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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워터프론트 노벨광장에 서 있는 4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동상,  알버트 루둘리, 데스몬드 투투 주교, 데 클레르크, 넬슨 만델라가 그 주인공들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워터프론트 노벨광장에 서 있는 4명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동상, 알버트 루둘리, 데스몬드 투투 주교, 데 클레르크, 넬슨 만델라가 그 주인공들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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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커스텐보쉬 공원에서 만난 닐슨 만델라의 동상,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해체의 상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커스텐보쉬 공원에서 만난 닐슨 만델라의 동상,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해체의 상징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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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난생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짐바브웨, 잠비아가 이들 나라들이다. 야생동물들과 생경한 풍경, 사람 그리고 건물 등 여러 모습들이 지금도 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다시 그 기억을 더듬을 헤아림으로 선택한 책이 지리학자 이경한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케이프타운>이다.

내가 본 것을 그도 보았다. 내가 사진에 담은 것을 그도 찍었다. 내가 밟은 곳을 그도 밟았다. 내가 간 그 길을 그도 걸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은 누군가 밟았던 길'이란 표현이 이토록 실감날 수가 없다. 내가 몰랐던 걸 그가 가르쳐 준다. 나는 세 나라를 한꺼번에 와락 보았지만 그는 남아공만 존조리 보았다. 나는 역사와 풍경에 마음을 쏟았지만 그는 역사에 더하여 지리에 정성을 쏟았다.

책을 읽고 잠깐 망설였다. 서평을 어떻게 쓸까 하고 말이다. 여행 기록이며 남아공의 역사이며 지리학이기도 한 저자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면서 나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그렇다. 그가 말하게 하고 나는 사진을 내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려고 한다. 저자가 책에서 전하는 내용으로 얼개를 하고 내가 찍은 사진 몇 장을 내걸어 얼거리를 주려 한다. 물론 책에는 저자가 찍은 사진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그냥 책 내용만 쓰는 것은 내가 다녀 온 나라 남아공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하여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을 내걸려고 한다.

슬픈 동화마을 보캅과 인종차별의 흔적 타운십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케이프타운> (이경한 지음 / 푸른길 펴냄 / 2017. 7 / 196쪽 / 1만5000 원)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케이프타운> (이경한 지음 / 푸른길 펴냄 / 2017. 7 / 196쪽 / 1만5000 원)
ⓒ 푸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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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아공 하면 으레 '인종차별의 나라'라는 과거사로 기억한다. 닐슨 만델라란 전 대통령 이름은 당연히 따라오고. 그렇게 기억하곤 더 생각나는 게 없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내면 투투 주교 정도도 생각날 것이다. 조금 더 떠올리기 위해서는 저자의 힘을 빌려야 한다.

"줄루족과 샤카왕, 아파르트헤이트, 금과 다이아몬드, 보어전쟁, 영국 식민지, 부시맨, 희망봉, 월드컵 개최지, 사막, 초원, 지중해성 기후, 사자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단어들로 본 남아공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나라다."(11쪽)

내가 남아공에 가기 전에는 실은 식민통치나 착취, 노예 같은 단어는 그리 떠오르는 것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아공을 여행한 후에는 아주 슬픈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걸 깨달았다. 저자도 여지없이 남아공의 아픈 역사를 말한다.

금이나 은, 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해 유럽 강대국들이 저지른 약탈을 말한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와 영국의 식민통치 기간 동안 벌어진 약탈과 노예 수탈은 기어이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백인이 비백인을 차별·분리한 정책)를 낳았다고 말한다.

인종차별의 흔적은 곳곳에 있다. 그중 '보캅'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은 분홍, 노랑, 파랑 등 아름다운 외면과는 달리 아픈 말레이 노예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에서 강제로 끌려 온 노예들은 금·은 채굴은 물론 백인을 위해 농장과 그들의 집에서 노예로 부려졌다.

"보캅(Bo-Kaap)은 보(Bo)와 캅(Kaap)의 합성어로, 보는 '위에 있는' 그리고 캅은 '케이프'라는 뜻이다. 즉 보캅은 케이프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말레이 출신 노예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반도에서 노예를 끌고 왔다. 이들은 케이프타운 저택과 농장의 노예로서 생활을 하였다. 말레이 출신의 노예들은 충실한 종으로 살았다."(60쪽)

이곳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다. 내가 남아공에 갔을 때 묵은 호텔이 이 근처라 그들이 이슬람교 의식을 행하는 걸 보았다. 꽤나 시끄러워 잠을 설쳤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그때 노예의 후예들이 살고 있으며 케이프 말레이 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보캅이 과거의 이야기를 가졌다면 타운십은 지금도 예전의 분리정책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저자는 타운십이 '차별과 약자의 고달픈 삶을 담은 장소'라며 그들을 관광 상품화하는 것을 반대한다. '훔쳐보기'는 안 된다고까지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이곳을 둘러보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둘러보기까지는 아니고 케이프타운을 드나들며 차량 안에서 타운십의 열악한 모습을 보았다.

"타운십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유산이다. 흑인 거주지 차별을 가져 온 홈랜드정책과 거주지역 지정법은 아파르트헤이트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홈랜드정책을 통해 백인 정권은 아프리칸스어로 반투스탄이라고 부르는 척박한 주변 농촌 홈랜드로 흑인들을 이주시키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또한 거주지역 지정법을 통해 흑인이 도시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했다."(71쪽)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보캅마을, 형형색색 집들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의 역사는 슬픈 것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보캅마을, 형형색색 집들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 집에 살고 있는 이들의 역사는 슬픈 것이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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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교외의 타운십, 백인통치 시대 인종분리정책의 표징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교외의 타운십, 백인통치 시대 인종분리정책의 표징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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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의 상징 희망봉

남아공은 역사는 슬프지만 희망을 간직한 나라다. 특히 케이프타운 하면 희망봉을 놓치고 갈 수 없다. 학창시절 세계사에서 배우던 바로 그곳. 인도양과 대서양이 케이프타운 반도를 사이에 두고 교차한다. 등대에 올라 내려다 본 바다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물개 섬 관광 후 희망봉으로 가기 위해 채프먼스피크를 지나는 드라이브 코스는 지금도 기억으로 남아 가슴에 뻥~ 하고 구멍을 뚫고 지나간다.

희망봉 일대는 자연보호구역으로 키 작은 관목들이 무성하고 타조가 자주 출몰한다. 우리 일행은 한가로이 먹이를 구하고 있는 타조를 보았다. 희망봉 안내 표지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는지. 우리 일행은 30분은 기다린 끝에 가까스로 기념사진을 한 장 박을 수 있었다. 희망봉 위에는 이정표가 있고, 하얀 등대가 예쁘게 서 있다.

희망봉 등대에서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케이프포인트 언덕은 인간이 나눈 대서양과 인도양의 자연 경계 기점'이라는 저자의 표현이 괜스레 나를 슬프게 만든다. 우리의 휴전선이 생각나서일까. '인간이 나눈'이란 말 참 고약하다. 하지만 여전히 바다는 분리되지 않고 일렁이고, 새들은 두 바다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희망봉 안내 표지판은 두 개의 언어로 되어 있다. 좌측은 영어로 'Cape of Good Hope'라고 돼있고, 우측은 아프리칸스어로 'Kaap Die Goeie Hoop'라고 돼있다. 아래로 작은 글귀는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남서쪽 지점'이라고 씌었다. 세계사 속의 희망봉을 내 발로 밟았을 때 감격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난다.

"희망봉은 중상주의 대항해시대의 상징이다. 희망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포르투갈을 출발하여 대서양과 적도를 가로질러 아프리카 대륙의 끝자락인 희망봉까지 왔다. 희망봉을 첫 번째로 항해한 디아스는 이곳 주변을 상륙하기에 적절한 곳으로 보았고, 그곳에 돌 십자가를 세워 영역을 표시했다. 그리고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향했다."(100쪽)

책은 이외에도 케이프타운의 롱스트리트, 처치스트리트광장, 테이블마운틴, 워터프런트, 희망봉의 라군비치, 캠프스베이, 시몬스타운 등을 소개하고, 포도산지로 유명한 남아공의 와인루트, 국립공원이나 자연경관에서 빠질 수 없는 가든 루트와 자연 정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지난 날 눈과 발로 한 경험을 머리의 경험으로 재생산하며 차곡차곡 지식의 창고에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특히 남아공을 가보려고 한다면, 이미 가보았다면 일독을 권한다. 저와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

남아공 케이프타운 희망봉 언덕 위에는 등대와 주요 도시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희망봉 언덕 위에는 등대와 주요 도시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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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봉 언덕에서 내려다 본 케이프타운 베이, 인도양과 대서양이 이곳에서 교차한다. 푸른 바다 하얀 파도가 인상적이다.
 희망봉 언덕에서 내려다 본 케이프타운 베이, 인도양과 대서양이 이곳에서 교차한다. 푸른 바다 하얀 파도가 인상적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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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케이프타운 희망봉에는 이곳이 희망봉임을 알리는 영어와 아프리칸스어로 된 두 개의 표지판이 서 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희망봉에는 이곳이 희망봉임을 알리는 영어와 아프리칸스어로 된 두 개의 표지판이 서 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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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케이프타운> (이경한 지음 / 푸른길 펴냄 / 2017. 7 / 196쪽 / 1만5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케이프타운

이경한 지음, 푸른길(2017)


태그:#아프리카 여행의 시작 케이프타운, #이경한, #서평,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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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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