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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하와이에 살면서 경험했던 내용을 재미있게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아름다웠던 일몰의 바닷가부터 각종 수상 액티비티까지. 20대에 하와이에 살면서 경험한 잊지 못할 추억,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한국과의 미묘한 차이점에 대해 기사를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 기자 말

다른 부위엔 살이 찌지 않았지만, 술 때문에 불룩 튀어나온 배, 담배와 커피로 인해 나는 특유의 냄새. 이런 묘사가 슬프게도 대한민국 30~40대 남성을 묘사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돈 벌어 먹고살기에 바쁘고 끊임없는 야근에 고통받으며 몸의 건강은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려난다. 백화점 화장실을 가보면 '아저씨 몸 탈출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을 내건 헬스클럽들의 광고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운동하지 못하는 일상의 근본적인 이유로 꼽히는 '저녁이 없는 삶'은 최근 한국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하지만 '저녁이 없는 삶'은 단지 직장인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교육으로 인해 개인적인 여가를 가지지 못한 채 웹툰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응답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안 좋은 생활 습관의 어두운 그림자가 뻗어 있으니, 대한민국의 큰 사회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 따르면, 어린이와 청소년 4명 중 1명은 하루 중 자유시간이나 휴식시간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7.7명꼴로 수면이 부족하고 2명 중 1명은 하루에 1분도 운동을 하지 못한다.

또한 응답자의 77.3%는 수면 권장 기준(초등생 9∼12시간, 중·고생 8∼10시간)만큼 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1, 2학년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이 채 안 됐다.

베스트셀러로 큰 주목을 받았던 책 <피로사회>가 왜 제목 네 글자만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이다.

그렇기에 내가 하와이에서 목격한 한 달의 저녁 풍경은 어찌 보면 하와이에서 느낀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가지게 만든 주제였다.
아름다웠던 일몰
 아름다웠던 일몰
ⓒ 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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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운동! 끊임없이 운동하는 사람들

맛있는 햄버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해서 부푼 마음을 안고 기다리는 내 앞으로 운동복을 입은 커플이 들어왔다. 둘 다 최근 일명 '근육 돼지'라고 불리는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런 남자와 시비가 붙었다가는 뼈가 남아나질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플은 햄버거를 포장해서 받았고, 다시 조깅하면서 음식점을 지나갔다. 또 다른 조깅하는 멋진 몸을 가진 남자가 들어와서 햄버거를 포장해 나갔다. 조깅하는데 먹는 음식은 햄버거라니. 어딘가 아이러니했다.

하와이 사람들은 굉장히 운동을 사랑했다. 기본적으로 레저 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리는 하와이기 때문에 각종 운동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잘 갖춰져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조깅,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아침, 저녁으로 끊임없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미국이다 보니 하와이 음식에 기름진 음식이 많고, 바베큐 파티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건강이 걱정되는 비만인 사람들도 많이 보였고, 조깅하는 사람 중 살이 찐 사람들도 많았지만, 잘 살펴보면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나 또한 하와이에 와서 '많이' 먹고 '많이' 움직였다. 기름진 햄버거, 피자, 스테이크 크기의 고기를 끊임없이 먹었고, 바다에 가서 수영하거나 서핑을 하며 건강한 일상을 보냈다. 확실히 몇 주가 지나면서 몸이 달라졌다. 운동한 만큼 확실하게 먹어주다 보니까 '벌크업'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살은 붙었는데 그만큼 몸이 더 탄탄해졌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지금, 이것저것 할 게 많다는 핑계 속에 급격하게 다시 살이 붙고 있다.

이밖에도 아침 일찍 학교에 가려고 나서면 왠지 형이라고 부르고 싶은 키 크고 멋진 외국인이 새벽 서핑을 즐기고 서핑보드를 든 채 숙소로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 새벽 서핑을 하겠다고 항상 다짐했지만, 번번이 졸린 몸을 못 일으키고 실패했다.

신기한 풍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핑을 나가보면 하와이의 꼬마들은 아빠의 도움을 받으며 서핑을 배우고 있었다. 내가 서핑을 처음 탄 날, 번번이 일어나는 데 실패하고 있을 때, 고작 5~6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꼬마 5명이 내 옆으로 멋진 서핑 실력을 뽐내며 지나가는 걸 보며 순간 멍해졌다. 이 시간에 학원을 가는 셔틀버스에서 웹툰을 보고 있을 한국 아이들과 하와이 아이들의 삶의 질 차이가 심하게 느껴졌다.

또한 저녁에 축구 경기를 하는 잔디밭을 가보면 아줌마 축구단이 살벌한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승부욕이 불타는 모습이 보였고, 실력은 상당했다. 경기가 끝난 뒤 다 같이 모여 아줌마들의 수다를 즐기는 모습까지 보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운동을 넘어 근본적으로 다른 일상을 가진 사람들

이런 풍경을 보면서 단지 한국인들이 운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위에도 말했지만, 대한민국에는 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여유로운 생활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와이의 해변을 걷다 보면 3~4가구가 모여 바베큐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뛰어놀고 부모들은 고기를 굽고 옆에 둘러앉아 즐거운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고기를 굽는 소리는 아직도 내게 와이키키 밤바다 소리만큼 가장 평화로웠던 소리로 들린다.
저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하와이 주민들
 저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하와이 주민들
ⓒ 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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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큐 파티가 아니어도 해변에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이 많이 보인다. 특별한 것 없이 그냥 얘기를 나누는 것일 뿐이었는데,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여유로운 분위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하와이에 있던 마지막 일주일은 특별히 다른 지역을 놀러 가지 않았다. 끝나면 서핑을 했고, 서핑하지 않는 날이면 모래사장에서 낮잠을 잤다. 저녁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듣기도 했고, 친구들과 수다를 즐겼다.
아름다웠던 하와이 풍경과 평화로웠던 가족
 아름다웠던 하와이 풍경과 평화로웠던 가족
ⓒ 신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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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일상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행복을 앎에도 불구하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저녁도 반납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을 즐기고, 대화를 즐기는 모습에서 보인 건 단지 그런 시간이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 근본적으로 존재하는 '조금' 더 넓고 여유로운 자세였다.

'피로 사회' '저녁이 없는 삶'으로 통하는 대한민국 사람인 나에게 그런 일상적인 모습이 가장 부러웠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슬픈 일이었다.


태그:#하와이, #저녁이있는삶, #와이키키, #오아후, #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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