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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30일 보도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8월 30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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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총리=(김주석을 보며) 건강이 좋으시고 정력적이십니다. 놀랍습니다.
김일성 주석=아 건강합니다. (쏘가리 회요리가 나오자) 이것은 외국손님에게 주로 대접하는 것이지요. 남쪽에도 있나요. 얼핏 한강상류에 있다고 들었는데. 자, 외교형식을 버리고 한 식구처럼 화목하게 식사합시다.
정원식 총리=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쏘가리는 어디서 나온 건가요?
김일성 주석=북한강에서 잡히고, 대동강 청천강에도 있는데 일본에는 없다더군.
김종휘 외교안보수석=남에서는 쏘가리를 매운탕으로 많이 끓입니다.
김일성 주석=매운탕? 그럼 남쪽에도 있단 얘기군.
정원식 총리=(술병을 가리키며) 이게 들쭉술이지요.
김일성 주석=백두산에서 나는 들쭉으로 만든 술이오. 도수가 없지요.
정원식 총리=도수가 있는 것 같은데요?
김일성 주석=길금에다가 알콜을 넣지 않고 직접 만든 것이라 도수가 없어요. 들쭉은 백두산 구석에서만 나는 모양이야. 백두산 중국 쪽에는 없고 남쪽에만 있어. 중국 쪽에는 매덕이라는 열매가 있다더만.
정원식 총리=(떡을 맛보며)옛날 이곳 풍습으로는 떡이 컸는데 왜 이렇게 작아졌지요.
김일성 주석=지금도 여기 떡은 커요. 손님을 위해 작게 만든 것이지. 정 총리가 재령이 고향이라는데 재령 쌀이 좋아요. 조선사람 욕망은 흰 쌀밥에 고깃국 먹고 기와집에 비단옷을 입으면 다야. 그 중에서도 흰 쌀밥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지.

위 대화는 1992년 2월 평양에서 개최된 6차 남북고위급회담 당시 금수당의사당에서 김일성 주석과 남측 정원식 총리간에 있었던 대화다. 이날 회담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남과 북은 그 해 9월에 있었던 8차 고위급회담에서 '민족통일의 장전'이라고 평가되는 '남북기본합의서'의 3개 부속합의서를 채택함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2000년 6월, 평양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북측은 평양냉면, 대동강 숭어국, 평양온반과 평양어죽 등 북한음식을 대접했고, 이를 맛본 김대중 대통령과 남측대표단은 매우 맛있다고 화답하는 등 시종 좋은 분위기에서 회담이 진행되었다. 결국 남북 정상은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에 합의하였다.

이처럼 정치인들간의 식사 정치는 상대와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의미이며 실제 격의 없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예상보다 큰 결과물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남한 정부는 평화적인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주변 동맹국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북측에 대화를 요구했으나, 북은 시종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급기야 지난 9월 3일에 있었던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인해 한반도의 정세는 급격히 요동치게 되었고, 지난 10년간 보수정권하에서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으로만 치부됐던 북한 핵미사일이 이젠 현실적인 위협임을 남한 사회는 인식하게 되었다. 남한 사회는 처음으로 북의 군사전력 우위를 인정해야 하는 슬픈 현실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뒤퉁수를 얻어 맞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다 대화 우선 정책을 주장한 남한 정부를 조롱하는 듯한 글을 올리며 화풀이를 대신했다. 이를 기화로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은 '코리아 패싱' 운운하며 트럼프의 변덕행보와 동맹국을 무시하는 정책에 우리 정부가 코드를 못 맞춘다며 '문' 정부를 비난하고 있으니, 이런 사대주의 작태가 어디 있는가.

그 동안 '비핵개방 3000'이라며 핵을 포기하면 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를 보장해 주겠다거나, '통일은 대박'이라는 오만하고 유치한 대북 정책으로 남북간 대화를 단절시킨 장본인들이 지금에 와선 거의 괴담수준의 시나리오를 퍼트리며, '안보 부채'만 잔뜩 물려준 '문'정부에게 자신들의 책임을 몽땅 떠 넘기고 있으니, 이런 적반하장은 또 어디 있을까.

6차 북핵 실험으로 인해 남한 문재인 정부는 대북 제재를 우선시하는 강경한 대북정책으로 선회하고, 사드임시 배치 등을 강행하면서 기존 진보 지지층의 실망과 중국 정부의 강경한 반대 등 사면초가에 내몰린 상황이다. 반면, 핵실험 성공에 한층 고무된 북한 정권은 '남한 정부는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다'라느니 '주한 미군을 즉각 철수해야 한다'느니 기고만장한 주장을 하며, 오히려 남한 극우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남과 북은 그 암울했던 냉전체제하에서도 '7.4 남북 공동성명'을 통해 평화통일의 씨를 뿌렸고,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및 '6.15 공동선언' 등을 통해 그 씨를 싹 틔우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이 핵미사일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열쇠'라는 오판 하에 핵으로 남한 사회를 겁박하려 든다면 어렵게 지켜온 평화통일의 싹을 짓밟는 행위와 다름 없다.

남한 사회는 북한이 핵으로 위협한다고 절대 굴복할 그런 나약한 사회가 아니다. 남한 사회는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지 않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만큼 성숙한 시민사회다. 비록 일련의 핵개발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대로 판이 키워지긴 했지만, 남한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판에서 생각대로의 판돈을 챙기긴 어려울 것이다.

대화와 협력으로 평화를 복원하고자 어렵게 내민 남측 동포의 손을 뿌리치고 김정은 위원장이 위태롭게 제 갈 길만 가고자 한다면, 북한이 그토록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얻은 핵미사일은 어떤 결과물도 가져오지 못하는 한낱 빈 깡통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 동포들의 삶 또한 지금보다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92년 2월의 6차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그 당시 남한 사람들에게는 마치 괴물처럼 묘사됐던 김일성 주석이 남쪽 총리와 전통음식을 주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한 모습은 그 자체로 남측 사회에는 큰 충격으로 전해졌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김 주석이 정 총리에게 "자, 외교형식을 버리고 한 식구처럼 화목하게 식사합시다."라는 말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진실로 북한 주민들의 행복과 안전 그리고 번영을 원한다면 당장 문재인 대통령과 밥 한끼 함께 하길 바란다.

이 어려운 난국에도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 올 기회는 남아 있다. 그 기회는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으로 만들어 질 수 있고, 남한 정부의 대통령과 한 식구처럼 화목하게 식사 한끼 하는 작은 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태그:#북한 핵미사일, #만능열쇠, #식사정치, #코리아패싱, #적반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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