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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학성공원) 입구에 정유재란 당시 활약한 권율 장군과 명나라 양호 장군의 동상이 설치돼 있다.
 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학성공원) 입구에 정유재란 당시 활약한 권율 장군과 명나라 양호 장군의 동상이 설치돼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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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청이 지난 11일 학성공원에 정유재란 당시 활약한 장군들의 조형물을 설치했다. 당초 계획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 동상은 빼고 조선 권율 장군과 명나라 양호 장군의 동상을 설치했다.

앞서 중구청은 지난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킨 왜군이 조선과 명나라(조명) 연합군에 맞서기 위해 축성한 학성공원(왜성)에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을 세우려 하다 언론보도로 논란이 일자 왜장 동상은 철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기사 : 울산 중구청, 학성공원 '가토 기요마사' 동상 철회키로)

중구청에 따르면 이 조형물은 지난해 4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중구 학성르네상스 도시경관 조성사업 중 하나로 역사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학성공원에 역사 동상을 세워 후세의 교훈으로 삼는다는 취지다.

이 성은 도산성 혹은 울산왜성으로 불리며 현재 입구에는 장군들의 동상과 울산성전투도 사진, 전투상황일지 등이 설치돼 있다.

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학성공원) 입구에 정유재란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그린 '울산성전투도'를 찍은 사진이 설치돼 있다.
 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학성공원) 입구에 정유재란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그린 '울산성전투도'를 찍은 사진이 설치돼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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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학성공원) 입구에 정유재란 당시 활약한 권율 장군과 명나라 양호 장군의 동상을 비롯해 울산성전투도 사진 등이 설치돼 있다.
 울산 중구 학성동에 있는 울산왜성(학성공원) 입구에 정유재란 당시 활약한 권율 장군과 명나라 양호 장군의 동상을 비롯해 울산성전투도 사진 등이 설치돼 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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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일본군은 주변에 있는 병영성 등의 돌을 빼와 이 성을 쌓았고 우리나라 조선군과 명나라 연합군은 1597년 12월 23일부터 1598년 1월 4일까지 1차, 1598년 9월 21일부터 25일까지 2차 등 두차례에 걸쳐 이 성을 공격했으나 빼앗지 못했다.

특히 첫번째 전투 때는 경리 양호와 제독 마귀가 이끄는 명나라군과 권율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 5만 7천명이 막 축조공사를 끝낸 울산왜성을 습격했고 이에 성안에 있던 1만6천여 왜군이 고립돼 전투를 벌였다. 왜군은 결국 식량이 바닥나고 물마저 떨어져 전멸직전까지 몰려 군마를 찔러 피를 마시고 군마가 없어지자 오줌을 마시며 목을 축인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당시 상황을 그린 '울산성전투도'는 울산성에 갇힌 왜군을 구원하기 위해 김해 죽도왜성에서 달려온 사가현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휘하 화공에게 시켜 만든 그림이다. 하지민 원본은 1847년 일본 사가의 난 때 소실되고 현재 그림은 1886년에 오쿠보 세츠도가 제작한 작품이다.


태그:#학성공원, #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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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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