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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는 살인이다.'

농성장에서 자주 보이는 플래카드 내용이다. 과격한 표현이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글쓴이를 포함하여) 지금 하는 일 아니면 달리 오갈 곳 없는 이들에게 일을 그만두라는 건 그냥 돌아가시라는 얘기다. 적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선 그렇다. 이 나라가 근로에 대한 의지가 확고함에도 일을 못 하는 이들에 대해 아주 선진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나라라고 보기엔, 아직은 이르잖은가. 기껏해야 실업급여 서너 달 받고 이후에도 취업 안 되면 '기초생활이 불가능한 기초생활수급비' 얼마를 받게 되는 것이 고작이다.

판결문 전문을 읽어봤다. 법원이 해고를 확정한 이유는 이렇다. 일단 액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버스 기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횡령액이 적을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기사 이씨가 맺은 근로계약 상에 '수익금 착복시 금액의 다소를 불문하고 해임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씨는 여전히 횡령이 고의가 아닌 과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횡령액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가 다른 직위에 있었다면 더 큰 금액을 횡령했을 사람이라고 보는 것도 성급하다. 게다가 이는 실제로 발생하지도 않은 일로 어쨌든 현재 확인된 횡령 금액은 2400원이 전부다. 사람이 심장 박동만으로 살아가지 않듯 세상도 이 사회도 법만으로 움직일 수 없다. 정말 그가 악의로 돈을 훔쳤더라도 금액에 비해 이건 너무 가혹하다.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법과 정치'교과서를 좀 찾아봤다. '실질적 법치주의'라는 개념이 보인다. 써 있는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법이 개인과 사회의 법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념의 의미였다. 주로 유신헌법 등 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 사용되는 개념이지만, 법에 문제가 없더라도 그 적용이 부적절하거나 지나치게 가혹한 경우에도 우리는 이 개념을 끌어와 토론을 해볼 수 있다.

이를 지금 이 사건에 적용해보자. 훼손된 법익을 살펴보면, 이씨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입은 타격과 이씨가 일했던 회사가 입은 피해는 이씨의 주머니에 들어간 2400원을 크게 상회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적은 돈이다. 반면 이 극도로 미미한 법익을 지키기 위해 한 개인에게 돌아가는 타격은 치명적이다.

몇몇 이들은 장발장의 이야기도 꺼내고 있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2400원에 이렇게까지 엄격했나 하는 것이다. 최순실씨의 횡령액은 지금 집계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콜센터 상담원의 응대 태도를 악의적으로 문제삼아 몇만 원씩의 상품권을 타가는 고객들도 여전히 수두룩하다. 당장 대형마트만 가도 진열대의 상품을 하나 둘 씩 빼 먹고 도로 포장해놓는 손님들은 매일 발견된다. 하지만 이들은 비선실세 혹은 고객 등의 권력자기에 많은 책임을 면제받는다.

여전히 우린 '유전이 무죄이고 무전이 유죄'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걸까. 유죄가 유죄이고 무죄가 무죄이며 사회적 약자에겐 좀 더 너그러울 수 있는, 그런 사회는 요원한가.

많이 더운 날 해고당하셔서 마음이 더 아프다. 작은 실수가 있었고 우린 거기에 너무 가혹했지만 부디 안정적인 자리를 다시 찾아 재기하시길 기원해본다.


태그:#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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