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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새빨간 캥거루가 있을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없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모르는 노릇이라고 느껴요. 어쩌면 어느 날 수많은 캥거루하고 다르게 새빨간 털빛인 캥거루가 태어날 수 있거든요.

한겨레는 으레 까만 머리카락이라고 여기는데,  노란 머리카락이나 파란 머리카락이나 빨간 머리카락인 아이가 태어날 수 있어요. 까만 눈알이 아닌, 푸르거나 파란 눈알인 아이가 태어날 수 있을 테고요.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만할까요. 아이가 하얗거나 은빛인 머리카락이라면, 이웃이 푸르스름하거나 노르스름한 머리카락이라면, 이 같은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으로 서로 마주하거나 사귈 만할까요.

오늘 아침, 아기 캥거루가 엄마 주머니에서 나왔어요.
"어머나, 세상에! 온통 빨갛잖아. 아유, 무서워."
다른 캥거루들이 소리쳤어요.
"무섭지 않아. 얘는 그냥 털이 빨간 거야. 그래서 이름도 빨강이야."
엄마 캥거루가 알려주었지요. (2쪽)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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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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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라면 털빛이 다를 수 있고, 사람이라면 살빛이나 머리빛이나 눈빛이 다를 수 있습니다. 쓰는 말이 다를 수 있고, 생각이나 꿈이 다를 수 있어요. 힘이나 키나 몸집이 다를 수 있고, 솜씨나 재주가 다를 수 있어요.

키가 크거나 작아도 모두 똑같은 캥거루요 사람입니다. 털빛이나 머리빛이 달라도 모두 똑같은 캥거루이면서 사람이지요. 겉모습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겉모습은 누구나 다르기 마련이에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즐거이 사귈 수 있을 테고요.

에릭 바튀 님이 빚은 그림책 <빨강 캥거루>(북극곰 펴냄)는 어느 날 수많은 다른 캥거루하고 털빛이 매우 다른 새끼 캥거루가 태어난 이야기로 첫머리를 엽니다. 어느 캥거루 마을에서 털빛이 빨간 캥거루가 태어나자 이웃이 모두 놀라면서 무서워해요.

처음 보니까 무서워할 수 있지만, 나하고 다르니까 '쟤는 뭔가 무서워!' 하는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에 빨강 캥거루를 낳은 어미 캥거루는 슬기롭게 이웃을 마주해요. 그저 털빛이 빨갈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웃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해요.

그리고 어미 캥거루는 빨간 털빛인 새끼 캥거루를 더 따스히 품으면서 슬기로이 가르칩니다. 다른 캥거루보다 힘이 여리더라도, 다른 캥거루보다 잘 놀라더라도, 다른 캥거루가 하는 일을 못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빨간 새끼 캥거루가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북돋우지요.

빨강은 무지개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싶었어요.
엄마가 말했어요.
"아직 어떤 캥거루도 무지개가 어디서 오는지 알아내지 못했단다.
 캥거루는 용감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기도 한데 말이야." (20쪽)

 속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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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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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는 으레 사회성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곧잘 해요. 사회에서 잘 어울릴 수 있는 몸짓이나 마음이 사회성이라 할 텐데, 참다운 사회성이라 한다면 '나하고 비슷하게 생긴 이'만 이웃으로 여기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참답지 못한 사회성이기에 '나하고 다르게 생긴 이'를 내치거나 등돌리거나 따돌린다고 생각합니다.

남하고 닮아야 하는 사회성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이 나하고 다른 줄 깊이 깨닫고 널리 헤아리면서, 다 다른 이를 저마다 사랑스러운 이웃으로 마주하는 길을 익히는 사회성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사회성을 아직 '똑같은 틀에 맞추는 길'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사내는 머리카락이 짧아야 하고, 부엌일은 안 해도 되고, 힘이 세야 한다고들 말하지요. 가시내는 머리카락이 길어야 하고, 치마를 둘러야 하고, 부엌일을 잘 해야 하고, 사내보다 힘이 여려야 한다고들 말해요. 그렇지만 이런 사회성이라면 참다운 사회성과는 너무나 먼, '갇힌 틀(획일)'이지 싶어요.

빨강은 수백 번을 뛰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무지개 끝에 다다랐지요.
그런데 그곳에는 파랑 캥거루 소녀가 있었어요.
"난 겁쟁이 캥거루야."
"나도 겁쟁이인 걸."
파랑이 대답했어요.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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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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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빨강 캥거루>는 아주 쉽고 수수한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줍니다. 빨강 캥거루가 태어났다고, 어미 캥거루는 이 빨강 캥거루를 '모두 똑같이 사랑스러운 새끼 캥거루'로 마주했다고, 어미 캥거루는 새끼 캥거루한테 삶을 사랑으로 마주하는 슬기를 가르쳤고, 새끼 캥거루는 어미 캥거루한테서 이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을 배우면서 무지개를 찾아나서는 새로운 길을 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그리고 빨강 캥거루는 무지개 끝자락에서 새로운 캥거루를 마주쳤대요. 바로 파랑 캥거루라고 합니다. 파랑 캥거루는 수많은 다른 캥거루 사이에서 어떻게 자랐을까요? 파랑 캥거루는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안 받았을까요? 어쩌면 노랑 캥거루나 푸른 캥거루도 있지 않을까요? 달빛 캥거루나 쪽빛 캥거루도 있지 않으려나요?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우러지면서 무지개가 아름다워요. 다 다른 사람이 어우러지면서 마을도 나라도 아름다워요. 다 다른 아이들이 다 다른 보금자리에서 태어나면서 자라기에 다 다르게 아름다워요.

덧붙이는 글 | <빨강 캥거루>(에릭 바튀 글·그림 / 이순영 옮김 / 북극곰 펴냄 / 2017.8.28. / 13000원)



빨강 캥거루

에릭 바튀 지음, 이순영 옮김, 북극곰(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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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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