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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는 어떤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니?"라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이러이러한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짐짓 생각한다. 어른들이 더 오래 살아왔고, 더 올바른 생각을 할 것이라는 가정을 해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묻지도 않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하루에 12시간, 시간연장보육을 포함하면 14시간 동안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이가 진정 원하는 일일까?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 영유아들일지라도 권리의 보유자로서 그들의 견해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영유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서는 영유아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영유아 이익 최우선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보육정책을 계획하고 결정할 때 영유아의 입장보다는 부모나 원장, 정부 등 성인들의 입장이 우선시 되면서 실제로 영유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정책이 영유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크게 고려하지 않아왔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어떤 어린이집을 바라는 걸까? 서울시 등록 비영리단체인 '아이들이행복한세상'에서는 2018년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아이들이 말하는 '이런 어린이집이 좋아요'> 사업을 진행했다.

서울, 인천, 경기 대전지역의 참여 어린이집에서 6, 7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어떤 어린이집을 원하는지에 대해 그림으로 그린 후, 그 그림에 담겨있는 생각을 말하면 교사가 아이들의 생각을 받아 적어 '아이들이행복한세상'에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모아진 그림은 1612개. 아이들의 생각과 바람은 이런 것들이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어린이집은 놀이를 많이 하는 어린이집(실내외 놀이, 놀이터, 놀잇감)이 34.2%, 동식물이 있고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어린이집(동물, 식물, 자연)이 22.5%, 사람이 함께 하는 어린이집(선생님, 친구, 가족)이 14.8%,행복하고 즐거운 어린이집(행복, 즐거운, 사랑)이 8.8%였다.
▲ 이런 어린이집이 좋아요 그림 이야기 키워드 분석 결과 아이들이 원하는 어린이집은 놀이를 많이 하는 어린이집(실내외 놀이, 놀이터, 놀잇감)이 34.2%, 동식물이 있고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어린이집(동물, 식물, 자연)이 22.5%, 사람이 함께 하는 어린이집(선생님, 친구, 가족)이 14.8%,행복하고 즐거운 어린이집(행복, 즐거운, 사랑)이 8.8%였다.
ⓒ 조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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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여 개의 그림을 통해 아이들은 다양하고도 아이다운 생각들을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그림에 담긴 내용을 키워드로 분석한 결과, 아이들이 원하는 어린이집은 놀이를 많이 하는 어린이집(실내외 놀이, 놀이터, 놀잇감)이 34.2%, 동식물이 있고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어린이집(동물, 식물, 자연)이 22.5%, 사람이 함께 하는 어린이집(선생님, 친구, 가족)이 14.8%,행복하고 즐거운 어린이집(행복, 즐거운, 사랑)이 8.8% 이었다.
   
   ○ 놀이를 하는 어린이집(34.2%) 
     - 자동차 놀이를 많이 하는 어린이집이 좋아요.
     - 쌓기 영역에서 건이랑 레고블럭으로 집을 만들고 놀 때 가장 재미있어요.    
     - 친구들과 미술 영역에서 놀 수 있는 어린이집이 좋아요.
     - 물놀이 하는 게 좋아요.
     -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는 것이 제일 재미있어요.
   
    ○ 자연, 동식물이 있는 어린이집(22.5%) 
     - 토끼랑 노는 어린이집이 좋아요.
     - 개미가 많아서 함께 놀이할 수 있는 행복한 어린이집이요
     - 나비와 나무, 꽃이 가득한 자연 속의 어린이집이 좋아요.
     - 나무그네도 타고 모래놀이도 해요. 숲속에서 놀면 민들레, 개나리, 무당벌레도 볼 수 있어요.
     - 어린이집에 진짜 내가 좋아하는 공룡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 사람이 함께 하는 어린이집(14.8%) 
     - 어린이집에 친구가 있어서 좋아요. 친구들과 소풍갈 때 재미있어요.
     -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 어린이집에서 엄마, 아빠랑 하루 종일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침부터 쭉 같이.
     - 언니와 함께 다니는 어린이집이 좋아요.
   
  ○ 행복하고 즐거운 어린이집(8.8%)  
     - 사랑이 있고 무지개가 있는 어린이집이요.
     - 항상 웃는 우리 어린이집이 좋아요.
     - 재미있고 행복한 어린이집이 좋아요.


움직이는 어린이집이었으면 좋겠어요!
▲ 움직이는 어린이집 움직이는 어린이집이었으면 좋겠어요!
ⓒ 조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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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토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집 앞에 큰 꽃밭 두 개가 있고, 꽃이 가득한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어요. 향기가 가득하도록~
▲ 어린이집에 토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집에 토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이집 앞에 큰 꽃밭 두 개가 있고, 꽃이 가득한 어린이집에 다니고 싶어요. 향기가 가득하도록~
ⓒ 조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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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정책제안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 놀이할 수 있는 넓은 실내 공간과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실외놀이터가 필요하다.

유아들이 가장 원하는 어린이집은 '놀이를 많이 하는' 어린이집이다. 모든 어린이집에서 영유아가 신나게 놀면서 지내기 위해서는 넓은 실내의 보육실과 더불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실외놀이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어린이집의 21.6%만 자체 실외놀이터가 있다.

영유아보육법 상 실외놀이터 설치가 50인 이상 어린이집에만 의무화되어 있고, 50인 이상 어린이집에서 100미터 이내에 위치한 인근 놀이터 사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근에 놀이터가 있어도 교사의 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고의 위험이 있어서 외부의 실외놀이터를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 신설되는 어린이집의 인가조건으로 실외놀이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하며 자체 놀이터를 설치하기 어려운 아파트형 가정어린이집의 경우 단지 내 놀이터가 연접하는 조건으로 인가하는 것으로 법제화해야 한다.

또한 놀이터가 미설치되어 있는 기존 어린이집의 경우 놀이터 설치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정부가 어린이집 인근에 영유아가 이용할 수 있는 놀이 공간, 공원이나 숲 등을 조성해서 자연 속에서 영유아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어린이집에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놀이기구마다 탈 수 있는 나이가 적혀있어요.
▲ 놀이기구가 많은 어린이집이 좋아요! 어린이집에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놀이기구마다 탈 수 있는 나이가 적혀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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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빌려줄래?”하고 장난감을 바꾸었어요. 블록놀이도 하고 곤충도 볼 수 있어서 엄청 좋아요.
▲ 친구야 장난감 빌려줄래?, 곤충도 볼수있어요~ “친구야 빌려줄래?”하고 장난감을 바꾸었어요. 블록놀이도 하고 곤충도 볼 수 있어서 엄청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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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놀 수 있는 시간 확보와 놀이를 함께 하는 충분한 교사가 필요하다.  

영유아의 발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영유아가 편안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이 갖추어져야 하며, 여유 있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되어야 한다. 또한 영유아를 보살피면서 영유아의 요구를 들어주고 영유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놀 수 있는 교사가 있어야 한다. 즉 영유아에게 충분한 공간과 시간, 사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집 교사들은 하루종일 격무에 시달리며 영유아를 돌보아야 한다. 평가인증과 모니터링, 지도점검, 열린어린이집 준비로 인해 해마다 강화되는 서류와 업무들, 안전사고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 교실 속 생활을 빠짐없이 녹화하고 있는 CCTV, 시간에 맞추어 아이들을 대기시켜야 하는 특별활동 등등으로 바쁘고 여유를 잃어간다.

교사가 지치고 힘들 때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줄 에너지는 고갈될 수 밖에 없다. 지금보다 조금은 느긋한 보육과정의 운영으로 교사들에게 아이들과 같이 놀이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주어야 한다. 교사 대 아동비율도 현재의 기준보다 대폭 낮아져야 하고, 또 보육교직원이 법정 휴게시간과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인력 지원이 시급히 필요하다. 너무나 많은 보육의 현안들이 있지만 이 정도로 마무리하려 한다.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어린이집에 선생님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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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옥상에 수영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모든 친구들이 물놀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큰 소나무를 키우고 싶어요. 수영장 물은 친구들이 놀아야 하니 우리 집에서 물 가져와서 소나무에 물 줄래요.
▲ 옥상에 수영장이 있고, 큰 소나무를 키우고 싶어요!! 어린이집 옥상에 수영장이 있으면 좋겠어요. 모든 친구들이 물놀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큰 소나무를 키우고 싶어요. 수영장 물은 친구들이 놀아야 하니 우리 집에서 물 가져와서 소나무에 물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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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612명의 아이들이 그림으로 표현하고 말한대로, 아이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한 보육정책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5월 5일 하루만 어린이날로 기념하며 선물을 사주는 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한 뼘씩 자라나는 우리 영유아들에게 날마다 좋은 것들이 가득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보육정책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혹은 원치 않는지에 대하여 귀기울여주지 않는, 어린 영유아들이라는 점을 우리 사회가 잊지 않았으면 한다. 


태그:#아이들이행복한세상, #이런어린이집이좋아요, #아이들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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