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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 - 2017년 8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미국 본토가 상상할 수 없는 불바다 속에 빠져들게 될 것" - 2017년 8월, 북한 노동신문

믿겨지는가. 불과 1년 전의 분위기다. 미국은 "군사적 해결책이 완전히 준비되어 있다"고도 했고, 북은 '괌 폭격'을 검토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이제 이 설전은 말 그대로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남북판문점회담(4월), 북미정상회담(6월), 남북평양회담(9월)으로 이어지는 훈풍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뉴욕에서 2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미관계에 대해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MBC 여론조사 결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신뢰가 간다는 평가가 67.8%를 기록했으며,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에도 82.8%가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남북경협주는 이미 3월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통일비용보다 큰 분단비용'을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북한지역에 막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지하자원도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2007년, 2009년 골드만 삭스의 전망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통일대한민국이 2050년에 국민소득 87,000달러를 달성하며 세계 2위의 경제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일은 장밋빛(?)

물론, 통일대한민국의 번영을 바라지 않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더 냉철해져야 한다. 이 의문을 품고 있어야 한다. '통일은 과연 장밋빛일까'.

'통일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을 주장하는 주요 논리 중 하나가 남한의 기술력과 북한의 값싼 노동력의 결합으로 인한 폭발적 경제성장이다. 한편으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는 남한의 노동자에게는 '임금 저하'와 '실직의 위기'를 의미한다. 내수시장은 더 침체될 수밖에 없다. 낮은 임금으로도 일을 시킬 수 있는, 게다가 통역조차 필요 없는 수백만의 청년들이 노동시장에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이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 장밋빛이 아니다.

또 현재, 막대한 토지 불로소득을 용인하는 남한의 토지제도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통일이 된다면, 통일은 발 빠른 일부 '토지투기세력'에게만 장밋빛이 될 수도 있다. 북 지역의 주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자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광물자원이든, 부동산이든, 공정하고 정의로운 제도와 분배구조를 확립하지 못하면, 이는 기득권 세력의 주머니에만 흘러들어가게 될 위험이 있다.

더 골치 아픈 고민도 있다. 통일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어떠한 내용을 담을 것인가? 어떠한 정치제도를 채택해야할까? 통일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는? 한국전쟁과 해방공간에서의 좌우갈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서로에 대한 적대를 자양분삼아 유지된 체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북의 정치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듯, 북도 남의 정치체제를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제도는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남과 북 학생들의 학력격차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자, 남북주민의 (통일이 아니라) '통합'은 제대로 이루어질까? 우리 사회의 3만명 남짓의 북한이탈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8월 13일 KBS 보도에 따르면, 탈북자 3만 명중 40%가 20대 이하에 해당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업 결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탈북 청년들의 대학 중도탈락율은 10%로 일반 대학생의 2배에 이른다. 3만의 북한이탈주민도 '중도탈락'하게 하는 한국사회가, 3천만의 북한 주민을 아우를 수 있을까. 그들이 2등 국민으로 전락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게 통일인가?

한국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 있었던 독일도 심각한 통일후유증에 시달렸다. 독일은 처참한 전면전의 비극을 겪지도 않았고, 상호방문이 허용되었으며 전화와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분단기간도 (한국에 비해) 짧았다. 이러했던 독일도 '오시스'(게으른 동독인)와 '베시스'(거만한 서독인)라는 신조어에서도 볼 수 있듯 심각한 사회갈등을 경험했다. 과연 통일한국은 나을까?

'장밋빛'이 아닌, '잿빛 통일한국'을, 아니 모든 것을 상상하라

이응준 작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은 북이 남에 갑작스럽게 흡수통일 된지 5년이 지난 2016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 속 통일대한민국의 모습은 꽤나 어둡다. 정부는 북 지역의 총기와 마약 관리에 실패, 총기난사/총기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북한 지역 주민이 폭력 조직을 결성하면서 이에 결탁하는 부패 경찰이 횡포를 부린다. 영호남갈등을 압도하는 남북주민갈등이 한국사회를 짓누른다. 그렇게, 그가 그려낸 '통일대한민국'은 장밋빛이 아닌, '잿빛' 그 자체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장밋빛만이 아닌 '잿빛의 통일한국'을 상상해야 한다. 통일은, 독일이 그러했듯, 그리고 우리의 분단이 그러했듯,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갑자기 찾아올 수 도 있다. '잿빛 통일한국'을 상상했던 우리의 상상력은 그 때에 빛을 발할 것이다.

아니, 잿빛 통일한국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상상해보자. 1국가 2체제 형태는 어떠한가? 같은 역사를 공유했지만 현재의 독일-오스트리아처럼 전혀 별개의 나라로 공존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이 체제에서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어떻게 재편되어야 할까?

남북공존, 남북평화, 그리고 통일의 과정은 매우 지난할 것이다. 하지만 비관적이고 어둡다고 해서 우리의 상상력이 멈춘다면, 장밋빛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겠지만, '잿빛'을 상상할수록, 우리는 장밋빛 미래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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