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목원, 산림욕장, 올레길, 둘레길, 공원 등은 모두 인간의 손이 닿은 곳이다. 자연을 닮게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인위적이기에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수려한 경관은 인간의 손이 닿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산수는 인간의 존재와 상관없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도 하고 때론 없애기도 한다. 1년에 극히 제한된 날에만 공개가 된다는 봉암사는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희양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희암산
▲ 계곡 희암산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사람의 출입이 많지 않아서인지 이곳의 물은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맑고 청아해 보인다. 흘러내려오는 물 위로 드리운 것은 녹색의 수풀이다. 희양산은 높이가 1000미터에 가까운 산으로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도계를 이루며 조령천이 흘러내려 풍광이 아름답고 명소가 많아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많이 찾아온 곳이기도 하다.

봉암사
▲ 봉암사 입구 봉암사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불교 구산의 하나인 남쪽 산록에 881년 (헌강왕 7) 도헌이 창건한 봉암사가 있다. 문경에 자리한 사찰은 대부분 가보았지만 봉암사는 3년 만에 처음 와본다. 사람들이 적게 방문할수록 산수는 그대로 고유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재단해 버리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계곡
▲ 계곡물 계곡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바위 위를 걸어 본다. 이곳에 있는 봉암사는 시적 소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특히 죽지 않고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뛰어난 글솜씨로 쓴 토황소격문으로 당나라에서 유명세를 타고 신라로 돌아왔지만 육두품에 한계에 막혀 자신이 이루고 싶은 바를 이루지 못했던 사람이다.

사찰
▲ 봉암사 사찰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봉암사
▲ 희암산 봉암사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멀리 기암괴석으로 높이 솟아 있는 희암산의 산세와 기운이 남다르다. 그 아래로 있는 봉암사의 건물들은 그 기운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사찰의 기운이 영험해 보인다. 지방의 수령 신분으로 이곳에 왔던 강준흠은 기행문의 서사적인 내용을 담은 시를 지어 이곳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기록을 남겼다.

사찰
▲ 아름다운사찰 사찰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산수가 진실로 기절하여
떠나다가 다시 머뭇거리네
마치 홍류동 같아서
말을 세우고 맑은 가을 감상하네
고상한 은자는 이곳에 있지 않고
승려들은 우리들의 짝이 아니네
명승지를 모두 부처에게 양보하니
아무래도 선비들의 수치가 되네


물
▲ 약수물 물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봉암사를 첫 방문하면서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물이 나오는 곳이 참 많다는 것이다. 이런 큰 석물에 가득 담긴 맑은 물이 절의 곳곳에 있다. 그것도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물로 필자도 마셔보았는데 우선 시원하고 깨끗했다. 희암산의 자락에서 나오는 물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물은 어디에나 가도 있어서 적어도 이곳에서 갈증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석물이 두 개로 나뉘어 있는데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수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전소
▲ 화마 전소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멀리 신이 깎은 듯이 솟아 있는 희양봉은 위엄 있고 엄숙해 보였다. 왜 봉암사를 속세의 사람들이 아무 때나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879년에 창건된 봉암사는 조선 초기에는 기화(己和)가 1431년(세종 13)에 절을 중수한 뒤 오랫동안 머물면서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宜)』를 저술하였다. 그 뒤 1674년(현종 15) 화재로 소실된 뒤 신화(信和)가 중건하였고, 1703년(숙종 29) 불전과 승료가 불탔으나 바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극락전
▲ 극락전 극락전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여러 번 불이 탔음에도 불구하고 이 극락전은 한 번도 화마의 피해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정사각형의 형태로 만들어진 극락전은 국내에 있는 사찰 건물 중 가장 독특한 형태로 사방으로 길이 나있고 중앙에 방이 만들어져 있다. 건물의 가구방법(架構方法)이 이채롭고 천장 꼭대기에 석탑 상륜부의 모양으로 보주(寶珠)를 얹고 있는데 이를 최근에는 목탑이라고 보고 있다.

창건
▲ 창건 창건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정면에 있는 건물에는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봉암사 지증매사탑과 신라 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신라 경애왕 원년(924)에 건립된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가 있는데 비문은 고운 최치원이 지었다.

백운대
▲ 백운대 백운대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봉암사에서 위쪽으로 2km쯤 걸어올라오면 최치원이 남겼다는 백운대라는 글씨가 있다. 봉암사에 최치원은 이곳 말고도 야유암, 고산류수명월청풍을 남겨두었다. 서체는 음각의 초서체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서 천년이 훌쩍 지났지만 보존 상태가 무척이나 양호하다. 이곳 백운대는 고운 최치원이 유상하던 장소로 풍계 명찰(1640 ~ 1708)은 백운대의 풍광을 "냇물은 맑고 바위 빛은 흰데 괴석이 곂쳐 치솟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치원
▲ 백운대 최치원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1백 리에 걸쳐 있는 희양산은 영남의 산 중에서 가장 유일하고 웅장함을 가진산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최치원이라는 신라의 석학이며 고상했던 인물을 통해 더욱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글씨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백운대는 희양산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산수
▲ 수려한산수 산수
ⓒ 최홍대

관련사진보기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소리를 내면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이곳에서는 잠시 고요해진다. 산세의 힘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이 가진 최고의 정수에 의해 만들어진 희양산, 봉암사 그리고 백운대를 보며 정서적으로 충만해지는 감정의 공감을 포용하게 된다.

희암산, 물, 구름, 바위는 생물이 아니지만 삶의 근원적 가치가 있고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그:#희암산, #봉암사, #최치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무엇이든지 쓰는 남자입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하며, 역사이야기를 써내려갑니다. 다양한 관점과 균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은 열심이 사는 사람입니다. 소설 사형수의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