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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골에서 살림을 도맡는 아버지로서 살림노래(육아일기)를 적어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보람이었다면, 아이들이 제법 큰 요즈음은 아이한테서 새롭게 배우고 아이랑 고맙게 배우는 살림이라고 느껴요. 그래서 아이와 지내는 나날은 '육아일기'보다는 '살림노래'가 어울리지 싶어요. 살림을 지으며 노래를 부르듯이 배우고 누리는 나날이라는 마음입니다. 며칠에 한 번씩 공책에 짤막하게 적어 놓는 살림노래를 이웃님과 나누면서 '살림하며 새로 배우는 기쁨'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글쓴이 말)

 국을 끓이다가 뭔가 빠뜨리는 날이 으레 있습니다. 허허 웃고 넘어갑니다만, 다음에는 빠뜨리지 말자고 생각하며 또 빠뜨리지요.
 국을 끓이다가 뭔가 빠뜨리는 날이 으레 있습니다. 허허 웃고 넘어갑니다만, 다음에는 빠뜨리지 말자고 생각하며 또 빠뜨리지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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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된장국이었는데

아침에 된장국을 끓이려고 무를 썰고 감자를 썰고 당근을 썰고 양파를 썰고 마늘을 다지고 배춧잎을 다섯 장 뜯습니다. 소고기하고 버섯은 헹구어서 말린 뒤 물을 끓입니다. 소금은 따로 안 넣고 된장을 미리 풀어놓습니다. 국이 펄펄 끓을 즈음 소고기하고 버섯을 넣은 뒤, 큰파랑 깻잎을 썰어서 느즈막히 넣습니다. 잘 끓는 물에 미리 풀어놓은 된장을 부어서 살살 젓고 나서 간을 봅니다.

'아, 맛 좋네. 누가 이렇게 된장국을 잘 끓이나' 하고 생각합니다. 무가 보글보글 끓는 물에서 속살을 말갛게 드러낼 즈음 불을 끕니다. '잘 끓였구나' 하고 여기며 개수대를 치우고 뒤를 돌아보는데, 어라, 아까 뜯은 배춧잎이 그대로 있네요. 아차, 배추된장국을 끓이려 했으면서 배추를 미처 안 넣었네요. 허허, 그래도 간이 잘 맞고 맛은 좋으니 이 배춧잎은 다음에 된장국을 덥힐 적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작은아이는 작은아이가 좋아하는 밝은분홍(핑크) 신을 꿰고 마당에서 신나게 놀아요
 작은아이는 작은아이가 좋아하는 밝은분홍(핑크) 신을 꿰고 마당에서 신나게 놀아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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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가 좋아하는 빛깔이야

읍내 신집에 들러 새 신을 장만합니다. 가벼우면서 발을 포근히 감싸는 신이 있으나 이 신을 큰아이가 영 안 내킨다고 합니다. 큰아이는 반짝거리는 신을 좋아합니다. 작은아이도 빛깔이 환하거나 고운 신을 좋아하지만, 가볍고 포근히 발을 감싸 주면서 빛깔이 환하거나 고운 신을 더욱 좋아합니다. 옛다, 그럼 산들보라가 이 신을 꿰면 되네. 너희 누나도 머잖아 가벼우면서 포근한 신을 좋아할 날이 올 테지.

뚝딱뚝딱 쓱삭쓱삭

아침에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이웃님이 보내신 아이들 옷가지를 마당에 펼쳐서 해바라기를 시키고, 낮에 아이들을 이끌고 마을 샘터에 가서 신나게 샘터랑 빨래터를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 마른 옷가지를 걷고, 덜 마른 빨래는 처마 밑에서 하루 그대로 두기로 하고, 아침하고 낮에 밀린 설거지를 후다닥 하고, 쪽글을 보내야 할 곳에 보내고, 써야 할 글을 쓰고. 아이들한테 능금을 썰어서 주전부리로 주고, 큰아이는 노느라 고단한 몸을 쉬도록 자리에 눕히고, 새로 장만한 스텐 살림은 뜨거운 물을 붓고 하면서 설거지를 해서 볕바라기를 시켜서 집안으로 들이고, 또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니 어느덧 해가 꼴까닥 넘어갈 무렵.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오늘도 헛간 문을 손질하지 못했다고 깨닫습니다. 끝방 창호문도 얼른 두 겹 덧발라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튿날에는 다 해낼 수 있을 테지요.

 언제나 평화롭고 즐겁게 하루를 지으려고 합니다.
 언제나 평화롭고 즐겁게 하루를 지으려고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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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새옷

가방을 촐랑촐랑 메고 읍내마실을 하던 작은아이 옷이 젖었습니다. 왜 젖었지 하고 살피니, 가방에 담은 물병이 제대로 안 닫혔는지, 물병에 있던 물이 몽땅 쏟아졌습니다. 웃옷도 아랫도리도 모두 갈아입혀야 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기에 바깥마실을 할 적에 아이들 옷을 따로 챙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읍내에 나온 길이니 옷집에 들러 작은아이 옷을 사 오면 됩니다. 웃옷 두 벌하고 바지 한 벌하고 속옷까지 갑작스레 새로 장만합니다.

마실길에서 물을 쏟아 옷을 모두 적신 작은아이는 뜻밖에 새옷을 입습니다. 어쩌면 나도 어릴 적에 우리 작은아이처럼 얼결에 옷을 적시는 바람에 저잣마실길에 옷을 새로 장만해서 입은 적이 있는지 모릅니다. 마침 주머니에 묵혀 놓은 십만 원이 있어서 아이 옷값으로 알뜰히 잘 썼습니다.

 스텐 살림. 스텐 살림을 하나씩 늘리다 보니 어느새 부엌이 은빛이 됩니다. 은빛 살림을 이루는 데에 열 해 남짓 걸립니다.
 스텐 살림. 스텐 살림을 하나씩 늘리다 보니 어느새 부엌이 은빛이 됩니다. 은빛 살림을 이루는 데에 열 해 남짓 걸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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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으로

엊저녁에 반쯤 설거지를 마치고 새벽에 나머지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기운을 새로 내어 모든 설거지를 마칩니다. 이러고서 두 아이하고 가볍게 말놀이를 익히고는 먼저 자리에 눕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마하고 표고버섯을 물에 불립니다. 아침에 끓일 국을 생각하면서 국물을 우립니다. 엊그제부터 다시 마시마랑 표고버섯 국물을 우리는데, 한동안 이 국물을 안 우렸네 하고 깨닫습니다. 몸이 바빴나 마음이 바빴나, 아니면 다른 일에 몸도 마음도 빼앗겼나 하고 돌아봅니다.

얼마 앞서 새 스텐냄비랑 부엌칼을 새로 한 벌 장만했습니다. 어느새 우리 집 부엌은 은빛이 넘실거립니다. 처음부터 모두 은빛(스테인리스) 살림이지는 않았고, 하나씩 둘씩 장만하다 보니 은빛 살림이 제법 늘어납니다. 부엌살림을 나무빛이나 은빛으로 돌볼 적에 정갈할 수 있는 줄 헤아린 지는 얼마 안 됩니다. 곁님이 자꾸 일깨우고 가르쳐 주기에 비로소 이렇게 헤아립니다. 스스로 조금 더 마음을 쓰고, 손수 이것저것 더 새롭게 짓자는 생각을 고요히 마음자리에 심습니다.

 빨래를 너는 어느 날. 고양이밥을 빨랫대 옆에 놓으니 마을고양이가 살그마니 다가와서 냠냠합니다.
 빨래를 너는 어느 날. 고양이밥을 빨랫대 옆에 놓으니 마을고양이가 살그마니 다가와서 냠냠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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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미루는 재미

아이들하고 살면서 하루라도 빨래를 안 하고 지나가는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밥을 안 하고 지나가는 날이 없듯이 빨래도 날마다 어김없이 하면서 보냈어요. 이러다가 지난해부터 가끔 빨래를 안 하는 날이 생깁니다. 올해 들어 하루나 이틀쯤 빨래를 안 해도 되지 하고도 생각합니다.

저는 늘 손빨래를 하는데요, 빨래를 미룬다기보다 빨랫감을 조금 더 모아서 해도 넉넉하다는 생각으로 달라집니다. 어제 낮에 제법 수북하게 쌓인 빨랫감을 보면서도 일부러 하루를 지나갔고, 오늘 아침에 꽤 많이 쌓인 빨랫감을 보면서도 이튿날 하자고 지나갑니다.

마침 오늘은 하늘이 찌뿌둥하기에 아침부터 노래했어요. 비야 비야 신나게 오너라, 우리 고장 못마다 물이 다시 넘치도록 비야 비야 기쁘게 오너라, 하고 노래했습니다. 두 아이가 어릴 적에는 비야 비야 오지 마라, 기저귀 말려야 한단다, 비야 비야 멈추어라, 똥오줌에 젖은 이불 빨아서 말려야 한단다, 하고 노래했지요.

 날마다 빨래를 하던 지난날, 저희 집은 저희 시골마을에서 꼭 하나 있던 '기저귀 빨래가 바람 따라 춤추는 집'이었어요. 어느덧 아득한 지난날 모습입니다.
 날마다 빨래를 하던 지난날, 저희 집은 저희 시골마을에서 꼭 하나 있던 '기저귀 빨래가 바람 따라 춤추는 집'이었어요. 어느덧 아득한 지난날 모습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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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가 일곱 살을 지나가는 이즈음이라, 이제 제 노래가 달라지는구나 싶은데요. 이제 저 스스로 살짝 느긋하면서 넉넉해진 마음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두 아이가 갓난쟁이일 무렵에는 하루에 천기저귀를 서른∼마흔 장을 거두어 빨아서 말려야 했으니 참말로 하루라도 빨래를 쉴 틈이 없어요. 그때에는 이불도 이레에 한두 차례씩 꼬박꼬박 빨아야 했고요.

빨래를 이틀째 안 하는 오늘 낮, 어쩐지 집안일이 매우 줄었구나 싶어 홀가분한 마음에 평상에 살짝 드러누워 봅니다.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이렇게 평상에 등허리를 펴려고 드러누울 겨를이 없이 지냈어요. 오늘 새삼스레 이 멋지고 아름다운 살림을 되돌아봅니다.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 주었는지, 두 아이가 개구지게 노는 모습을 마당 한켠에 모로 누워서 빙긋빙긋 웃음지으면서 바라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blog.naver.com/hbooklove)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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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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