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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상과 소유하고 있는 책의 전부입니다.
 나의 책상과 소유하고 있는 책의 전부입니다.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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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내 집이 생기면 거실 전체를 책장으로 만들어서 나만의 아늑한 서재를 만들어야지, 하고 꿈을 꿨다.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책은 나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나를 들뜨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심지어 응원과 위로도 해준다.
그런 책을 밑줄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고 책꽂이에 줄 맞춰 꽂아 두는 게 내가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만의 서재를 만들고 싶었던 꿈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나의 만족이자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허영심이었던 것 같다. 이전에는 책꽂이에 꽉꽉 채우고도 부족해서 침대 옆, 책상 위 등등 집안 곳곳에 책들이 가득했다. '나는 이만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듯이.

책이 가득한 방은 아무리 닦아도 금방 먼지가 뿌옇게 쌓였는데, 공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책과 옷가지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청소를 매일 할 생각만 했지, 원인을 비워낼 생각은 결코 못했다. 그러다 대학교 졸업반 시절에 우연히 미니멀 라이프를 접했고 차츰 물건들을 줄여나가다가 마침내 책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책을 비워낼 엄두가 안 났다. 소유하고 있던 책들을 줄이면, 책을 덜 읽게 될까봐 겁이 났다. 버렸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지는 날이 올까 봐 겁이 났다. 한꺼번에 처분하기에는 심적으로 힘들어서 천천히 책들을 비워냈다.

조금씩 중고서점에 팔기도 하고, 개인에게 팔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책을 비운다고 책을 사랑하는 내 마음까지 줄어드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웬만큼 감동을 받지 않는 이상, 한권의 책을 여러 번 재독하는 일이 내겐 없다는 걸 깨닫고는 책을 처분하는 게 더 쉬워졌다.

물론 아무리 미니멀 라이프를 산다고 해도 책을 소비하는 행위를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책의 맹목적인 소유를 멈췄을 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도 한계가 있고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속적으로 책을 살 수밖에 없다. 다만 책을 구매해서 다 읽고 나면, 처분한다.

내가 책을 처분하는 기준은 딱 하나다.

'내가 필요한 책인가?'
'내가 꼭 한번 다시 읽을 책인가?'


재독이라는 필요 가치가 없다 싶으면 재밌게 읽었었던 책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가차 없이 처분한다. 본질에 집중하면 처분이 쉽다. 책을 구매하는 이유는 그 책을 읽기 위해서고, 다 읽은 책을 재독할 마음이 들지 않으면 내게는 더 이상 필요가 없으므로 되팔거나 나눔을 한다.

그 본질에 집중하면, 책값이 아깝지 않다. 이미 한번 읽음으로써 책을 구매한 가치를 다 했다고 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독서노트에 적음으로써 이미 그 책은 내게 충분한 가치와 기쁨을 주었다.

지금 당장 읽고 싶어지는 책이 아닌데 아까워서 선물 받은 거라서 언젠가 읽기 위해서 보관만 하고 있는 빛바랜 책은 더 이상 내게 없다.

처음부터 책에 대해 스스로의 철칙이 생긴 건 아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책을 통해 나를 정의하고 싶은 마음을 버렸다.

이제 내가 욕심내는 것은 당장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그때 그때 바로 읽을 수 있는 환경이다. 그래서 갑자기 서점에 가기도 하고,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 가기도 한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 미루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기쁨! 맛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책장 한장 한장 넘어갈 때마다 기쁘면서 아까운 그 마음을..

 
카페에서 독서하는 모습.
 카페에서 독서하는 모습.
ⓒ 이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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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오늘은 도서관에 다녀왔다. 전날 밤에 웹서핑을 하다가 알게 된 두 권의 책이 마침 도서관에 대출 가능으로 떠서 아침 일찍부터 다녀왔다. 대출한 책은 딱 두 권.

예전에는 도서관에 가면 무조건 가능한 대출 권수 꽉 채워 빌려오곤 했는데 단 한번도 2주라는 기한 안에 다 읽은 적이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책들로 책읽기를 미루다가 무겁게 낑낑 거리면서 반납하거나, 반납기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왜 예전에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 왜 무거워서 힘든 생각은 안하고 무조건 빌리고 싶은 책이 없어도 책장 사이를 오가며 대충 골라가면서까지 책을 빌렸어야 했을까?

빌린 책 2권과 함께 오전에 좋은 카페에 가서 행복한 독서 시간을 보냈다. 어제 자기 전까지 계속 읽고 싶었던 책들을 바로 읽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단순하게, 산다>는 읽다보니 너무 좋아서 나중에 서점에서 구매하려고 한다.

소유하고 있는 책이 줄어드니까 오히려 읽고 싶은 책들도 많아지고 더불어 독서하는 시간도 늘었다. 몇 권 없어도 나의 책장에는 내가 언제든지 또 읽고 싶어지는 아끼는 책들만 꽂혀있어서 볼 때마다 설렌다. 갑자기 막 책이 읽고 싶어질 때도 있다.

옷장이 터질 듯이 옷들이 많을 때는 입을 옷 없다고 투덜 되던 사람이 옷들을 다 버리고 딱 필요한 옷들만 갖추고 지내니까 더 기분 좋게 옷을 차려입을 수 있었다는 경험담처럼 말이다.

'읽어야 되는데..'라고 막연히 의무감으로 바라만 보던 책들이 없으니까, 책들을 더 부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책을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책을 더 자주, 많이 찾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단순한 삶과 가벼운 일상>에 쓴 미니멀라이프 경험담입니다.


태그:#미니멀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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