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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박근혜 정부의 부실한 인수인계 소식과 서둘러 끝내 버린 대통령기록물 봉인 뉴스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개탄했을 겁니다.

'그런데 글쎄? 과연 진실만 봉인했을까?' 관련 뉴스들을 보며 궁금해졌습니다. 아울러 조선시대 대표적인 간신 중 한 사람인 조선 중기 문신이자 정치가였던 이이첨(1560~1623.3.14)이 떠올랐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감히 거짓으로 꾸며 기록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이첨과 함께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인물은 무오사화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극돈입니다. 이극돈은 성종이 죽자 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의 수장으로 실록 편찬을 하는데,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맙니다. 실록 자료 일부를 간신 유자광에게 흘린 것입니다.

이극돈이 흘린 김종직의 '조의 제문'은 유자광에 의해 연산군에게 닿는 과정에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판하는 글로 둔갑하는데요. 이를 본 연산군은 이미 죽은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거나, 김일손 등 관련 인물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냅니다. 이것이 무오사화입니다. 

그런데 이극돈 자신까지 실록을 편찬하던 사관들과 함께 파직당하고 맙니다. 무오사화를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이극돈 또한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무오사화의 단초를 흘렸다는 이유로 무오사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사림의 원망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설상가상, 이극돈의 조카 이세좌가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들고 간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연산군은 이극돈의 집안을 멸문지화 직전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이후 중종반정을 이끈 사림은 이극돈을 '대역죄인'으로 지목하게 됩니다.

이런 이극돈의 5대손, 그것도 현손으로 태어난 것이 이이첨인데요. 세월이 한참 지났음에도 이극돈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질시를 받으며 불우한 성장기를 보냅니다. 이런 그가 중앙으로 진출한 것은 선조 15년에 행해진 별과 문시에서 장원 급제를 하면서 입니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 간 선조 대신 임진왜란을 수습한 세자 광해군은 누가 봐도 후계자임에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선조는 후궁의 소생인 광해군 대신 삼간택을 통해 왕비가 된 인목왕후가 낳은, 광해군보다 한참 어린 꼬마인 영창대군을 후계자로 지목합니다.

<간신의 민낯> 책표지.
 <간신의 민낯> 책표지.
ⓒ 청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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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그간 역사 관련 기사들을 주로 써온 이정근의 신간 <간신의 민낯>(청년정신 펴냄)은 세종대왕의 신하인 조말생부터 일제강점기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까지, 우리 역사속에서 있었던 간신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무오사화 그 불을 지핌으로써 연산군을 미쳐 날뛰게 한 유자광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55쪽~84쪽) 간신 중 한 사람입니다. 이이첨 편(166쪽~191쪽)은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겠다는 선조에 반해 이이첨이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광해군을 후계자로 주장하는데요. 그로인해 유배형에 처해진 이이첨이  궁에서 나온 궁녀와 은밀하게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궁녀가 전한 소식은 선조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광해군 시대가 열리면서 광해군의 형인 임해군을 비롯하여 영창대군과 대군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 인목대비를 비롯하여 이들을 구명하고자 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이첨이 만들어 내고 광해군이 동조하거나 묵인하는 죄를 뒤집어쓰고 죽게 됩니다.

우리에게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도 이때 죽게 되는데요. 당시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던 이정귀, 신흠과 함께 선조실록의 책임자로 실록 편찬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이첨은 이항복과 함께 이정귀, 신흠까지 제거함과 동시에 실록편찬의 책임자가 됩니다.

그런 후 자신을 비롯하여, 자신과 정치노선이 같은 북인들 몇몇은 없는 장점을 만들어 치켜세워 기록하고, 노선이 다른 서인이나 남인들 몇몇은 근거 없는 사실까지 만들어 깎아내리는 기록을 합니다. 선조실록은 이렇게 탄생, 국가기록원의 대통령 기록물처럼 누구도 열람하지 못하는 자료가 되고 맙니다.

'현대사에도 프레임기술자가 있다. 미스터 법질서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김기춘이다. 누구를 위한 질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30대 초반 검사시절부터 그에게 붙여졌다는 별명이다. (…)박정희 집권 당시, 유신헌법을 만드는데 '좋은 머리'를 빌려줘 박정희로부터 '김똘똘'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최고 권력자가 머리 쓰다듬어 주는데 감동 먹은 김기춘은 그때부터 주군의 충견이 되었다. 독재자는 선동 선전과 조작의 달인을 필요로 한다. 그의 능력을 간파한 박정희는 그를 곁에 두었다. 청와대 비서관이다.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과 서울지검 공안부장 재직시 정권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과 납북어부 간첩사건 등 수많은 간첩 조작사건이 발생했다. 사실관계를 파헤쳐야 할 언론은 받아쓰기에 급급했고 우매한 백성들은 환호했다. 간첩과 공안사범이라면 딴지를 걸지 않는다는 사실을 김기춘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84~185쪽.

앞에서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세종대왕의 신하인 조말생부터 일제강점기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매국노들까지'라고 했는데, '현대의 간신들'을 설명에 덧붙입니다. 지난겨울 대부분의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국정농단의 죄인들까지 연결해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광해군의 등극으로 세상을 얻은 것으로 착각한 이이첨은 자신의 정치 노선과 다르거나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 인물들은 없는 죄까지 만들어 제거해버리고 맙니다. 이는 광해군 재위 중 계속되는데, 이이첨의 권력은 하늘이라도 쪼갤 기세였다고 합니다. 광해군을 내쫓는 인조반정을 처음엔 '이이첨 자신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사람을 왕으로 삼고자 이이첨이 벌인 것'으로 간주할 정도로 국정을 쥐락펴락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조선시대 간신 이이첨과 연결 지어 들려주는 오늘날의 간신은 김기춘입니다. 앞장에서 선조의 콤플렉스와 죽음, 이이첨의 등장과 국정농단 면면을 들려준 저자는 '이이첨의 후예, 프레임 창조자 김기춘'이라는 소제목으로 박정희 정권 때부터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2014)까지 김기춘이 관여한 굵직굵직한 범죄들을 들려줍니다.

외에도 책은 ▲엄청난 재산을 착복하고서도 세종대왕에 의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조말생과 정윤회사건을 고리 지어 들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편지 한 통으로 인생 대역전을 거머쥔 유자광과 최태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식을 죽게 만든 조선 최고의 여자감별사 임사홍과 현대판 임사홍들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배신, 세조에게 고해바친 김질의 후손인 김자점 등의 낱낱이 들려줍니다.

뭣보다 간신들과 그들이 관여한 굵직한 사건들을 정리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을 통해 만난 인물들이 간신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여러 역사인물들이나 상식들과 얽혀 있어서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책이 다룬 간신들에 대해서만큼은 누구에게든 들려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어서, 주인공들 곁에서 걷거나 목격하며 들려주는 듯한 현장감까지 생생해 어떤 장면들은 마치 사극 보는 듯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선조실록은 인조반정 후 수정되었고, 후세인들이 비교할 수 있도록 고쳐 쓴 수정 선조실록과 함께 보관하게 했다고 합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것만이 왜곡인가요. 단점은 두고 장점만 말하거나, 아무런 말 하지 않아도 진실을 알지 못하도록 막는 것도 엄연한 왜곡입니다. 박근혜 정부 기록물들 제대로 볼 수 있길 소망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간신의 민낯>(이정근) | 청년정신 | 2017.04.19 | 14,000원.



간신의 민낯 - 조선의 국정 농단자들

이정근 지음, 청년정신(2017)


태그:#박근혜정부 기록물, #국가기록원, #이이첨, #이정근(오마이뉴스), #청년정신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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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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