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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최고법원인 대법원을 정점으로 각급 법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법원 구성원의 핵심은 법관들이다. 법률을 해석해서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면서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게 된다. 그 때문에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헌법에서 최우선 가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법부가 논란에 휩싸여 있고, 논란의 중심에 법원행정처와 대법원장이 놓여 있다.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에 비판적인 성향의 판사들 동향을 파악하고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거듭되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른바 골목성명을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하여 자신이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재판거래는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시도된 바도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나선다. 그러나 의혹의 시선은 여전히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해 있다. 그리고 사법부가 이 중대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는 문제와 법원 내부의 불만을 잠재워야 하는 상황에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민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발언이나 법원의 주장에 대하여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면서 이미 신뢰를 잃은 법원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노출되고 있으나 하나로 뜻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법관들의 성향에 따라서, 처한 입장에 따라서 생각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일단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회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법원 내부의 의견을 정리할 생각으로 보인다.

의혹의 당사자로 문건을 만들었던 법원행정처 사람들은 제기되는 의혹들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법원행정처는 이런저런 의견을 모아서 정리하는 것이고, 사법행정은 재판과는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재판거래의 의혹에 대하여도 판사들의 양심상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내부에서 자료를 정리한 것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원행정처가 뭐 하는 곳인가? 판사들이 독립적으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친다. 판사들의 꼭대기에 앉아서 감독과 감시를 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집단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이 작성했다는 문건들의 내용에는 내부 사찰로 보이는 것들이 많고, 대법원이 대통령과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는 용어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단순히 내부 검토용으로 그쳤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법원행정처 내부의 의견이 재판거래를 생각했다는 것이고, 최소한 사법권력으로 대통령을 겁박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 아닌가? 문건으로 작성될 정도의 의견이라면 최소한 내부에서 검토되었던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러한 문건들이 완성된 문서로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제기되는 의혹들을 해명하는 데 턱 없이 부족한 변명에 불과하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두 가지다. 하나는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이 아닌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거기에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들이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법원 내부에서는 자신들 내부 힘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사법부가 독립성을 의심받고 있는 마당에 문제의 해결을 내부의 손에 맡기는 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다른 국가기관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의 힘을 빌려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특별검사를 임명해서라도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나 소장파 판사들이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문제를 키워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의혹이 제기되었다면 그 의혹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형식적 이유만을 내세워 비난할 일이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이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쉬쉬하면서 감춰야 할 일은 더욱 아니지 않는가? 국민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사항이고, 가장 중요한 알 권리의 하나다.

사법부나 법원은 판사들의 것이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도 법원이나 판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행정부와 입법부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훨씬 더 큰 이해관계를 가지는 국민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내부의 문제로 치부하면서 마치 자신들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또한 헌법에서 권력분립을 보장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수사기관에 의해서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법원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다. 국가기관의 하나일 뿐이고 잘못이 있다면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수사기관을 통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법부의 독립을 이유로 수사를 거부하는 것은 삼권분립의 기본적 취지에 반하는 것이고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가지는 가치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서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은 사법부의 형식적 독립에 앞서 지켜져야 하는 헌법적 가치다. 더욱이 사법부는 이미 자정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되는 판결에 대하여 어떻게 신뢰성을 담보할 것이냐의 문제다. 법원 내부, 특히 해당 대법원 판결에 관여했던 대법관들은 재판거래를 통한 왜곡된 판결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았다고 단언하면서 불쾌감을 드러낸다. 법원 내부의 많은 판사들도 같은 태도를 보인다. 정치권력에 영향을 받아서 왜곡된 판결을 하였다는 의심만으로도 이미 법원의 존립에 회의감을 드러낼 정도의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관들이나 일부 법관들의 그러한 태도를 보는 국민들은 '방귀 뀐 놈이 성낸다'라는 속담을 떠올린다. 판결에 의혹을 가져온 이유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사법부 스스로의 잘못된 처신으로 발생한 문제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떳떳하게 판결한 것이므로 무조건 믿어달라면서 의혹의 눈초리를 가진 국민들을 오히려 나무라고 있는 꼴이다.

재판거래로 지목된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당사자들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이유 없이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망연자실(茫然自失)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대법원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들에게 패소판결을 내린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불행하게도 대법원 판결이 잘못된 것이냐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대법원 판결의 위법성이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해당 판결의 당사자들을 구제할 마땅한 방법도 없다. 대법원 판결의 위법성을 인정받아야 비로소 재심을 통한 구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혼란이 거듭될 수밖에 없는 이유고, 법원의 판결에 의혹이 제기되면 사회혼란이 얼마나 가중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유다.

보수언론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태를 키워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법관들과 법원 내부의 판사들이 제기한 불만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김명수호를 흔들어댄다. 그렇다면 보수언론과 그 궤를 같이 하는 판사들은 분명히 답해보라. 김명수 대법원장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처럼 법원행정처를 동원하여 자신에게 비판적인 성향의 판사들 동향을 파악하기 위하여,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하려는 문건들을 만들어도 되는 것인지를. 어느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일 아닌가?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고유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지금의 사태에 대하여 대법원과 법관들은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허명 뒤에 숨어서 숨죽일 일이 아니다. 새로 출발한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국민들 앞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그나마 사법부를 믿어온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정범씨는 법무법인 민우 변호사이자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인교수입니다.



태그:#양승대태법원장, #김명수대법원장, #재판거래, #법원행정처동향파악, #판사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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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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