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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 물으니(子貢問政) 공자가 '먹을 것과 군사가 충분하고 백성의 믿음'(足食, 足兵, 民信)이라고 대답하였다. 자공이 다시 '셋 중에 부득이 한 가지를 버려야 하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군대를 버린다'(去兵)라고 하고 그 다음에 '또 하나를 버려야 하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경제를 버린다'(去食)고 하였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民無信不立)라고 했다고 한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공자가 한 말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나라의 부패 상황에 대한 지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의미는 정부와 사회 주도 집단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별 부패 수준을 가늠하는 데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 Index, CPI)가 거의 10년째 제자리걸음 하다 최근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6년 부패인식지수가 하락하면서 국가의 순위가 52위를 기록하여 부패인식지수 조사가 시작된 1995년 이래 최저 순위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11위권(월드뱅크 발표 GDP 기준)이라는 점에 비추어 부끄러운 성적표다.

CPI순위 변화 추이(단순 순위 / 전체 조사 대상국 대비 비율(%))
 CPI순위 변화 추이(단순 순위 / 전체 조사 대상국 대비 비율(%))
ⓒ 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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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서 과거와 같은 부패는 많이 사라졌다. 공공기관의 민원 창구를 비롯하여 사회 곳곳에서 관행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상생활에서의 뇌물은 크게 줄어들었다. 일반 국민들이 뇌물을 주는 경험은 선진국 수준으로 낮다는 사실은 세계부패바로미터(Global Corruption Barometer, GCB)라는 조사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세계부패바로미터 조사에 의하면 지난 한 해 동안 공공기관 등에 뇌물을 준 경험 있는 경우가 3%로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부패인식지수(CPI)는 왜 개선되고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부패인식지수가 산출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부패인식지수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1995년부터 조사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각종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기관에서 조사한 지표를 근거로 산출하고 있다. 부패인식지수 산출에 사용된 원천자료들은 대체로 국내·외의 기업고위경영자, 전문가를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하여 산출된다. 조사 항목은 주로 공공부문의 부패이다. 따라서 부패인식지수는 공공부문의 부패 수준에 대한 경제인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한국인들이 일상에서의 뇌물 경험은 아주 낮은 수준이지만 공공부문의 부패 수준은 상당히 높다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지표를 하나 더 보자.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하여 발표하는 세계부패바로미터(GCB)라는 지표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부패와 관련한 여러 가지 조사를 진행한 결과이다.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뇌물과 사회 각 부문의 부패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앞에서 소개하였지만 일상에서 경험하는 뇌물은 아주 낮아서 선진국 수준이다. 그렇지만 공무원, 대통령, 법원, 기업경영자, 종교인, 경찰 등 사회의 각 부문의 부패는 아주 나쁜 수준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들에서는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국가들 중에서도 나쁜 그룹에 속했다.(국민들이 가장 부패했다고 보는 권력 집단은?, 2017.3.8. 오마이뉴스 기사 참조)

세계부패바로미터 점수가 나쁘다고 하여서 그 나라의 부패 수준이 높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 조사는 기본적으로 인식조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지표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일반인들이 그 나라의 주요 기득권 집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부패에 대한 시각이 그것이다. 부패 수준이 아주 높은 나라에서도 일반 시민들은 그 나라의 공직사회가 부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한 나라에서도 시민들은 그 사회의 주도 세력이 부패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부패바로미터에서 극히 나쁜 결과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공직사회를 비롯한 사회 상층의 행태가 시민들의 눈높이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시민들의 사회 상층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는 것이다.

부패인식지수(CPI)와 세계부패바로미터(GCB)를 비교하여 보면 두 조사 사이에는 우리 사회의 부패 수준을 바라보는 시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패인식지수(CPI)는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전체 국가 중에서 상위 30% 안쪽에 있다. 그렇지만 세계부패바로미터(GCB)에서는 OECD 국가들이나 아시아태평양국가들에서 하위그룹에 속한다. 이와 같이 두 지표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유력한 이유는 바로 조사 대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부패인식지수는 주로 고위 경영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세계부패바로미터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추론할 수 있는 가정은 바로 사회 상층에 속하는 고위 경영자나 전문가들에 비해서 일반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상층 집단을 훨씬 부패한 집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부패인식지수와 세계부패바로미터에서 나타나는 현격한 차이와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지표가 하나 더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하는 부패인식도 조사가 그것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일반시민들의 57.8%가 공직사회가 부패하였다고 생가하고 있는 반면에 공무원들의 3.4%만이 공직사회가 부패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공직사회와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가 서로 다르거나 공직사회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가 낮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작년 청탁금지법이 발효되면서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사태가 터지면서 청탁금지법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큰 도둑이 최고 권력층에서 버젓이 활개를 치는데 일반 국민들에게 작은 선물도 안 된다고 말 할 낯짝이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는 각종 지표로 나타나고 있던 상층 권력집단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 침몰, 스폰서 검사 등 수 많은 사건들을 보면서 가지고 있던 시민들의 의심이 권력 핵심부에서 벌어지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청렴사회의 걸림돌(한국투명성기구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
 청렴사회의 걸림돌(한국투명성기구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
ⓒ 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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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천명하면서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였다. 대통령이 선언한 바와 같이 부패로 얼룩진 사회를 바로잡아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치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지난한 노력을 기울였을 때 가능하다. 문화를 바꾸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부패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되면서 '위로부터의 분위기'(tone from the top)와 '부패에 대한 무관용'(zero tolerance)이 부패를 추방하는 핵심적인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부패를 추방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제도적인 장치와 실행, 교육 등이 필요하겠지만 핵심은 사회의 분위기, 즉 사회 전반의 반부패문화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위로부터의 분위기를 만들고 부패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부패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핵심부의 결연한 반부패 의지'와 '부패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새 정부의 핵심적인 반부패 정책(한국투명성기구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
 새 정부의 핵심적인 반부패 정책(한국투명성기구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
ⓒ 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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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해결하여야 할 너무나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그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누구도 사회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어렵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거짓이 없고 정직해야 한다. 정직하고 거짓이 없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깨끗하고 청렴하여야 한다. 부패에 연루되고 깨끗하지 않은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재벌을 포함한 경제계, 노조와 시민사회, 종교계 등 우리 사회의 중요 세력이 깨끗하고 투명해져야 한다.


태그:#반부패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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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한국본부 /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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