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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았던 보름의 휴식기간

푸짐한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ABC 트레킹을 마치고 도시로 돌아온 나는 음식으로 몸을 회복시켰다. 제육덮밥과 탕수육을 먹었고 깐풍기를 포장해 숙소에서 맥주와 함께 또 먹었다. 뭔가 홀린 듯한 게 분명하다. 3일 동안 하루에 5끼식 먹었다.

먹고 나면 자꾸 허기가 지는 이유는 왜일까. 점심을 먹고 배가 부르지 않으면 싸게 양 많이 먹을 수 있는 피자집에 가서 마르게리타 피자 한판과 콜라를 함께 먹었다. 저렴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5000원을 넘지 않는 가격에 먹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3일을 먹었다.

'사랑곶'에 올라 일출 보러 새벽에 다녀오기도 했다. 2박 3일간 급류 카약을 즐겼으며, 오스트레일리안 캠프를 다시 찾았다. '베그나스 탈'이라는 호수에도 다녀왔다. 만남과 헤어짐은 반복됐으며 그 틈새엔 새로운 만남이 있었다. 여행지란 본래 그런 것인가 보다. 익숙해지며 익숙해지지 않는 그런 곳.

한국이 아닌 곳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고 서로를 알아간다. 저녁엔 다 같이 모여 술잔 기울이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건 어쩌면 떠난뒤 후회할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애플 보드카, 스프라이트, 그리고 과자 하나 있으면 5~6명은 부족함 없이 마실 수 있는 양이었다. 가격은 1000루피. 만 원의 행복인 셈이다.

카약 하는 날
 카약 하는 날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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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4일 '베시시하르'로 출발

마지막이 될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 가장 오랜 기간 산에서 지내야 할 코스였다. 라운딩만 한다면 2주의 시간이면 충분했지만 라운딩을 이어 마르디히말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20일을 생각하고 떠났다.

베시시하르로 출발하는 버스는 투어리스트 버스 파크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한다. 숙소에선 5시 30분에 나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많은 트레커들은 이미 버스 파크에 와 있었다. 해도 뜨지 않던 새벽 공기는 서늘하다 못해 차가웠다.

새벽 5시40분 베시시하르로 이동할 대기중인 버스
 새벽 5시40분 베시시하르로 이동할 대기중인 버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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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시하르 마을
 베시시하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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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볶음밥
 점심으로 먹은 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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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

라운딩을 준비하면서 동행자가 2명이 생겼지만 한 분은 베시시하르에서부터 걷기 시작했고 나머지 한 분은 마르디히말까지 함께 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자갓'이라는 마을이다. 고도는 1300m. 베시시하르에서 지프를 타고 차메로 올라가서 트레킹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도로공사로 인해 그곳까진 올라갈 수 없었고 한참 아래인 '자갓'에서 출발했다.

축제가 아니었다.
 축제가 아니었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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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아니었다.
▲ 자갓 마을 축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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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은 시바 축제가 있던 날. 힌두교 3대 신으로 알려진 시바신의 생일을 축하하는 축제.

큰 축제가 이곳 작은 마을에서도 열리고 있는 줄 알았다. 사람들은 신나 보였고 독특한 춤사위, 웃음소리에 지켜보며 즐기고 있었다. 20분이 지났을까 도처에 흐느끼는 소리, 곡소리가 들렸다.

행렬 끄트머리에 기대어 그들을 따라갔고 그곳이 장례를 치르는 곳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한국의 삼일제와 같은 것이었을까. 영혼이 떠나가지 말라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님을 느끼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 다채롭고 경이로운 곳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은 마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을마다 깊은 정취가 있다. 거칠고 쓸쓸한 곳을 지나칠 땐 마음이 차가워진다. 포근하고 따듯한 곳을 지나칠 땐 살아 있음을 몸소 느낀다.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나칠 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불쾌한 감정도 든다. 맑은 그들의 눈인사를 받을 땐 마음도 정화된다.

사람이 그리워질 땐 오고 가며 만나는 트레커들 덕분에 만남이 즐겁고, 경이로운 설산을 감상할 때면 히말라야에 온 것을 감사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씻지 못하는 횟수가 늘어나 남루한 모습에 웃게 된다. 그래도 즐겁다. 행복하다. 여기는 히말라야니까.

참제 마을
 참제 마을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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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제 마을
 참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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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기운이 있었던, 운영하지 않는 롯지에서
 서늘한 기운이 있었던, 운영하지 않는 롯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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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낭 마을로 들어가기 전. 설산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마낭 마을로 들어가기 전. 설산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 정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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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갓, 다나큐, 그리고 디쿠르포카리를 지나 트레킹 4일차에 마낭으로 갈수 있었다. 많은 트레커들이 마낭 전까지는 흙먼지에 설산은 보이지 않고 트레킹 길과 차량용 길을 번갈아 가며 올라가는 길이 지루해 지프를 타고 올라가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설산이 아니면 가장 높은 고개를 올라가는 것만이 트레킹의 목적이 된다면 즐기는 산행이 아닌 고행이 될 확륙이 높고 좋지 못한 추억만 안고 내려갈 수도 있다.

일정이 촉박해 그럴 수 있지만 차라리 가까운 곳을 여유롭게 가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 된다. 현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는 건 나름의 운치가 있고, 흙먼지가 나더라도 천천히 바뀌는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것도 즐거움이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멀리 여행하러 와서 관광만 하고 돌아가기엔 어쩐지 아쉽게만 느껴진다.

덧붙이는 글 | 1월 12일부터 3월 21일까지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안나푸르나 라운딩, #포카라, #트레킹, #설산, #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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