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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의 섬처럼 흩어진 돌무덤이 보인다.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계곡을 따라 약 10km에 걸쳐 펼쳐진 고인돌 유적지다.
 다도해의 섬처럼 흩어진 돌무덤이 보인다.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계곡을 따라 약 10km에 걸쳐 펼쳐진 고인돌 유적지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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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피어오르듯 드론이 훌쩍 하늘로 올라간다. 바람을 날개삼아 여기저기 살피는 눈매가 매보다는 갈매기를 닮았다. 굶주린 포식자의 시선이 아닌 아득한 관찰자의 시선.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보이는 게 달라진다.

갈매기의 눈에 다도해의 섬처럼 흩어진 돌무덤이 보인다. 전남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계곡을 따라 약 10km에 걸쳐 펼쳐진 고인돌 유적지다. 1995년에 발견되어 1998년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었고,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혹은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이다. 큰 돌을 받치고 있는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된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한반도에 약 4만 기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보검재 자락을 따라 오른다. 돌로 만든 무덤인 고인돌 사이에 흙으로 만든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잠든 이들의 무덤, 고인돌. 먼저 지독하게 사랑하다 먼저 이별한 자들이 대지의 별로 잠들어 있는 곳. 늘 가련했던 사랑은 뼈조차 삭지 못한 채 돌이 되어 수천 년을 버티고 서 있다. 죽어서조차 이별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 이성복 <남해 금산>

죽음의 전승, 사랑의 계승... 먼저 죽은 자의 무덤인 고인돌 사이로 나중에 죽은 자의 흙으로 만든 무덤이 함께 어울려 있다.
 죽음의 전승, 사랑의 계승... 먼저 죽은 자의 무덤인 고인돌 사이로 나중에 죽은 자의 흙으로 만든 무덤이 함께 어울려 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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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세월 지난 돌 묏등에 어린 솔이 뿌리를 내렸다.
 수천 년 세월 지난 돌 묏등에 어린 솔이 뿌리를 내렸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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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사랑한 자, 나중에 죽은 자는 어떤 사랑을 계승하고 어떤 죽음을 전승하였을까. 먼저 사랑한 자와 나중에 사랑한 자, 먼저 죽은 자와 나중에 죽은 자가 함께 어울려 누워 있는 풍경을 지나 수천 년 세월 지난 돌 묏등에 뿌리를 내린 어린 솔을 만난다.

새로운 생은 언제나 주검 위에 핀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 사랑은 언제나 이별 속에 핀다. 첫사랑도 없고, 마지막 사랑도 없다. 단지 그때 그 순간에 사랑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뒤돌아볼 것 없다. 예정하지 않아도 죽음은 올 것이니 우린 그저 온전하게 사랑하면 될 뿐 아닌가. 돌 묏등에 뿌리내린 철부지 어린 솔처럼.

무수한 돌 묏등 사이를 싸목싸목('천천히, 여유롭게'의 전라도말) 걷는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엔 무려 596기(효산리 277기, 대신리 319기)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다. 최소한 596개의 사랑 사이를 걸었고, 그보다 몇 곱절 많은 이별 사이를 걷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를 스칠 걸음들을 생각해 본다. 그이들은 잠든 우리 앞에서 수천 년 이어갈 사랑을 약속할 것이다. 우리가 잠든 돌 묏등은 그이들의 사랑의 징표가 될 것이고, 우리는 사랑의 증인이 될 것이다. 상상만으로 유쾌한 일이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에 남긴 마고(麻姑) 할미의 유쾌한 심술처럼.

화순 고인돌 유적지엔 무게가 100톤이 넘는 고인돌이 수십 기가 있는데 이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고인돌도 있다, '핑매바위'다. '핑매바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알려져 있는데 덮개돌은 길이 7m에, 두께는 4m고, 무게는 200톤에 달한다. 바로 이 핑매바위에 마고 할미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마고 할미가 빈정상해 던져버리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무게 200톤이 넘는 고인돌, '핑매바위'.
 마고 할미가 빈정상해 던져버리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무게 200톤이 넘는 고인돌, '핑매바위'.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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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것처럼 마고 할미는 한국 신화에서 즐겨 등장하는 창세신이다. 서양과 달리 우리 신화에선 여성성이 강조된 거인신이 창조신으로 등장하는데 그이가 바로 '마고 할미'다. 한반도 거의 모든 지방에서 마고 할미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마고 할미는 오지랖도 참 넓었던 신이었나 보다.

이 분, 이 땅에 만든 이력도 꽤나 독특하다. 잠을 자다가는 코를 곯아서 하늘을 내려앉게 만들고, 잠에서 깨어나면서는 기지개를 켜다가 하늘을 밀어 갈라지게 했다. 이 때 해와 달이 생겨났다고. 심심해서 땅을 긁다가 산과 강을 만든 분도 마고 할미다.

아무튼 이 마고 할미가 어느 날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당신도 나름 참여할 요량으로 치마폭에 돌을 싸가지고 가는데 닭이 울면서 탑을 다 쌓았다고 전하는 게 아닌가. 그만 빈정 상해 버린 마고 할미, 치마폭에 싸가지고 가던 돌을 확 버리고 가 버렸다. 그 바위가 '핑매바위'라고 한다.

그렇게 빈정 상한 마고 할미가 버리고 간 핑매바위 위에는 구멍이 있다. 왼손으로 돌을 던져 그 구멍에 돌이 들어가면 아들을 낳고, 들어가지 않으면 딸을 낳는다고. 지금도 핑매바위 위에는 사람들이 던진 돌이 수북하다. 어쨌거나 마고 할미는 우주선 날아다니는 요즘 세상에도 '출산의 신' 노릇은 제대로 하고 있다.

마고 할미의 유쾌한 심술처럼 반전이 없는 사랑은 영원할 수 없다. 유쾌하지 않는 사랑은 서로를 얼마나 질리게 하던가. 사람 질리게 만드는 지겨운 사랑은 불행하다. 빈정 상해 200톤이 넘는 돌을 냅다 던지고 가버린 마고 할미처럼, 사랑하는 동안 서로에게 아낌없이 유쾌할 일이다.


태그:#고인돌, #화순여행, #마고, #사랑,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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