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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음식에 이런 장난을 쳤어? 죽이네."

남양주의 한 음식점에서 친구가 한 말이다. 친구는 꾸밈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맛도 기가 막힌 음식을 먹으며 최고의 감탄사로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진짜로 '죽이는' 음식이 있다.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걸 넣어 만든 음식, 이런 걸 먹거리 가지고 '장난친다'고 한다.

아무리 멀어도 가서 먹고 싶은 음식. 박현숙 작가의 <수상한 식당>은 그런 식당 이야기다. 모두가 맛있다고 찬사를 하는 음식점. 하지만 반전이 숨어 있다. 최고의 요리사가 내놓는 맛있는 음식이 '먹거리 X파일'감이라는 반전! 먹거리 가지고 장난치는 요리사와 그 장난을 막아보겠다는 요리사가 꿈인 초등학생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전편에 흐른다.

음식점의 유명세와 실상이 다르다?

<수상한 식당> (박현숙 글 / 장서영 그림 / 북멘토 펴냄 / 2017. 7 / 216쪽 / 1만1000 원)
 <수상한 식당> (박현숙 글 / 장서영 그림 / 북멘토 펴냄 / 2017. 7 / 216쪽 / 1만1000 원)
ⓒ 북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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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음식점, 맛과 재료, 타지인과 현지인 등 음식에 관련하여 적잖은 간극이 존재한다. 내가 사는 안면도에는 가장 유명한 음식이 게국지다.

하지만 안면도 사람은 게국지를 즐기지 않는다. 난 이곳에 이사 온 지 8개월이 되었는데 한 번도 게국지를 먹어 본 적이 없다.

하,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람? 전주 사람이 비빔밥 안 먹고, 안면도 사람은 게국지 안 먹는다? 이것이 바로 음식에 대한 지역민과 타지인의 간극이다.

마찬가지로 잘 알려진 음식점 중에는 좋은 음식점, 맛있는 음식점도 많지만 그 반대도 많다. 블로그 추천 음식점이나 매스컴 탄 음식점을 신뢰하고 들어갔다가 '돈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나온 적이 여러 번 있다.

TV에서 좋은 음식점이라고 팻말 달아주는 음식점은 어떨까? <수상한 식당>은 바로 그런 음식점 이야기다. 청와대에서 조리를 했다는 홍기훈의 아버지는 유명한 요리사다. 그의 '제대로 된 맛을 찾아라 17호점'으로 선정된 식당에 비밀이 있다.

요리사가 장래 희망인 여진이 발견한 엄청난 비밀, 그 비밀을 찾아 스며든 현장에서 6학년 소녀가 본 것은 무엇일까. 방학 동안 홍기훈의 아버지에게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여진은 요리도 배우고 좋아하는 기훈과도 만날 수 있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요리를 배우기는커녕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안다. 시어머니도 모르고 며느리도 몰라야 하는 수상한 식당의 비밀을 알아 버리고 만다. 작가는 식당 2층의 창문을 열면 보이는 저수지의 수상한 비밀을 들려주는 홍기훈 누나의 흉측 맞은 이야기로 흥미를 유발한다.

"저수지에 모자 귀신이 살잖아. 저수지가 되기 전에 저 자리는 들이었대. 모자를 엄청나게 좋아하던 사람이 죽어서 묻혔어. 그런데 그만 산소가 있는 곳에 저주지가 들어선 거지. 그래서 저주지에 가끔 모자 귀신이 나타난다더라." - 119쪽

여진은 솔깃해 듣지만 한편으로는 무섭다. 여진은 이 수상한 음식점의 빈 공간 한편에 놓인 냉장고 안의 검은 봉지가 궁금하다. 또 한편으로는 그 정체가 두렵다. 작가는 '이상하다. 두렵다' 등의 단어를 통해 음식점의 비양심과 좋아하는 친구 홍기훈과의 관계, 연일 매스컴에 오르는 유명세 등을 교차시키며 갈등과 정의감이라는 조화될 수 없는 가치들을 짚는 재주가 있다.

완승(完勝)이 아니라서 차라리 통쾌하다

"'어? 이건 우동 국물 내는 소스잖아? 이건 인스턴트인데.' ... 맙소사! 밀가루 포대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이럴 수가! 유통 기한이 1년도 넘은 밀가루였다... 된장은 유통 기한이 2년이나 지났고, 간장은 1년이 넘었다." - 108쪽

이런 식이다. 어린 미래의 양심적 요리사를 통하여 매스컴 타는 유명세의 기존 성인 요리사를 들춘다. 하지만 새 세대의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까지는 아니다.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절대 비밀'이 있어 미래의 요리사에게도 밝히지 않는 기성 요리사가 이리 썩었다니, 독자는 치를 떨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여진은 독자보다 더 참을성이 있다. 친구 홍기훈이 절대 신뢰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버지 요리사를 망신 줄 수는 없다. 절대 비밀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비밀이 아니건만, 그대로 비밀로 해주고 싶다. 그렇다고 정의감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어른보다 더 어른다운 어린이 주인공을 창조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 애 아빠가 가짜거든요. 거짓말해서 제대로 된 맛을 찾아라 17호점이 되었어요. 아주 양심이 없는 아저씨예요. 친구 아빠만 아니라면 그러는 거 아니라고 막 따지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를 간신히 참았다." - 139쪽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다. 여진은 외식을 하고 나오며 음식이 형편없다고 투덜대는 할머니에게조차 속내를 들키지 않는다. 할머니는 그 음식에 탈이 나 병원 신세가 되기도 하지만 비밀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 비밀(음식점의 맛의 비결)이 이 비밀(비리를 감추는 것)인가, 헛갈릴 정도다.

우동 국물 맛의 비결이 인스턴트 스프 맛이다. 방송을 탔다는 것, 전직 청와대 요리사라는 것 외엔 모두가 가짜다. 가짜지만 친구 아빠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작가는 여진으로 하여금 완승(完勝)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게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저희 아빠는 매일매일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세요. 그래서 우리 식당은 '제대로 된 맛을 찾아라 17호점'이 되었어요." - 147쪽

친구 홍기훈의 아빠 자랑이다. 주인공 여진은 친구 홍기훈을 건드리지 않는다. 문제 해결 후에도 여전히 기훈에게 아빠는 자랑스러운 요리사로 남는다. 몰래 스며든 재료 창고 앞에서 맞닥뜨린 여진이 유명 요리사, 비리 요리사, 거짓말 요리사에게 던지는 말은 단호하다.

"여기가 재료창고 맞지요?... 밀가루는 곰팡이가 슬었고 간장은... 맛있게 만들려면 재료도 제일 좋은 거를 써야 해요. 저는 어른이 되어도 이 약속을 지키면서 요리를 하고 싶어요... 아저씨, 내 친구 홍기훈은요. 세상에서 아저씨가 제일 멋진 요리사라고 믿고 있거든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저는 아저씨가 깜박 잊은 거를 다시 생각해 냈으면 좋겠어요." - 197, 198쪽

참 멋있다. 어린 여진은 당차게 말하지만 승리한 건 아니다. 홍기훈 아버지는 패배하거나 음식점 문을 닫을 필요는 없지만 개선의 여지가 남는다. 아들에게도, 고객에게도 명예를 잃지 않는다. 완승이 아니라서 더욱 통쾌한 동화다.

유명한 음식점! 그 뒤에 숨어있을 수도 있는 비밀에 대한 다른 관점을 들춰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울러 유명세를 뛰어넘는 무명의 맛있는 음식점이 있을 수 있음도 생각하게 만드는 동화다. 이상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들어보는 음식점 이야기, 결국은 음식 정의에 방점을 찍는 상큼함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수상한 식당> (박현숙 글 / 장서영 그림 / 북멘토 펴냄 / 2017. 7 / 216쪽 / 1만1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수상한 식당

박현숙 지음, 장서영 그림, 도서출판 북멘토(2017)


태그:#수상한 식당, #박현숙, #서평, #음식점, #불량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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