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유난히도 추웠던 이번 겨울, 한파와 미세먼지의 매서운 시소게임에서도 꿋꿋이 인권과 평화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소녀들. 이번 겨울 100명의 소녀를 만난 동시에 100명의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마음을 나눈 여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20세기의 할머니와 21세기의 소녀들. 그들이 간절히 부르짖는 평화는 한맺힌 역사에서 비롯합니다. 유대인 학살 장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보다 무서운 것은 단 한가지다. 인류가 이 사실을 잊는 것이다.'

지금, 이 치욕스러운 과거를 명확히 기억하고 당당히 마주함으로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작은 발걸음입니다. 꽁꽁 언 두 손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두 마음이 서로의 상처를 닦아주었습니다. 진실된 역사를 밝히기 위해, 폭력과 강압으로 피 흘렸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 땅과 인류 역사에 다시는 인권탄압과 전쟁이 없기를 바라며... - 기자 말

논산 평화의 소녀상과 고 송신도 할머니

 논산 평화의 소녀상
 논산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관련사진보기


충청남도에서 천안, 아산, 서산, 당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세워진 논산 평화의 소녀상. 논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개인 739명, 351가족(총 1288명), 총 316개 단체에서 70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기부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 부대비용을 제외한 1728만7275원을 '정의기억재단'의 '20만 동행인' 캠페인의 기금으로 전달했다.

논산 내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소녀상 건립 추진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벼룩시장을 개최해서 10만3000원을 기부했을 정도로 시민들의 모금 참여가 활발했다. 논산시 쌘뽈여고에는 위안부피해 문제 연구 학생동아리인 바람꽃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인 논산 출생 고(故) 송신도 할머니를 기리는 비가 소녀상과 함께 위치하고 있다. 1922년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난 송신도 할머니는 16세에 억지로 하게 된 결혼을 피해 도망하던 중 "전장에 가면 혼자서도 잘살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중국 무창, 악주, 장안 등에서 7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일본의 패전 후, 1946년 일본 군인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왔지만 그는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버렸고, 이에 열차 투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1993년 4월 5일부터 10년간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1993년 9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진행된 제1심에서 도쿄지방법원은 피해사실은 인정하지만 청구는 기각했고, 제2심 도쿄고등법원 또한 제척기간을 적용해 청구를 기각했다. 마지막 일본 최고 재판소에서도 상고기각, 상고수리기각 결정을 내고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1993년 4월 5일 제소를 시작으로 2003년 3월 28일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고통스러운 법적 투쟁을 벌인 송신도 할머니의 모습은 2007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공개됐다. 국내에서는 2009년 2월 26일 개봉됐다. "재판에서 졌지만, 마음은 지지 않았다." 송신도 할머니가 말한 이 문장은 99주년 3.1절을 맞아 배우 정우성, 한지민 등이 이어간 '#내 마음은 지지 않아' 릴레이 운동에 모티브가 됐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과 고 이기정 할머니

 당진 평화의 소녀상
 당진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관련사진보기


1002명의 당진시민과 34개 단체의 성금이 모여 2016년 3월 1일 당진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당진 평화의 소녀상은 배효남 작가의 작품으로 팔을 벌리고 서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날개를 펴고 있는 새는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며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의미한다. 소녀상 바닥의 물방울 파장은 미래 세대까지 민족의 역사적 교훈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당진시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도내 마지막 생존자였던 고(故) 이기정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는 1943년 간호사를 시켜주겠다는 (혹은 일본군 옷 세탁을 하는 일을 한다는) 직업소개소 말에 속아 싱가포르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싱가포르와 미얀마에서 2년 반 동안 위안부로 갖은 고초를 겪었다. 당시 18세에 불과했다.

1945년 광복 후 군함을 타고 부산으로 귀국한 이 할머니는 차마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없어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위안부' 피해로 불임이 된 할머니는 자식을 입양해 키웠지만 아들 부부가 손녀를 남겨두고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06년 정부로부터 위안부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고(故) 이기정 할머니는 2017년 11월 11일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장례식은 당진시민장으로 치러졌다.

서산 평화의 소녀상과 고 하상숙 할머니

 서산 평화의 소녀상
 서산 평화의 소녀상
ⓒ 김종욱

관련사진보기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맺힌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이 땅 소녀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인권이 존중 받고 평화와 통일이 실현되는 사회를 염원하고자 건립된 서산 평화의 소녀상은 서산시청 앞 서산 시민공원에 위치해 있다.

17만 인구의 충청남도 서산에서는 한 달여 동안 7000여 만 원의 성금을 모았으며 그 중 절반이 학생들의 모금액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열기를 보였다.

서산은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고 하상숙 할머니의 고향이다. 192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하상숙 할머니는 1944년 5월 17살 때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중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해방을 맞은 뒤에도 어머니께 차마 위안부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고향에 돌아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노년을 보내던 할머니는 늘 생의 마지막은 고국에서 보내고 싶다고 말해왔었다.

2016년 4월 중국에서 낙상사고로 위독해지면서 치료를 위해 귀국했다. 치료 후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다. 그러다 2017년 8월 28일 노환으로 향년 89세 나이로 영면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여행작가 구보 <사색여담> 시리즈 저자 <그렇게 여행자가 된다> <상처 위를 거닐다> <여행, 그 너머에 있을 무언가> <아파야 보이는 것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