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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에게 쉼과 그늘을 내어주는 고궁의 고마운 나무들.
 시민들에게 쉼과 그늘을 내어주는 고궁의 고마운 나무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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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더위가 기승이다. 여름이 더 길어지려는지 올해는 오월부터 자외선주의보·폭염주의보·오존주의보가 나왔다.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빌딩숲이 아니라, 나무 그늘이 있는 진짜 숲이 그리워지는 날씨다. 꼭 무더위가 아니더라도 살다보면 나무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릴 적 추억인지 조상이 물려준 유전자 때문인지, 내 안엔 나무에 대한 태생적인 그리움이 속 깊이 새겨져 있나보다.

큰 나무일수록 내뿜는 산소가 많아선지 그늘이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그런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곳이 경복궁·창덕궁·창경궁 등 서울의 고궁이다. 창덕궁과 창경궁은 서로 이웃해 이어져 있다. 고궁이 유난히 아늑하고 한적하게 느껴지는 건 수 백년 묵은 소나무·느티나무·회화나무 같은 노거수가 우거져 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명목나무 외에도 독특한 나무껍질이 눈길을 끄는 졸참나무·말채나무·들메나무·층층나무 등등 이름만으로도 개성적이고 정다운 나무들이 살고 있다. 나무마다 이름표를 걸어 놓아 나무공부하기도 참 좋다.

오래되고 다채로운 수종의 나무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진다. 더불어 조상의 고마운 은덕을 체감하게 된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삭막한 자금성에서 보듯 원래 궁궐엔 나무가 거의 없다. 크고 울창한 나무들이 있으면 자객이 들어와 숨기 좋고 왕족을 경호하기 어려워서다.  

마음 넓은 사람처럼 품이 넉넉해 편안한 나무들

 마음 넓은 듬직한 어른같은 고목나무의 너른 품.
 마음 넓은 듬직한 어른같은 고목나무의 너른 품.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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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팡이를 짚은 문인목(文人木) 소나무.
 지팡이를 짚은 문인목(文人木) 소나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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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고도(古都)' 서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궁엔 오랜 세월 풍상을 견뎌 온 고목들이 많이 살고 있다. 남한테 피해 끼치지 않고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듬직한 어른 같은 나무다. 궁궐에 사는 왕족들을 위해 정원수·조경수·관상식물로 심은 나무들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후손들에게 쉼과 그늘을 선사하고 있다. 보존가치가 높아 특별한 보호를 받는 천연기념물 노거수 나무도 많다.

경복궁에 들어갈 땐, 꼭 정문이 아니라 고궁 박물관이 이어져 있는 서문으로 들어가도 좋다. 카메라가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장대한 은행나무가 여행자를 맞이한다. 큰 몸체만큼 넓은 품과 그늘 아래서 시민들이 앉아 쉬고 있다. 가을엔 은행나무 열매로 인해 냄새나는 나무라 불리며 멸시당하기도 하지만, 나무는 제게 든 사람들을 순순히 품어준다. 은행나무의 넓은 마음을 닮고 싶었는지 서울시와 일본 도쿄를 상징하는 나무도 은행나무란다. 

창덕궁 정문에도 맨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는 세 그루의 거목이 있는데 바로 회화나무다. 든든한 수문장 같은 이 나무는 특유의 촘촘하고 자유롭게 뻗어 나간 가지로 따가운 자외선에서 시민들을 막아주고 있다. 고궁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나무는 조선의 선비와 시인 묵객들이 사랑했던 문인목(文人木) 소나무다. 용이 승천하는 듯 구불거리는 소나무 자태는 그림은 물론 사진으로도 훌륭한 작품의 소재가 되어준다. 나무 중의 나무라고 불리는 건 이런 아름다운 수형 때문이지 싶다.

 창덕궁 정문의 멋스러운 수문장 나무, 회화나무.
 창덕궁 정문의 멋스러운 수문장 나무, 회화나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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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로운 나무들 따라 산책하기 좋은 고궁
 다채로운 나무들 따라 산책하기 좋은 고궁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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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생나무라 그런지 더 정감 가는 느티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수백 년 묵은 세월의 무게에 몸통이 파이고 큰 외과수술을 받고도 새싹을 피우고 푸르른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는 모습이 놀라울 뿐이다. 은행나무·회화나무·주목 못지않은 장수목답다. 햇빛과 물과 공기만으로 푸르고 높이 자라는 나무 앞에 서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모하며 사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서양 사람들이 월계수를 신성시하듯,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를 신령한 나무로 여겨 신목(神木), 귀목(貴木)으로 받들었다. 도당제 같은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나무는 대부분 느티나무다.

언제 가도 외갓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맞아주어 좋은 느티나무는 사람이 나무 옆에 서 있는 한자인 쉴 휴(休)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다. 도시의 매미 소리는 소음으로 치부된 지 오래지만, 시골에서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있으면 바람결에 들리는 매미 소리가 금세 자장가 소리로 바뀐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고목(古木)

 경이로운 노거수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고궁.
 경이로운 노거수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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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이로운 노거수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고궁.
 경이로운 노거수 나무들이 모여 사는 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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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느티나무·회화나무 같은 명목나무 외에 참나무류·느릅나무·앵두나무·뽕나무 등 다채롭고 풍성한 나무들이 많이 사는 창경궁 홍화문으로 들어섰다. 창경궁은 우리나라 고궁 가운데 가장 다양한 나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한국특산종인 미선나무를 비롯해 무려 160여 종의 귀한 수종이 보존돼 있다. 나무에 놀러 온 새들의 경쾌한 지저귐까지 더해 고궁에 온 건지 숲속에 온 건지 헷갈릴 정도. '나무의 완성은 명목이나 낙락장송이 아니라 수많은 나무가 함께 살아가는 숲이다'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의 말을 떠올려보게 하는 곳이다.  
이웃 궁궐인 창경궁과 창덕궁엔 몸통의 반이 외과수술을 받을 정도로 늙은 노거수 나무들이 많이 산다. 흔히 나무가 쇠약해지면 치료하기보다 보기 싫다고 베어 버리고 다른 나무를 가져다 심기 십상이지만, 이곳에선 받침대와 울타리 등을 세워서 잘 관리하고 있다. 비록 처진 가지마다 지팡이를 지고 있지만, 새싹을 돋우고 꽃과 잎을 피우는 노거수 나무를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늙은 터줏대감 나무와 새로 심은 젊은 나무들이 잘 어울려 살고 있는 풍경도 흐뭇하다.

산책하기 좋은 연못이 있는 창경궁 춘당지엔 보기 드문 흰 소나무 백송(白松)이 세 그루가 살고 있다. 잎은 여느 소나무처럼 푸르지만 이채롭게도 나무껍질이 하얀색이다. 사람이 하얀 머리로 늙어가듯, 백송도 처음엔 푸른빛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하얀 껍질로 변신한다. 조선 시대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흰빛을 좋아하는 한민족은 백송을 귀하게 대접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하얀 배꽃이 피어나면 달밤에 더없는 운치를 발하는 키 큰 돌배나무도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흰 소나무, 백송.
 조선시대 중국에서 건너온 흰 소나무, 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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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열매 오디를 얻고, 뽕잎으로 누에치기를 했던 뽕나무.
 달콤한 열매 오디를 얻고, 뽕잎으로 누에치기를 했던 뽕나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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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오돌토돌한 모양의 달콤한 열매 오디를 떨어트려 주는 뽕나무 고목들도 살고 있어 궁궐 나무 산책을 더욱 즐겁게 해줬다. 왜 이 아름다운 나무 이름을 하필 뽕나무로 지었을까 궁금했었는데, 지나가는 나이 지긋한 직원에게 물어봤다가 웃음과 함께 알게 됐다. 소화가 잘돼 방귀를 뽕뽕 뀐다 해서 옛날엔 오디를 뽕이라고 불렀단다.

지금은 건강에도 좋고 맛있는 열매가 나는 과실수 대접을 받지만, 뽕나무를 처음 심었던 당시엔 누에라는 벌레에게 뽕잎을 먹이고 실을 얻어 옷을 만들었다. 한자인 뽕나무 상(桑)자도 나무에 열매인 오디가 열려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니 재밌다.

조선 시대 누에를 쳐서 옷감을 짜는 일은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로, 세종 5년(1423) 양잠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가 임금께 올린 공문에 경복궁에 3590그루, 창덕궁엔 천여 그루의 뽕나무가 나온다. 조선 전기 정식 궁궐인 경복궁은 물론 별궁으로 이용했던 창덕궁에 이르기까지 궁궐이 온통 뽕나무밭이었겠다. 오랜 세월 달콤한 열매 오디를 주고, 뽕잎으로 누에치기를 하게 해주었던 뽕나무가 고마웠던 걸까, 창덕궁엔 수려한 자태를 간직한 천연기념물(제471호) 뽕나무도 있다.

덧붙이는 글 | ㅇ 경복궁 안내 누리집 : www.royalpalace.go.kr
ㅇ 창경궁 안내 누리집 : http://cgg.cha.go.kr
ㅇ 창덕궁 안내 누리집 : www.cdg.go.kr
ㅇ 지난 5/27일, 6/3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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