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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경남시민행동이 지난 6월 15일 오전 경남 창원시 정우상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중단과 탈핵정책 공약을 확실히 이행하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연 뒤 거리행진했다.
 탈핵경남시민행동이 지난 6월 15일 오전 경남 창원시 정우상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 중단과 탈핵정책 공약을 확실히 이행하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연 뒤 거리행진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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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울산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시민 배심원단을 구성해 공론 조사를 거쳐 최종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고리 1호기 영구 폐쇄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이제 궤도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결정 이후, 환영‧우려‧반발이 벌어지며 계속해서 관련 논란이 여러 층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는 보수 세력의 악의적인 공격도 있겠지만, '공론 조사' 대한 무지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들도 있어 보인다. 숙의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 몇 가지 논란을 정리하고 새로운 합의 모델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일단 정부의 지난 발표부터 돌아보자. 지난 6월 27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10인 이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최대 3개월 동안 공론 조사를 거쳐 시민 배심원단이 판단을 내리게 하자고 결정했다.

다음날인 28일 국무총리실은 공론화 작업 지원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즉 총리실은 공론화위원회에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고 설치 근거와 구성, 역할, 활동 내용을 규정한 총리 훈령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어 30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기자단 간담회에서 공론화위원회는 공론화 작업의 관리자일 뿐이고, 시민 배심원단이 판단 주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시민 배심원단이 찬반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건전한 상식으로 공정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수 언론에서는 즉각 '전문가 배제한 여론 재판'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반면 진보 언론은 '공론 조사'와 함께 '합의 회의'까지 예로 들며 숙의 민주주의가 진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내비쳤다. 그리고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리며 일부에서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전문가 배제한 여론 재판? 악의적인 '전문가 배제 프레임'

논란이 여러 층위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하나씩 살펴보자. 보수 세력은 '전문가 배제 프레임'을 내세웠다.

자유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국가적으로 중대한 에너지 정책 사안에 대해 전문가를 배제하고 비전문가 중심으로 여론재판 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이채익 의원 또한 "전문가를 배제한 채 시민 배심원단을 통해 8조 6천억 원이 든 국책 사업을 바꾸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공격했다.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하태경 위원 역시 "시민이라는 미명 아래 전문가를 무시하고 책임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고 힐난했다.

이들은 '전문가 배제', '여론 재판'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다. 정치인만이 아니라, 보수 언론도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를 보도할 때 '전문가 배제'라는 말을 꼭 넣는다. 그런데 공론 조사는 과연 전문가를 배제한 여론 재판인가?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전문가 배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공론 조사와 여론 조사는 아주 다른 것으로, 공론 조사는 오히려 여론 재판을 하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공론 조사는 시민 배심원단, 전문가 패널, 퍼실레이터로 구성

현대 사회는 복잡하게 분화해서 특정 분야 전문가들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일반 시민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일반 시민과 전문가의 소통'을 이뤄 건강한 의견 형성 과정을 위해서 나온 것이 공론 조사다.

우선, 공론 조사에서 시민 배심원단은 무작위 추첨으로 뽑은 일반 시민들이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기 때문에 대학생, 직장인, 주부, 농민, 자영업자 등 다양한 이력과 경험을 지닌 이들이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골고루 참여하게 된다.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300명 정도를 뽑는다. 그러니까 시민 배심원단은 '국민의 축소판'이다.

중립적으로 구성된 주최 기관(이를테면 공론화위원회)은 이들 국민에게 찬성 주장과 반대 주장에 관한 정보를 고르게 제공한다. 사안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공정한 학습이 이루어지게 된다. 나아가 이들 국민은 전문가 패널과 함께 질의응답을 하며 토론을 하게 된다. 물론 이때 전문가는 찬성 측과 반대 측이 균형 있게 구성된다.

그리고 전문 사회자인 퍼실레이터(토론 촉진자, 토론 조율자)는 민주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토론은 전체 토론과 조별 토론이 각기 이루어진다. 전체 토론에서는 전문가의 주제 발표와 질의응답이 이루어지고, 대략 10~15명 정도로 이루어지는 조별 토론은 더 깊은 토론을 위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공론 조사는 균형 잡힌 정보 제공, 전문가 패널의 주제 발표, 민주적인 토론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세미나와 토론을 거친 이후, 최종적으로 심사숙고한 의견을 조사하게 된다.

이렇듯 공론 조사에서 전문가 배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일반 시민과 전문가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이다. 그리고 여론 재판도 전혀 아니다. 오히려 여론 재판을 막는 숙의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공론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참여자가 의견을 바꾼다'는 것이다(선호 변경). 전문가의 세미나와 민주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며 깊이 생각해 보기 때문에, 시민 배심원단이 자신의 기존 의견을 바꾸는 일들이 곧잘 생긴다. 이는 공론 조사의 장점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민주적인 갈등 해결의 방식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게다가 공론 조사를 잘 활용하면 국민적 합의 과정으로 승화된다. 전문가 패널의 주제 발표와 시민 배심원단의 민주적인 토론 과정이 TV를 통해 생중계로 이루어지면, 국민적 토론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론이 새롭게 구성된다.

한편, 공론 조사에는 여론 조사 기관도 참여한다. 그러나 여기서 여론 조사 기관은 배심원단을 공정하게 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표본 추출을 하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다. 즉 여론 조사 기법인 성별, 연령별, 지역별 층화추출(모집단을 중복되지 않도록 층으로 나눈 다음 각 층에서 표본을 추출하는 방법) 기법을 통해 시민 배심원단의 대표성을 확보해 준다.

'공론 조사'와 '합의 회의'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공론 조사의 장점은 시민 배심원단의 대표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단점은 숙의 민주주의 실현의 수준이 더 높은 방식도 있다는 점이다. 바로 '합의 회의'다. 합의 회의는 세미나와 토론을 통한 의견 조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판결문 수준의 권고문을 발표한다.

그렇지만 합의 회의는 강도 높은 세미나와 토론에 최적화된 기법이라서, 이를 위해서 적은 인원으로만 배심원단을 구성한다. 대체로 10~16명으로 구성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그리고 진행 기간도 더 길다. 판결문 수준의 권고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6개월 정도의 기간은 잡아야 한다.

공론 조사와 합의 회의는 둘 다 시민 패널과 전문가 패널 사이에 세미나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구체적인 진행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간혹 진보 언론에 나오는 기사나 일부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주장을 보면, 공론 조사와 합의 회의를 구분하지 않고 논의를 펼치기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공론 조사와 합의 회의를 섞어서 논의를 펼치지 않아야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한편, 환경운동연합은 공론 조사를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환영한다면서도 "정부가 발표한 3개월이라는 기간 역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재연 공동대표도 "3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종결하겠다는 것"이라며 문제가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대한 우려와 기대).

그러나 정부가 하겠다고 발표한 공론 조사 자체는 3개월이면 충분하다. 이번 공론 조사에서 기간을 문제 삼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참고로, 대규모 인원이 높은 수준의 숙의를 이루는 방식도 있기는 하다. '시민 의회'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상당히 많이 든다. 대체로 이는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 논의에 유용한 것으로 본다.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간 우리 사회는 시민에게 큰 영향을 주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국가의 권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해왔던 역사가 있다. 국가를 마치 절대적 권위를 지닌 것으로 보았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선거로 제한되고, 투표가 끝나면 모든 국정의 권한을 선출된 공직자가 전적으로 행사하려 했다. 권위주의적 대의 제도였다.

이는 엘리트주의와 잘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국가 정책은 엘리트들이 담당해야 최선의 결과를 낳으며 혼란스러운 시민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시민의 참여를 최소화하도록 억제했다.

이런 과거의 방식을 '국가 권위 모델'이라고 불러보자. 지금은 이 방식이 성공할 수가 없다.

다음 단계로,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시민이 조직화되면서 새로운 방식이 시작되었다. 이를테면 민주노총이나 전농을 비롯한 이익단체, 의사협회나 약사협회와 같은 직능집단, 그리고 각종 시민단체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재구성했다. 그러니까 권위주의적인 국가와 대의 제도를 조직화된 단위의 협상으로 바꾸었다. 이는 분명 민주주의의 진전이었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노사정위원회'를 들 수 있다. 대립하는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의 협상에서 정부가 중재에 나서 갈등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논의 틀 자체가 평행선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여기서는 유리한 협상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중재하는 입장에 선 정부는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에게 늘 비난의 대상이 된다. 틀의 한계가 갈등과 불신을 부르고, 노사정을 모두 패자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시민단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상층 협상주의로 귀결되는 측면이 있다 보니, 시민 결사체 활동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치우치면서 풀뿌리 시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했다.

이제껏 있었던 이것을 '결사체 협상 모델'이라고 불러보자. 여기서 정부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공격받아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이제 이 방식도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드러났다.

새로운 성찰적 합의 과정을 시작하자

그렇다면 대의 제도에 결사체의 참여와 성찰적 합의까지 보강하여 새로운 관계를 재구성할 수는 없을까? 시민 배심원제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사회에나 있을 수 있는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을 걷어내고, 민주적인 토론이 가능하고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미니 공중'(mini public, 국민의 축소판)을 꾸려서 여기서 심사숙고한 공정한 여론을 얻어 정책 마련에 반영하는 과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고정된 결사체 대표들이 관련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독점하지 않고, 국민 전체의 의견을 최대한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다양하다. 소모적 갈등 방지, 시민의 폭넓은 참여, 민주 시민의 태도 함양, 민주적인 토론과 성찰의 확산, 대의제의 한계 극복 등등. 숙의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주의 실현에 더욱 가까워지게 된다.

나아가 기존 거대 결사체들도 진정 국민을 상대로 하게 된다. 이것을 '성찰적 합의 모델'이라고 불러보자. 지금 우리는 결사체 협상 모델에서 성찰적 합의 모델로 나아가 민주주의 진화 발전의 기로에 서 있다. 물론 이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촛불 항쟁'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촛불 항쟁의 성과를 제도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참고로, 성찰적 합의 모델의 이론적 기반은 롤즈의 <정의론>에 있다. 공론 조사에 참여하는 시민은 이른바 '무지의 베일' 실험의 참가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무지의 베일로 가려져 있다면, 해당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게 될까?' 살펴보는 것이다. 공론 조사에서 기존의 견해를 바꾸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거론하며 시민 배심원단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걷어내고 '무지의 베일'로 들어서도록 설계된 공론 조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과한 측면이 있다.

한편 진정한 합의 없이 소모적인 갈등을 반복하는 우리의 지난 경험을 보면서 우리에게 과연 민주적인 토론과 성찰적 합의가 가능하겠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한마디로, 민주 시민 의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능하겠냐는 말이겠다.

그러나 제도가 수행되면서 의식이 발전해 간다는 점을 주목하자. 민주 시민 의식은 다양한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를 통해 함양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 시민 의식이 성숙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제도에 잘못이 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하자.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과정의 진짜 문제는 실제 과정에서 공정함을 유지하면서 성찰적 합의를 잘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 일단 우리나라에서 이제 막 시작된 새로운 합의 과정과 공론 조사를 주목해 보고서 시작하자. 그래야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을 줄일 수 있다.


태그:#신고리 원전, #공론조사, #성찰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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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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