -122P
 
9명의 대법관 중 블랙먼을 포함한 7명의 판사가 텍사스 주의 법이 위헌이라는 내용에 합의했다. 다수의견에 따라 낙태를 처벌하는 법률이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다. 다수의견을 대변한 블랙먼은 낙태 판사로 찍혀서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블랙먼은 7대 2의 표결로 결정된 다수의견을 대변했을 뿐이고 판결은 결국 다수의견을 표명했던 판사들의 공동노력의 결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그 판결의 주창자로 인식하게 되리라는 점을 블랙먼 자신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블랙먼을 수신인으로 하는 수만 통의 편지가 대법원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 다수의 편지는 블랙먼에게 신의 분노가 내리기를 청하고 그를 영아살해범이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199P
 
블랙먼이 낙태 반대 항의자와 마주쳐서 비판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음은 물론이고, 블랙먼이 대법관을 은퇴하는 시점에도 '블랙먼의 부모가 블랙먼을 낙태했어야 한다'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점점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대법원에서 늘어나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지위가 흔들리는 일이 발생해도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이후, 지명 당시에 온건 보수주의자로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나이가 들수록 블랙먼은 대법원 내에서 진보적인 의견을 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진보적인 다른 대법관들과 같은 의견을 내는 일이 드물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같은 의견을 내는 경우가 늘었다. 나이를 먹으면 보수화된다는 속설(?)에 반대되는 인생을 산 것이다.

일례로 그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드 캠퍼스 의과대학의 소수인종 특별 입학 프로그램에 대해 합헌이라고 보았다. 입학 정책은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가져야 하며, 단순한 중립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를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그는 대법관 말년에는 사형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그의 후임자는 61세인 사람이 사무실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동안 시야와 영혼을 편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것이 블랙먼에게 일어난 일이라고 언급했다. 책은 그가 구명장비도 없이 위험한 파도에 들어갔지만 그는 계속 헤엄쳐서 자신만의 유산을 창조했다고 멋지게 평한다.

이 책은 한 법조인의 판단과 심리를 다룬 책으로도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고위 법관의 판결과 일생에 대해 정리한 책이 드물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논쟁의 상당수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게 될 일들이다. 블랙먼 판사의 삶과 판결은 미국에서는 과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래다. 헌법재판소가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어떤 유형의 의견이 가능할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숙고할 필요가 있다.

블랙먼, 판사가 되다

린다 그린하우스 지음, 안경환 옮김, 청림출판(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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