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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동 언덕길에서 바라본 도시의 일출
▲ 도시의 일출 옥수동 언덕길에서 바라본 도시의 일출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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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거꾸로 가도 자연은 순리대로 제 뚜벅뚜벅 길을 걸어간다. 순리대로 살아가야 함을 자연은 그렇게 오고 감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올해는 무더위 열대야가 일찍 자리를 비워준 덕분에 청명한 가을 하늘을 자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도시에서도 제법 그럴듯한 일출과 일몰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하늘을 바다나 산에서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맞이한 행복한 순간으로 대하면서 감사했다.

새벽마다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만난 여명의 빛과 그 빛에 깨어나는 도심 자투리땅에서 피어나는 생명은 험한 세상이라도 끝내 살아가야 한다는 어떤 결연함 같은 것들을 주었다.

담쟁이덩굴에 단풍이 들어가고 있다.
▲ 담쟁이덩굴 담쟁이덩굴에 단풍이 들어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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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세상에 떠오른 햇살은 거대한 축대를 감싸고 절망의 벽을 넘어가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충만한 담쟁이덩굴을 비춘다. 어느새 담쟁이덩굴에 가을빛이 스며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절기상으로 입추가 니났으니 '가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생각하지 않아도 가을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몸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는 가을, 이제 완연한 가을인 것이다.

운 좋게도 내가 사는 곳에는 자투리땅이 있다. 방치하면 풀만 우거지므로 이른 봄부터 조금 몸을 움직여 씨도 뿌려서 거두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의 터줏대감에 해당하는 것들이 피어났다.

가을이 완연함을 알려주는 참취곷도 만발했다.
▲ 참취 가을이 완연함을 알려주는 참취곷도 만발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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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서 피어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그들을 보면서 여전히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같은 모습으로 피어남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애써 피어난 것들에게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이가 있다는 것을 각인함으로써 내년에 또다시 그곳에서 피어날 힘을 그들이 얻길 바랄 뿐이다.

하긴, 내가 응원하지 않아도 그들은 생명이 있는 한 피고 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내년엔 더 많이 퍼지면 좋겠다. 도시에서 살지만, 그 자투리땅에서 이른 봄에 참취향이라도 맡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 어디에 숨어있다가 고운 꽃을 피웠을까?
▲ 둥근잎유홍초 그 어디에 숨어있다가 고운 꽃을 피웠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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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잎유홍초가 가을꽃이라는 것을 새삼 알았다. 가을이 되어서야 선명한 분홍빛 꽃을 피워 자기의 존재를 드러냈다. 지난가을에는 그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올해 자투리땅 우거진 나무 전지를 해주었더니만 드러난 것 같다.

햇살이 스며들기 전에는, 제대로 피어날 수 없는 상황일 때에는 숨죽이고 있다가 피어난 듯하다. 그도 내가 고마워하듯이 나를 고마워하까? 온갖 잡풀(잡풀은 없지만)에 가리어져있던 삶, 그 잡풀들을 휘감고 올라와 기어이 피워낸 유홍초가 내겐 큼 힘을 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온갖 잡풀과도 같은 것들의 기세가 나를 잠식하려고 할지라도 끝내 나를 피워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그를 보면서 충전하는 것이다.

활활 불타오르듯 가을이 왔다.
▲ 석산(꽃무릇) 활활 불타오르듯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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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자라 피어날 때까지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어제, 붉은 무리가 눈에 들어오기에 한 곳에만 집중적으로 단풍이 들었는가 싶었다. 그런데 불타오르는 석산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여기저기 무리 지어 피어났다. 거의 방치되었던 자투리땅의 풀을 뽑고 고추며 들깨며 상추를 심는다고 부산하게 움직였더니만, 지인이 지난봄에 석산 뿌리라며 여기저기 심어주었던 것이다. 뿌리만 땅에 묻혀있는 셈이니 그냥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폭죽 터지듯 피어난 것이다.

꽃무릇 피어나는 남도의 어느 수려한 사찰만큼은 아니더라도 막 떠오른 아침 햇살에 깨어나는 꽃을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베짱이 한마리가 석산(꽃무릇) 위에서 쉬고 있다.
▲ 석산과 베짱이 베짱이 한마리가 석산(꽃무릇) 위에서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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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도 꽃을 찾았다. 풀이 있으니 도심에서는 사라졌을 것으로 생각했던 베짱이까지 만난다.

"그놈 참 배짱도 좋구먼!"

물론 그 '베짱'과 이 '배짱'은 다르지만, 자연은 어느 곳 어떤 상황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는 배포를 가지고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

은은한 보랏빛 과꽃, 원예종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거의 타지 않았다.
▲ 과꽃 은은한 보랏빛 과꽃, 원예종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거의 타지 않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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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올해도'라는 말이 오늘은 와닿는다. '어김없이' 피어남, 사람 곁에 살아도 별다른 보살핌없이 피고지는 꽃들은 야생의 꽃 닮지 않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소식을 듣노라면 해법이 보이질 않는 것 같고, 맨날 그런 세상인듯하여 맥이 빠진다. 그러나 맥놓고 살아갈 수만도 없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일 터이다. 조금씩은 나아지겠지, 희망이라는 것이 있겠지 싶어 또 하루를 맞이하고 허튜로 보내지 않기 위해 힘쓰는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그렇게 마르고 시들지만, 때가 되면 다시 피어나는 것이 풀이요 꽃이 아니겠는가?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 늘 희망이다.

가을 아침, 도심에서 맞이한 가을 꽃들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덧붙이는 글 | 옥수동 언덕에 자리한 작은 자투리 땅에서 오늘 아침(9월 18일) 담은 가을 꽃들입니다.



태그:#담쟁이덩굴, #단풍, #석산, #과꽃, #둥근잎유홍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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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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