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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보라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흰색으로 변해서 나중에는 한가지에 보라색과 흰색이함께 핀 것 같다
▲ 자스민 처음에는 보라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흰색으로 변해서 나중에는 한가지에 보라색과 흰색이함께 핀 것 같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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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이 말라 죽었던데?"
 
아내가 외출했다가 들어오면서 나를 보며 말했다
 
'아차' 거실에서 TV를 보던 나는 반사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가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의 정신없음을 책망했다. 급히 아파트 바깥 잔디밭 나무 밑에서 말라버린 벤자민 화분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며~
 
미역국 끓여 보셨나요
 
재작년 아내가 감기증세로 몹시 아파 동네 병원에 입원을 했다.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날로 심해 거의 말을 못할 정도로 목이 잠겨있었다.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줄 알았던 것이 병원에 있는 기간이 길어졌다. 친지들이 걱정하며 병문안을 다녀갔다.

같은 부산이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큰 처형이 전화를 했다. 병원에 갔더니 동생이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안타깝다며 저렇게 두면 큰일이니 내일이라도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게 어떠냐 했다. 그러면서 오한으로 목이 잠기고 기침이 심할 때는 뜨끈한 미역국이 좋다며 권했다.
 
"내가 가까이 있으면 직접 끓여 줄텐데, 혹시 미역국 끓일 줄 아세요?"
"아니오 전혀....."
"그럼 제가 설명해 줄테니 적어 보세요."
 
그래서 얼떨결에 받아 적은 종이를 들고 마트에 들러 재료를 구입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주방에 펼쳤다. 한번도 해 본 적 없지만 처형이 들려준 대로 미역을 조금 떼어내 물에 불렸다. 마른 황태를 잘게 찢어 역시 물에 잠깐 적시고 채반에 받쳐 물기를 뺐다. 마늘과 들기름을 찾았는데 요는 간을 맞추는 간장이 문제였다. 꼭 조선간장을 써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를 하는 바람에 이게 가장 중요하구나 하는 것이 뇌리에 남았다. 처음 열어보는 주방찬장에서 겨우 찾았다. 그러나 간장이 여러 병 있었다
 
들기름도 힘들게 찾았다. 그나마 들기름은 참기름과 조금 달라 쉽게 구별되었지만 간장은 모두가 까만색이었다. 들여다보기도 하고 코를 대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아내에게 전화를 했지만 목이 잠겨 말을 못하니 알아 들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맛을 조금씩 보다가 감으로 '이거겠지' 했다.
 
준비를 마치고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춰 두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인터넷으로 미역국 끓이는 법을 몇 번이고 검색하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아파트앞 식당에서 얻어 온 자스민 화분
▲ 자스민향기에 반하다 아파트앞 식당에서 얻어 온 자스민 화분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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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꼭두새벽에 일어나 허둥대며 어찌 어찌하여 미역국을 끓여냈다. 꼭 냄비채로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뚜껑을 집게로 집어 테이프를 붙여도 보고 끈으로 묶기도 하다가 보자기로 싸서 승용차 옆자리에 잘 모시고(?) 병원으로 출발하였다.
     
아내가 아프다
 
아파트 단지를 내려와 큰길 신호등에서 신호를 받고 서있는데 맞은편 식당 바깥 데크에 화분이 보였다. 새벽 이슬을 머금은 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무슨 꽃인 줄 몰랐다. 한 나뭇가지에 보라색과 흰색이 함께 피어 신기했다. 그런데 왠지 이 식당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고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러면서 아픈 아내가 생각났다. 아내를 닮은 이 꽃을 아내가 보면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고 아픈 것도 씻은 듯이 나을 것 같았다.
 
그새 신호가 바뀌고 사거리를 지나 겨우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직 출근하지 않아 텅빈 원무과를 지나 병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냄비를 들고 엉거주춤 서있는 내게 함께 있던 옆 환자가 말했다.
 
"일인실로 옮겼는데예."
"네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미역국 냄비를 떨어뜨릴 뻔 했다. 얼마나 중하길래, 밤새 무슨 일이? 허둥지둥 병실을 나와 간호사를 찾았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병원이고 내부 구조가 낮설다. 어디가 어딘지를 잘 몰라 계단을 오르내리다가 복도에서 당직 간호사를 만났다. 아내가 밤새 심한 열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기침을 했단다. 잠자는 옆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복도에 나와 있기에 비어 있는 일인실로 옮겨 주었다고 했다.

급히 알려준 병실에 들러보니 다행히 아내는 일어나 앉아 있다. 내가 들고 온 냄비를 보고 의아해 했다. 자세한 얘기를 해주자 수고했다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결혼해서 남편에게 처음으로 받아본 밥상(?)에 눈물을 보였다.
 
저 꽃을 나에게 주실 수 있겠어요
 
돌아오는 길에 꽃이 있는 식당에는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식사로 인해 붐비는 시간을 피해 오후 두 세시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식당으로 향했다.

작년 여름 사상 최고의 더위에 지친 거실의 자스민 화분을 아파트 밖에 내어 놓았다
▲ 우리집에 온 자스민 작년 여름 사상 최고의 더위에 지친 거실의 자스민 화분을 아파트 밖에 내어 놓았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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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는 나를 식사하러 온 손님인줄 알고 앉으라며 자리를 안내했다. 그게 아니고 밖에 있는 저 화분을 나에게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의아한 표정을 한 식당이모인 듯한 여인이 사장님이 안에 계시니 물어 보겠다며 방에 기별을 하였다.
 
"무슨 일인가요?"
"저 화분을 나에게 주실 수 없겠습니까, 주신다면 잘 키우겠습니다"
"......"
"꽃이 맘에 들었어요. 그냥은 안된다면 파셔도 되고요."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아내가 아프니 절박한 심정이었겠지. 그러나 나는 아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꽃이 너무 좋다고 했다. 잠시 후 여사장은 '네 그렇게 하세요' 하고 쿨하게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내가 고맙다며 그 값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얼굴만큼이나 마음씨도 예쁜 여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다만 잘 키워줄 것을 당부했다. 옆에서 혹시 안된다고 거절하면 내가 무안해 할까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식당이모가 그제야 안도하면서 약간 분위기를 띄웠다.
 
"무슨 남자가 꽃을 그렇게 좋아해, 혹시 바람 피우는 건 아니죠 ㅎㅎ."
 
같이 한바탕 웃으며 언제 한 번 식사하러 들르겠다고 하며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아무도 없을 때 차로 싣고 집으로 왔다. 나중에 이 꽃나무 이름이 자스민인 것을 알았다. 거실에 두고 물을 주며 애정을 쏟으니 작년에도 꽃을 피워 온 집안 가득 자스민 특유의 향이 진동했다.
 
다행히 아내도 며칠 후에 병이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온 식구가 함께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 말은 지키지 못했다. 사정이 있어 갑자기 이사를 하였다. 이사로 인해 멀리 있으니 가지 못해서 미안한 맘이 있었다. 어느날 아들이 친구 여럿과 저녁을 함께 한다기에 먼 곳이지만 그 식당으로 가라고 했다.
 
우리 집에도 봄이 왔다
 
작년 여름 사상 최대 더위로 온 나라가 찜통을 겪었는데 이 꽃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실에 있던 화분에서 흰가루병이 생겨 잎이 조금씩 상했다. 바깥바람과 시원한 비라도 맞으면 나을까 싶어 아파트 밖 잔디밭에 땡볕을 피해 잘 보이지 않는 모퉁이 나무그늘 밑에 둔 것이 화근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자스민이 새봄을 맞아 새싹을 틔웠다
▲ 자스민 새싹이 돋아나다 죽은 줄만 알았던 자스민이 새봄을 맞아 새싹을 틔웠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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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몇 날은 때 맞춰 물도 주고 살펴보다가 그렇지 않아도 건망증 심한 내가 너무 더위를 먹었는지 그만 깜빡하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였다.

급히 물병에 물을 채워 나무와 화분에 흠뻑 주었다. 이틑날도.
 
'제발 살아다오, 살아만 다오~' 간절하게 바랐다. 날짜를 세어보니 그새 한달하고도 보름이 훌쩍 넘었다.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를 만져보고 또 만져 보았다. 괜히 그 식당에서 멀쩡히 잘 있는 화분을 가지고 와서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자책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그새 겨울이 와 거실로 옮겨두었다.
 
이제 추위도 물러가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왔고 그리고 우리 집에도 봄이 왔다.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던 자스민 나뭇가지에 기적처럼 새싹이 돋았다. 벌써 잎이 제법 자랐다.
 
"고맙고 또 고맙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올 봄은 더욱 좋은 봄이다. 그리고 이제 곧 꽃도 피겠죠^^


태그:#자스민, #아내 , #입원, #보라색과 흰색, #꽃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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