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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선비할머니의 외로움에 대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면 그 말조차 거절했습니다. "과부가 되니 막연은 했지만 나쁘지 않았어. 남편은 별 소득도 없었고 집에 들어오면 오히려 패악질이었으니... 지금 그 할머니 곁을 지키는 있는 것은 달랑 성경책 한 권이었습니다.
 모든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선비할머니의 외로움에 대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면 그 말조차 거절했습니다. "과부가 되니 막연은 했지만 나쁘지 않았어. 남편은 별 소득도 없었고 집에 들어오면 오히려 패악질이었으니... 지금 그 할머니 곁을 지키는 있는 것은 달랑 성경책 한 권이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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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생, 책을 벗 삼아 인생의 갖은 고비들을 넘어온 지인은 노안으로 시력도 침침해지면서 이즘 새로운 벗을 찾았습니다.

산책 속에서 만나는 자연입니다.

예전에는 책 속의 문장을 통해 분노를 삭이고 증오를 초극하고 행간에서 사랑을 찾고,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느리게 동산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 동안 책 속에서 만났던 그 묘사들이 자연 속에 그대로 실현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나날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이르게 말합니다.

"싯다르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그는 사색하고, 그는 단식을 할 뿐이지요."

그녀는 이즘 싯다르타를 닮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책들을 평소 출입하던 우체국에 기증했습니다. 그 우체국에서는 로비에 서가를 만들어 그 책들을 비치했습니다.

그녀는 옛 책을 읽고 싶으면 그 우체국으로 갑니다. 양지바른 창가에서 몇 줄의 독서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 자신의 책으로 잠깐의 짬을 평화로 바꾸는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껴안고 있을 때의 무거움 대신 새털처럼 가벼워진 기쁨을 그렇게 누리고 있습니다.

#2

그녀가 최근 20여 년 함께 교류하던 동네의 할머님을 방문했습니다.

그 할머님은 남편과 사별하고 세 아이를 양육하고 집안을 경제적으로 건사하는 일조차 홀로 도맡아야 했습니다.

그분이 생활을 방편을 삼은 것은 도서대여점이었습니다. 45세에 과부가 되어서 20여 년간 대여점을 꾸렸습니다. 하루 쌀값 7천 원만 벌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그 대여점을 통해 아이들 세명을 굶기지 않은 것은 물론, 대학까지 공부시켰습니다.

지인은 그 도서대여점을 '글방'이라고 줄여서 불렀고 그 글방의 주인을 '선비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선비할머니는 스스로도 독서를 많이 했습니다. 손님이 없으면 화가 나서 그 화를 홀로 책을 읽으면서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글방에 구입해 들여놓은 책 중에서 아무도 빌려 가지 않은 책들을 지인이 빌려서 읽곤 했습니다. '닥터 노구찌'와 '김구' 같은 책들입니다.

선비할머니는 이상이나 박완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동네의 유일한 지식인이었습니다. 학자들은 현학적으로 보이기 위해 어렵게 말하거나 꾸며서 말하기 위해 애쓰지만 선비할머니와의 대화는 항상 쉽고 소박하지만 학자보다 옳았습니다.

그 선비할머니는 아이들이 장성하고 대여점을 그만둔 뒤 모든 책들을 동네병원에 기증했습니다.

이번에 방문해보니 선비할머니 방에 있었던 몇 권의 책도 없어지고 성경책 하나만 달랑 있었습니다.

지인이 인사차 말했습니다.

"선비할머니! 저는 얼마 전에 젊은 사람들의 경쾌함을 느껴보려고 독립출판물 몇 권을 샀어요."

그러자 그 할머님께서 찰나의 틈도 없이 말했습니다.

"어디다 버리려고?"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의 입을 빌려서 말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세상만사를 뚫고 나아 가는 것_글쓴이 주) 마귀들이 부린 조화라고 말들 하지요. 아무것도 마귀들이 조화를 부려 생겨나는 것은 없지요, 마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비움, #성경, #선비할머니, #책기증, #싯다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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