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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가족을 제외하고도 각별하게 여겨지는 대상이 하나는 있다. 그 대상이 물건일 수도 있고, 특정장소일 수도 있다. 물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갈 수도 있다.

내겐 그런 대상 가운데 하나가 유년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 된 나무 한 그루다. 모교인 오색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벚나무 한 그루, 이 벚나무는 1975년 4월 초에 심었다. 당시엔 워낙 많은 나무를 식목일을 전후하여 매년 심었지만 이 나무만큼은 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요즘에야 학생들에게 교실청소 조차도 시키지 않으나 식목일 하루 정도는 특별활동으로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들이 나무를 심어 학교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나무를 심을 때 대부분 미리 선생님들이 장소를 정해준다. 깊이는 어느 정도 파야하며, 나무를 넣고 흙을 채우는 과정이나 물을 주는 일 모두 가르친다.

4월 10일에서 20일 사이 양양군에 위치한 작은 초등학교인 오색초등학교엔 43년 전 심었던 벚나무가 곱게 꽃을 피운다. 이 나무를 친구와 둘이 의논해 마음에 드는 장소에 심어보라 하셨던 담임 선생님께서는 2001년 교장선생님으로 계셨고, 이듬해 내 결혼식에 주례를 서 주셨다.
▲ 벚꽃 4월 10일에서 20일 사이 양양군에 위치한 작은 초등학교인 오색초등학교엔 43년 전 심었던 벚나무가 곱게 꽃을 피운다. 이 나무를 친구와 둘이 의논해 마음에 드는 장소에 심어보라 하셨던 담임 선생님께서는 2001년 교장선생님으로 계셨고, 이듬해 내 결혼식에 주례를 서 주셨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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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벚꽃이 핀 나무는 전혀 그런 과정이 없이 자유롭게 선택한 장소에 심도록 했던 나무다. 잠시 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고, 먼저 그때 당시의 추억 한 부분을 밝힌다.

여기 소개하는 벚꽃은 1975년 4월 오색초등학교에 심었던 나무가 매년 피는 모습이다. 이 한그루의 벚나무엔 배고픔을 감추며 당당하고자 했던 내 유년의 기억이 간직되어 있다.

1961년 4월 1일 공수전국민학교 오색분교로 인가되어 학교의 개교기념일이 매년 만우절인 4월 1일이 됐다. 그리고 1964년 11월 1일 상평초등학교 오색분교로 개편되어 2회의 졸업생을 배출시킨 뒤 1968년 3월 1일 오색국민학교로 승격되어 지난해 가을 세상을 떠나신 형님께서 1회 졸업생이 되었다.

그 뒤 7회 졸업생을 낸 1975년 5학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키가 작았다. 밥을 먹는 날 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고, 겨우내 지게를 지고 땔감을 하는 처지에 키가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시골 아이들 상당수가 그렇게 키들이 작았던 탓도 있다.

작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4월 13일 양양군 서면 제4투표소에 참관인으로 일했다. 이른 새벽 투표장인 오색초등학교로 가 가장 먼저 투표를 마치고 주민들의 투표를 참관했다. 투표를 하려는 발길이 뜸한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43년 전 심었던 벚나무를 바라봤다.
▲ 오색초등학교 교문의 벚나무 작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4월 13일 양양군 서면 제4투표소에 참관인으로 일했다. 이른 새벽 투표장인 오색초등학교로 가 가장 먼저 투표를 마치고 주민들의 투표를 참관했다. 투표를 하려는 발길이 뜸한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43년 전 심었던 벚나무를 바라봤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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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선생님(김남재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이상훈, 정덕수 이리 와봐. 너희 둘이 이 나무를 너희가 원하는 자리에 심어. 나중에 너희가 이 학교에 올지는 모르지만 만약 온다면 이 나무는 항상 너희 둘과 함께 자란다는 걸 알게 된다. 자, 가서 너희가 이 나무를 심고 싶은 자리에 심어봐."

지금은 진해 해군사관학교박물관에서 활동하는 상훈이와 어디에 나무를 심을지 고민했다. 지금은 학교앞을 가로지르는 44번 국도와 운동장이 수평을 이루지만 당시엔 도로가 운동장보다 2미터 가량 낮았다. 주변 집들보다 학교가 높이 자리할 정도로 산자락에 자리 잡은 학교는 등굣길에 도로에서 교문으로 걸어 올라가야 했다. 둘이 고민을 한 끝에 운동장에서 조금 경사진 교문으로 들어오는 길 옆 화단에 땅을 파고 나무를 심었다.

요즘과 달리 당시엔 4학년 이상만 되면 학교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작업에 동원됐다. 땅을 파고 나무를 심는 작업은 기본이고, 겨울철엔 난로에 피울 나무도 직접 해 날랐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공부하는 시간보다 작업에 동원되는 시간이 더 많았고, 공부도 2학급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반토막짜리 수업을 받았다. 미술이나 체육, 음악시간만 공통된 수업이 진행됐다.

1977년 오색초등학교를 9회로 졸업 했다. 졸업하기 전 상훈이는 1976년 화천으로 전학 갔다. 졸업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며 바라보니 나무는 2년간 제법 자라 있었다.

17살 되던 해, 그 다음 해에도 나무는 그 자리에 있었다. 엄지손가락만 했던 굵기가 팔뚝만큼 굵었고, 160 정도로 키가 자란 나보다 더 키가 컸다.

1985년 4월 10일 무렵이다. 꽃이 핀 건 그때 처음 봤다. 꽃이 참 고운 벚나무였다. 이 벚나무가 꽃 핀 그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신록이 푸르던 어느 날 아버지와 의절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꽃 핀 걸 만났을 때는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던 1988년이다. 오색엔 아버지가 안 계셨고, 난 미친 듯 설악산을 골골이 드나들고 오르내렸다. 무수히 많은 골짜기들, 하나의 능선에도 그렇게 많은 골짜기들을 설악산이 감춰두고 있다는 사실에 더 탐닉하듯 찾았다.

그 뒤로 3번 오색을 찾았을 때 여전히 나무는 교문 옆을 지켰고, 학교는 새로 지어졌다.

2001년 오색으로 완전히 귀향했다. 집을 구해 수리까지 마친 뒤 같은 면소재지에 있는 폐광업소 근처로 아버지를 찾아 갔을 때 눈물을 글썽이며 맞아주셨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밤 꿈에 네가 보였다. 차 소리에 넌 줄 알았다."

방문을 열고 목침을 고이고 계시던 아버지가 문지방을 짚고 일어나 앉아 바로보시는 모습을 집 앞 좁은 길을 들어설 때 보았던 터라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 아버지께 16년 만에 큰절을 올렸다.

얼마 뒤 오색초등학교를 찾았다. 나무를 주시며 심어보라 하셨던 은사님께서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해 계셨다.

그 다음 해 3월 23일 결혼을 할 때 선생님께서 주례를 서 주셨다. 사실 은사님께서는 "지금껏 주례를 서 본 적이 없다. 딸만 둘이라 몇 번 제자들이 찾아와 주례를 부탁했지만 거절했다. 자네도 더 좋은 주례를 모시고 결혼식을 치렀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선생님께서 주례를 서 주시지 않으면 결혼식 올리지 않겠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국회의원이나 그런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해 마치 대단한 주례가 자신의 결혼식에 있으면 자신이 덩달아 그와 같은 지위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는 걸 싫어합니다. 저는 딸만 두었기에 주례를 설 수 없으시다는 말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저희 집엔 딸이 귀하니 저도 딸 둘 낳아도 좋습니다"라 말씀 드렸다.

한동안 고민하시던 선생님께서 "그렇다면 내 당부하겠네. 요즘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데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주게. 그러면 주례를 서겠네"라 하셨다.

딸 래은이가 다음 해 1월 26일 태어나고, 아들 래원이가 2004년 12월 28일 태어났다.

래은이가 오색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이 나무는 내가 쓴 글을 본 방송작가의 각색으로 TV동화로 소개됐다.

작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4월 13일 양양군 서면 제4투표소에 참관인으로 일했다. 이른 새벽 투표장인 오색초등학교로 가 가장 먼저 투표를 마치고 주민들의 투표를 참관했다. 투표를 하려는 발길이 뜸한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43년 전 심었던 벚나무에 핀 벚꽃을 나무 둥치에 기대어 아래서 위로 바라봤다.
▲ 벚꽃 작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 4월 13일 양양군 서면 제4투표소에 참관인으로 일했다. 이른 새벽 투표장인 오색초등학교로 가 가장 먼저 투표를 마치고 주민들의 투표를 참관했다. 투표를 하려는 발길이 뜸한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며 43년 전 심었던 벚나무에 핀 벚꽃을 나무 둥치에 기대어 아래서 위로 바라봤다.
ⓒ 정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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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팩 2∼3장으로 광장을 지키며 고향엔, 그리고 오색령엔 폭설이 퍼붓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벚나무에 꽃이 피는 4월 중순 이후엔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어쩌면 며칠 더 늦을 수는 있지만 크게 차이는 없게 돌아갈 준비를 서서히 시작한다.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나오게 하자 세월호도 올라왔고, 박근혜를 구속시키자 세월호는 거짓말처럼 목포항에 접안했다. 참으로 긴 겨울을 지나왔는데 어제 일처럼 아득하다. 아직은 밤엔 핫팩 없이 잠들기 어렵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양양군, #오색초등학교, #벚나무, #벚꽃, #개교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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