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왔다. 김장철이다. 배추와 무가 몸값 한껏 올리는 계절이다. 며칠 전 아내가 처가에서 통통한 무를 가져왔다.
무는 '겨울 산삼'이라 불린다. 겨우내 먹기 좋은 채소다. 아내가 무를 다듬었다. 아내가 무 줄기를 버렸다.
나는 쓰레기 봉지를 뒤졌다. 상태가 온전한 무 줄기 세 개를 건졌다. 녀석들을 예쁘게 다듬어 줄에 걸었다.
무 줄기를 말리면 맛좋고 영양 높은 식재료가 된다. 한동안 줄에 걸린 무 줄기를 들고 고민했다. 이 녀석들을 어디에 둬야 하나?
바람 잘 통하고 햇볕들지 않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 정도 눈치는 붙잡고 산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아파트에서 그늘진 곳 찾기 참 어렵다.
긴 고민 끝에 마땅한 장소를 발견했다. 아파트 복도가 녀석들 말리기 최적의 장소다. 기다란 복도는 시원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분다. 또, 베란다가 남향이라 복도는 늘 그늘진다. 무 줄기 말리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어디 있겠나. 단 한 가지 문제만 극복하면 된다. 분실의 위험이다.
무 줄기가 마르면 '무 시래기'가 된다. 다양한 요리에 희생당하는 시래기는 조림 요리에 최적화 된 식재료다. 이런 무 시래기는 오가는 이의 눈을 자극할 테고,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 안에는 무를 말릴 장소가 없다. 결국, 위험을 무릎쓰고 복도 창문에 무 줄기를 내걸었다. 복도에 내걸린 무 줄기는 당연히 내 관찰과 감시의 대상이 됐다. 싱싱했던 줄기는 점점 힘이 빠지며 말라갔다.
반면, 내 머릿속은 매콤한 조림 요리로 살쪄갔다. 퇴근길 복도를 잽싸게 걸어와 말라가는 무 줄기를 보는 재미가 솔솔했다. 세어 볼 필요도 없는 무 줄기를 하나하나 손으로 누르며 확인도 했다. 누군가의 손길이 이 먹음직한 무 시래기에 닿지는 않았는지...
그렇게 힘이 빠지고 색이 맛있게(?) 변하고 있는 무 줄기를 탐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며칠 전 무 줄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날 어둡고 차가운 아파트에 떨썩 주저 앉았다. 입에서 쓴맛이 났다. 도대체 누가... 상상 속 범인을 떠올리며 한마디 내뱉었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날 밤, 늦게 들어 온 아내가 툭 한마디 던진다. "큰고모가 무 시래기 잘 먹었다고 전해달래". 시래기가 된 무 줄기는 나의 피붙이인 큰누나 뱃속으로 사라졌다.
며칠 전 집을 찾아 온 누나가 복도 창틀에 걸린 무 줄기를 보고 아내에게 달라고 했단다. 아내는 당연한 듯 무 줄기를 건냈고 나의 정성 가득 담긴 무 줄기는 그렇게 누나네 저녁식탁에 올랐다.
나의 '무 시래기 만들기' 공정은 느닷없고 허망하게 끝났다. 하지만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세상은 노력한만큼 대가를 돌려주지 않는다. 때론 노력의 대가로 허무를 받아들 때도 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는다. 내 노력의 댓가로 누군가가 잘 먹었고 잘 살면 좋은 일 아닌가.
또 한 가지 '쓰레기로 버릴 것인가, 시래기로 쓸 것인가'는 바라보기 나름이다. 세상에 함부로 버릴 물건은 없다.
한국인이라면 꼭 치러야 할 달콤한 전쟁이 시작됐다. 모쪼록 '김장대첩'에서 모두 승리하기 바란다. 더불어 쓰레기는 최대한 줄이는 슬기로운 전쟁 치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