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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읽는 방법이 상당히 달라지는 편이다. 어떤 책의 경우, 알고자 하는 핵심 내용을 효과적으로 캐치하기 위해 해당 부분만을 발췌해서 빠르게 읽는다. 국어영역 비문학 독해연습을 할 때처럼 저자의 주장과 의도를 머릿속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정리한다.

어떤 책의 경우, 아주 천천히 느리게 읽는다. 왜냐하면 도저히 한꺼번에 빠르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한꺼번에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또 어떤 책의 경우, '힘들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읽게 된다. 책장에 계속 꽂아두다가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 먹는 책들이 있다. 

어떤 책의 경우, 혼자서 읽을 수 없다. 물론 독서라는 행위는 1차적으로 혼자하는 것일 수밖에 없지만, '나 혼자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이 그런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말한 여러가지 종류의 책 중에 이런 책을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정말 개인적인 행위로 보이는 '책 읽기'마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사회적인 행위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속도를 맞추고 생각을 나누면서 책을 읽고 나면, 혼자 읽을 때 보다 더 기억에 잘 남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책임감 때문에라도 어쨌든 '완독' 할 수밖에 없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책표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책표지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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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은 '성 문화(性文化) 연구모임 도란스'에서 출간한 기획총서다. 책날개에 적혀 있는 소개글에 따르면, "'도란스'는 '트랜스(trance)'의 일본어식 발음을 옮긴 것으로서 한국의 근대가 일제와 미국의 혼재라는 현실을 상기하고자 하는, 탈식민 노력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연구모임 도란스의 첫 번째 기획총서인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획총서인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은 총 다섯 명의 공동 저자가 집필하였다. 이들은 "사회가 피해와 가해의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고 번역하고 정당화하는지를 분석하는 과정(10쪽)"을 중심으로 반성폭력운동의 어려움과 딜레마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친구들과 나는 약 네 달에 걸쳐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을 읽어나갔는데, 내가 발제를 맡았던 부분은 책의 2장('문단 내 성폭력, 연대를 다시 생각한다')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2016년 10월에 SNS를 통해 일어났던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과 그 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변화가 남긴 질문들을 분석하는 글이었다.

특히 "문단 내 성폭력 발화, 싸움, 연대의 기록이자 피해 고발자를 지지하는 프로젝트로 기획(87쪽)"된 <참고문헌 없음>의 이야기는 2018년의 미투가 어느 날 갑자기 터져나온 것이 아니라, 길고 지난한 반성폭력운동의 역사 속에서 가능했던 임파워먼트(empowerment)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한편으로, 발제문을 쓰기 위해 책을 꼼꼼히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자꾸만 울컥했다.
 
"이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 동료 작가들에게 동참을 요청했을 때, 자신은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며 주저하고 망설이고 괴로워하다 참여를 고사한 작가들도 많았다. 우리 중에 무결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 일을 하면서 함께 자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며 그들을 설득하면서도 준비팀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96-97쪽)."
"우리는 '누가 가해자인가'보다는, '무엇이 폭력인가'를 질문했어야 했다. 2차가해에 대해 발언할 때에도 무엇이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게 하고 성폭력 고발을 어렵게 하는지를 질문했어야 했다. 그러나 2차 가해를 언급했던 SNS 사용자는 '누가'도 적시하지 않았고, '어떤' 가해 행위인지도 적시하지 않은 채로, "<<참고문헌 없음>> 필진에 2차 가해자가 포함되어 있다."라는 말만 SNS에 던져놓았다. SNS 여론은 누가 2차 가해자인지에 집중했으며, <참고문헌 없음>을 오염된 프로젝트로 인지했다.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들이 반(反)성폭력 운동을 하는 연대체를 공격하는 프레임으로 고스란히 악용되었다(109쪽)."
"선택한다는 것은 책임지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갈등 없이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면 이상적이었겠지만, 현실에 무결한 곳은 없으며 우리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속한 곳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힘과 지혜를 어떻게 얻는지가 가장 중요하다(113쪽)."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아니면 가해자'만'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연대'의 가능성은 도덕과 검열의 이름으로 지워진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도 아니지만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경계'의 위치를 부를 만한 지식이 부족했기에, 경계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책임'의 자리를 도덕의 언어가 채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사건을 '너는 죄를 지었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간편한 논리로 바라볼 때, 심판 하는 자와 심판 받는 자만 존재할 뿐 '공동체적 책임'을 이야기할 자리는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드는 이유이며, 소위 '약자들 간의 연대'라는 것이 마냥 아름답거나 낭만적일 리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내가 자꾸만 울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 성폭력/성희롱 사건들을 여러 번 접하다 보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윤리적으로 용서가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징계 대상은 아니지만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조력자 혹은 공모자 혹은 방관자로서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나는 이들이 바로 "소수 가해자 한두 명을 비난하는 것으로 가해자와 공모했는데도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200쪽)"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들 한명 한명에게 사적 복수를 하는 것으로 '강간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정말 가끔은,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집에 등장하는 말대로 "불타는 싫은 마음"을 숨기기 어려워서 미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왜 부끄러움은 남의 몫인가?

왜 정말로 미안해야 할 사람은 잘 살고, 왜 안 미안해도 되는 사람들이 남의 십자가까지 대신 짊어지고 사는가?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할수록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변인이 갖고 있는 의무와 책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구체화 하는 작업이 나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당연하게도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나의 질문을 해결한다기보단 더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여전히 내 머릿속은 혼란스럽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만 관련되는 '협의의 당사자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폭력은 다시 개인의 문제이자 고통과 불행이 될 뿐(50쪽)"이라는 사실이다.

피해자가 합의했으니까, 가해자가 징계를 받아들였으니까 문제가 끝났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가는 싸움(50쪽)"을 할 수 없다. 아마도 새로운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피해자 정체성'이 주체화를 위한 여성의 유일한 자원이 아닐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는 당당한 여성, 권력 분점을 요구하는 여성, 자신을 존중하는 여성, 남성의 보호나 네트워크에 저항하는 여성보다 '피해여성'을 원한다. 이것이 바로 젠더 사회에서 남성은 성공을, 여성은 불행을 '경쟁'하는 이유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은 피해자일 때만 주체가 된다. 여성은 피해자 정체성에 매력과 유혹을 느낀다. '피해자다움'은 가부장제가 원하는 여성의 중요한 성역할이다(224쪽)."

이제 정말로 2018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로운 상식'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내년에는 좀더 행복하고 좀더 많이 웃길 바라면서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끝맺고 싶다.
 
"우리는 순응하라고, 적당히 넘어가라고, 너무 유난 떨지 말라는 말을 듣지 않아야 한다. 한 점 부끄럼 없고 당당하고 무결해야만 인정받는 피해자, 상처받아 웅크린 가련한 약자, 주류의 배려와 관용을 기다리는 소수자로서의 위치를 거부해야 한다. 중요한 건 단 한가지다. 나로서 생존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세상과의 싸움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끈질기게' 나 자신으로서 행복해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155-156쪽)."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권김현영 외 지음, 권김현영 엮음, 교양인(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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